EZ EZViwe

[기자수첩] 도주공의 겸손과 기업호감지수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1.30 18:07:32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범려는 춘추시대 월나라의 왕 구천을 보필했고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기여했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을 낳은 바로 그 고사다.

그런데 오랜 세월 공들인 일이 끝난 후 범려의 경력을 보면 월나라에서 상장군으로 끝난 게 아니다. 벼슬에서 물러난 범려는 제나라로 갔고 여기서 큰 돈을 모았다. 제나라에서는 재력을 가진 그에게 재상 자리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범려는 자신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과연 제나라에서 재상 자리를 제안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그 결과 왕이 하사한 재상용 도장을 되돌려 보낸 것은 물론이고 갖고 있던 재물까지 다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고 다시 도나라로 옮겨갔다. 여기서도 또 큰 부를 쌓았고 여기서는 도주공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관계 인사(범려)에서 상인(도주공)으로 변신해 인생 2막을 산 셈인데, 우리가 주목해 볼 대목은 그가 업적이나 재력 때문에 너무 커진 명성을 부담스러워 해 여러 번 모든 걸 털어내고 자리를 훌훌 옮겼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과감하게 '리셋'을 한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8일 내놓은 기업호감지수를 보노라니 도주공(범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호감 아닌 비호감 상황, 기업들이 얻어낸 기업호감점수가 처참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49.8점을 기록했다는데 2008년 하반기(48.1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렇다고 우리 국민들이 기업이 번 돈을 도주공이 그랬듯 때때로 몽땅 사회환원을 하라고 강요하는 '불한당 마인드'를 가지고 기업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조사에 보면, 기업활동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이윤 창출을 통한 경제 성장 기여(57.7%)라는 응답이 부의 사회 환원을 통한 사회 공헌(42.3%)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하니, 그야말로 기업 본연의 활동만 잘 해주면 된다고 생각들을 하는 셈이다. 그런 후한 기준의 국민들에게 왜 우리의 기업들은 49점대의 점수밖에 못 따는 걸까.

   
 
도주공 같은 과감한 리셋 스타일 사회공헌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편법으로 얌체짓으로 돈을 벌고 그런 처지에 평범한 많은 소비자들이나 사회 시스템을 얕보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면, 기업호감지수의 점수는 껑충 오를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면 제나라에서 재상감으로 물망에 오를 수 있을지" 겸손함으로 되돌아보던 범려 혹은 도주공의 이야기를 우리 기업인들이 늘상 되새겨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