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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닭' 서영필 대표의 끝없는 질주, 언제까지 지속되려나?

[기업해부] 에이블씨엔씨…①태동과 성장

전지현 기자 기자  2013.01.21 14: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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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에이블씨엔씨를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2000년 탄생한 미샤는 출범 후 10여년만에 국내 중저가 화장품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제조에서부터 판매에 이르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화장품 브랜드숍 열풍을 불러온 주인공이자 기존 제품의 거품을 뺀 가격으로 소비문화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쌈닭'. 이것이 화장품 브랜드숍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수장 서영필 대표를 칭하는 별명이다. 이유인즉슨 타사를 향한 공격적 행보 때문이다.

   
미샤는 지난 2012년 에스티로더를 향해 공격 마케팅을 펼쳤다.
지난 1월 초 미샤는 2013년 첫 신제품으로 프리미엄 한방 아이크림 '미샤 금설 기윤 아이크림'을 출시했다. 5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판의 타겟은 시슬리였다. 20만원대를 호가하는 시슬리 아이크림과 비교광고를 낸 미샤는 2011년에는 SK-II 에센스를, 지난해에는 에스티로더를 향해 공격마케팅을 펼쳤다.

공격마케팅을 비롯한 타사와의 한판 싸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LG생활건강과 '광고 방해' 여부를 놓고 진실공방을 펼치더니 네이처리퍼블릭과는 서울메트로와 독점 계약을 포기하라 종용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 대표의 저돌적 행보는 올해도 멈추지 않을 기세다. 지난해 12월30일, 서 대표는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미샤-에이블씨엔씨 2013년 목표는 국내 2강에 안착할 수 있는 강력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그리고 값비싼 수입화장품들이 더 이상 한국에서 호사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대응하고 경쟁하는 것..뭐 이렇게 두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쌈닭'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페이스북에서 밝힌 창업기를 따라가 봤다.

◆ 창업자금 1500만원이 미샤의 첫 도전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출신인 서 대표는 피죤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1994년 10월경 창업자금 1500만원으로 '청운의 꿈'을 안고 첫 창업 길에 나섰다. 아이템은 도자기 방향제. 하지만 생산에 대한 지식이 없던 그는 창업자금을 수업료로 사용했을 뿐, 한 푼도 남기지 못한 채 처참한 결과만을 맛보게 된다.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대표
이후 화장품 매장을 유통처 삼아 영업했다. 다마스로 일평균 30~40곳의 매장을 방문,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치며 영업하던 헤어제품을 팔아 달라 애걸했다. 그렇게 조금씩 거래처를 형성하며 화장품 유통구조도 배워나가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화장품 공장을 소개받는다.

이때부터 그는 브랜드력 유무에 영향 받지 않고 무리 없이 판매되는 상품군을 생산의뢰, 유통한다. 1990년대 말은 소비자 권장가가 패키지에 인쇄돼 있었지만 생산자가 원하는 대로 가격이 책정되는 시대였다. 그는 '복마진'을 무기삼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유통망을 넓혀갔다.

그러던 1995년 겨울, 화장품 매장 하나를 오픈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하는 5평 남짓의 작은 매장이었지만 그곳에서 서 대표는 '여심(女心)' 읽어내는 지식의 기초를 마련한다. 작은 매장에서 나오는 월매출은 1000만원에 달했고, 명절을 앞두고는 하루 매출 100만원까지 기록했다. 1996년 오픈한 매장 역시 투자 대비 큰 성과를 올린다.

그러나 1997년부터 권장 소비자 가격의 표시 폐지 시행이 예고됐다. 그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위기를 기회삼아 서 대표는 브랜드 론칭을 결심한다. 본격적인 유통을 결심하고 1996년 12월 설립한 회사는 (주)엘트리화장품. 2년 뒤 IMF로 염가 기계장비 구입이 가능한 상황을 이용, 인천 남동공단에 2명의 직원과 함께 공을 설립해 '제2의 도약'에 나선다.

한편 같은 시기,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던 중 아름다운 선율의 첼로소리에 눈을 돌린 서 대표. 그의 시선에 '미샤 마이스키'라는 연주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녀의 이름을 따 만든 '미샤'. 이후 '미샤'라는 상표가 출원되고 1년 뒤인 2000년에 세상에 등장한다.

◆ 소박했던 인터넷 게시판이 '뷰티넷' 토대

공장과 영업은 바쁘게 돌아갔다. 1998년도 매출은 약 40억원. 2002년 매출이 70억~80억원 정도였으니 그 반 정도인 셈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 서 대표의 관심을 끈 것은 인터넷사업이었다. 이미 엘트리화장품 설립 준비시절 컴퓨터 한 대를 구입해 인터넷과 첫 대면을 이룬 그였다.

다음이 등장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사이트가 속속 등장하던 시대에 맞춰, 1998년 하반기 초겨울 인터넷 사업부를 만든다. 인터넷 사업부는 엘트리화장품 브랜드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게시판을 만든다. 소박하기만 했던 이 게시판이 바로 15년 뒤 미샤를 알리는데 중대하며, 화장품 시장의 터닝 포인트 역할을 하는 '뷰티넷'이 된다.

1999년, 지하사무실에 자리한 인터넷팀은 악전고투했다. 무료로 화장품을 증정하고 대신에 후기를 적는 화장품 증정이벤트.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파일형 게시판이다 보니 모든 것이 수작업이었다. 일정기간 게시물을 회원별로 검색‧체크하고 점수를 합산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수작업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회원들로 난관에 부딪힌다. 다른 업무를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씩 포장해 배송하는 업무도 비용 및 인력 등의 소모가 컸다.

결국 이벤트 중단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던 중 소식을 접한 회원들이 "택배비는 우리가 낼테니, 이벤트를 해달라" 요청해 왔다.

◆ "게시판을 읽고 쓰면 화장품이 공짜"

"게시판을 읽고 쓰면 화장품이 공짜". 2000년, 조악한 게시판에서 펼친 이벤트였지만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배송비 3000원, 부가가치세 300원. 배송비를 소비자에게 돌리니 소비자 사이에서 3300원짜리 화장품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특히 화장품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용자가 몰렸다. 이것이 초창기 미샤 전 제품 가격이 3300원이 된 이유다.

   
미사 금설 기윤 아이크림 출시.
2002년 3월, 미샤는 뷰티넷 회원 100만명 돌파를 기념해 이대 앞에 테스트 매장을 오픈했다. 6개월이 지났을 무렵, 5평도 안 되는 이대매장 하루매출은 5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이유는 바로 '믿어지니 250가지 화장품이 3300원'이란 카피문구 덕분이었다. 이 슬로건을 포스트로 인쇄해 매장에 붙인 것이 대박이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대박 신화를 이어 서 대표는 2003년 2월, 6개월 노력 끝에 월세 2500만원짜리 명동 임대매장인 '미샤 1호점'을 오픈한다. 이때부터 미샤는 대중에게 더욱 알려졌다. 하루 매출 1000만원. 미샤 명동 매장의 고객행렬은 끝없이 이어졌고, 점두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면 족히 100미터 길이로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도를 달렸다.

◆2005년 '더 페이스샵' 등장으로 속절없이 무너져

미샤의 진군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2000년 7억원이었던 매출은 2004년 1000억원을 기록했다. 2004년 4월이 되자 매장이 100호까지 늘었다. 그러나 미샤가 승승장구하자 경쟁자 '더 페이스샵'이 등장했다. '더 페이스샵'은 선발주자였던 미샤 매장 근거리에 점포를 여는 전략으로 미샤의 약점을 분석해 갔다.

'더 페이스샵'은 '600가지 화장품이 3300원'이란 문구를 앞세웠다. 소비자들은 제품수가 많은 곳으로 결국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5년 중반부터 미샤는 서서히 밀려갔다. 하반기로 들어서자 가맹점 이탈이 시작,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당시 가맹점들은 계약서상 기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페이스샵' 및 또 다른 후발주자인 '스킨푸드' 등으로 매장을 속속 변경했다. 경쟁까지 밀리면서 미샤의 파죽지세는 2007년까지 이어졌다.

2005년 겨울, 서 대표는 결국 회사를 떠난다. 명목은 미샤 미국 법인 관리였지만, 부진한 경영성적과 조직 관리 부실 등 총체적 위기를 책임져야 했다. 그리고 서 대표는 한국을 떠나 멘하탄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 2년 사이 한국 본사사정이 나빠졌다. 결국 그는 미국 법인을 에이전트 체제로 돌리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뷰티넷 재건'과 '제품력 보강'을 승부수로 띄우고 뷰티넷을 통해 회원 의견을 청취하면서 2008년까지 경쟁력 없는 제품의 단종과 보강작업을 지속했다.

현재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187%의 주가 상승을 보이며 중저가 브랜드 내 가장 큰 상승세를 보였다. 실적도 좋다. 올 4분기 전년 동기대비 29% 증가한 136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것이 에이블씨엔씨 서 대표의 경영 성적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