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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계사년] 지명 속 똬리 튼 뱀(巳) 이야기

'풍요'와 '재물' 상징 뱀, 관련 지명만 208개…제주도 '공포대상'

박지영 기자 기자  2012.12.31 11: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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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013 계사년은 십이지를 상징하는 동물 중 여섯 번째인 뱀(巳)의 해다. 한자 사(巳)는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의 형상을 딴 글자로 일어서는 기운을 뜻한다. 지혜와 풍요, 불사를 상징하는 뱀은 십이지 중 '상상의 동물' 용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털과 발이 없다. 우리 문화에서 숭배와 질시를 동시에 받아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간 뱀은 집과 재물을 지켜주는 '업구렁이'로, 영생불사 수호신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두려운 동물로 표현돼 왔었다. 이러한 이중적 이미지는 우리 국토 지명에도 상당부분 반영돼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150만여 지명 중 208개가 뱀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임주빈)은 '2013 계사년' 뱀해를 맞아 뱀과 관련된 지명을 분석, 이같이 밝혔다.

   
 
우리나라 뱀 관련 지명은 전라남도가 41개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경상북도·충청남도 각각 31개 △경상남도 29개 △전라북도 27개 △경기도 14개 △충청북도 11개 △제주도 6개 △인천 3개 △광주·대구 각각 2개 △대전 1개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남부지방서 뱀 관련 지명이 많이 분포된 데는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뱀의 달인 음력 4월은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력이 움트는 계절로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뱀을 한꺼번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다고 해 풍요와 재물의 가복신으로 여겨왔다.

◆고흥군·홍성군 '장사추와형' 명당

지명 종류별로는 마을명칭이 157개로 가장 많았으며, 뒤 이어 △도서 15개 △산·고개 각 14개 △골짜기·기타 각 3개 △바위 2개 순으로 조사됐다.

글자별로 살펴보면 '사동'이라는 지명이 전국 15개로 가장 많았고, '뱀골'이 10개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일부 지역에서는 뱀을 '배암' '비암' '배염' 등으로 부르며 지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뱀 관련 지명 중 뱀의 모양과 관련된 지명이 전체 137개(65%)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그 중에는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있는 '장사도'처럼 전체적인 모양이 기다란 뱀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지명이 72개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뱀이 개구리를 쫓아가는 지형인 '장사추와형(長蛇追蛙形)'은 먹을 것이 풍부한 좋은 터로 풍수지리가들 사이에선 명당으로 꼽힌다. 이러한 곳으로는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 '사도'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신성리 '사성' 등이 있다.

   
먹이를 잡으러 가는 뱀 형상을 가진 장사추와형 지형모습.
뱀의 출현 설화와 관련된 지명도 있다. 경주시 남면 구암리 마을이름 '구뱀이'는 귀가 달린 뱀이 나왔다고 해 유래됐으며,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금계리 '구수재'는 아홉마리 구렁이가 재를 못 넘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뱀이 공포의 대상으로 유래된 지명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김녕사굴'과 천안시 직산읍 상덕리 '덕령' 등이 있다. 이곳에선 뱀을 인간을 해치려는 사악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외에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 '장사동'은 마을이 큰 구렁이 모습을 닮았는데,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뱀의 영생불사(永生不死) 속성을 반영대 그 지역 주민은 장수한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남 고흥군 동강면 한천리 '뱀골고개(뱀골재)'는 고개를 넘을 때 악한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큰 뱀을 만난다고 해 뱀을 지혜로운 존재로 생각했음을 지명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뱀의 형상이나 뱀과 관련된 설화는 우리의 '지명' 속에 자리 잡아 내려오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조사과는 "지명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그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증대됨에 따라 지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명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지명관련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지명 유래 등을 지속 발굴해 지명이 우리 생활에서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뱀 관련 전설이 스며있는 주요지명이다.

◆김녕사굴 전설

   
김녕사굴 내부.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제공.
조선시대 중종 때 서린이란 사람이 19세 어린나이에 제주판관으로 부임했다. 본래 동굴 속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구렁이는 해마다 어린 처녀를 재물로 바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게 하는 등 온갖 변괴를 부려 마을 사람들의 폐해가 엄청났다. 그러자 서린 판관이 군사들을 이끌고 가 구렁이를 퇴치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맹수가 없는 제주도에서 뱀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김녕사굴(金寧蛇窟)은 총 길이 705m로,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과 흡사한 꾸불꾸불한 동굴 형태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렇게 불려왔다.

◆서귀포시 표선면 일대

   
뱀신을 모셔두는 곳, 칠성눌.
서귀포시 표선면 일대에서는 뱀신을 모시기도 했다. 때로는 인간을 해치려는 사악한 존재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제주도에서는 곡식을 축내는 쥐의 천적인 뱀을 곡물의 신, 재복의 신으로 여기기도 했다.

칠성은 곡물을 수호하고 풍요를 가져다 주는 뱀신으로 고팡에 모시는 칠성을 '안칠성', 마당 뒷곁에 모시는 칠성을 '밧칠성'이라고 한다. 밧칠성은 땅 위에 기와장을 깔고 그 위에 오곡 씨를 놓은 뒤 그 위에 비가 세지 않도록 주쟁이를 덮어 모시는데, 이를 '칠성눌'이라 한다.

◆섶섬의 이무기이야기

용이 되고 싶었던 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지명도 있다. 서귀포시 송산동 섶섬은 커다란 귀가 달린 뱀이 용이 되고자 섶섬과 지귀도 사이에 숨겨놓은 야광주를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끝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후 비가 오면 섶섬의 정상에 안개가 끼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죽은 뱀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