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까지 올 한해 식품업계는 '위축'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경기불황 탓에 전반적인 소비가 둔화된 데다 소비되는 품목도 위험부담이 적은 장수제품 위주로 이뤄졌다.
신제품을 출시하더라도 소비자들의 관심도가 낮은 만큼 올 한해 식품업계에는 차별화된 신제품 소식이 지난해 대비 눈에 띄게 줄었다. 식품업계 성장과 발전 기반인 신제품 연구개발이 주춤하며 업계 분위기는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업계에 악순환을 가져왔다. 업체들이 기존 시장에 손쉽게 진출하며 시장 판도를 흔들어 놓은 것. 상대적으로 실패위험이 큰 혁신적인 성장동력을 찾기보다는 이미 입증된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몸을 사린 셈이다. 올 한해 식품업계 분위기를 주도한 10대 이슈를 추려봤다.
◆한·미 FTA 발효
올해 3월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하 FTA)이 발효됐다. 이로써 설탕과 밀가루 등 관세가 인하돼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식품업계의 원가절감 효과가 기대됐다. 그러나 실제 나타난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공식품의 주원료인 설탕과 밀가루 관세는 인하됐지만 곡물가가 워낙 유동적인데다 유통망 역시 다변화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가공식품에는 이들 주원료 외에도 다른 재료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제품원가에 있어 이들 품목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한·미 FTA로 인한 설탕, 밀가루 관세인하 효과는 실제 가공식품 원가인하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서 "또한 국내 수입되는 가공식품들 역시 국내 소비자 취향과 다른 제품이 많아 한·미 FTA 발효가 국내 가공식품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다수' 새 유통사업자 선정
지난해 12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이하 제주개발공사)가 '제주삼다수(이하 삼다수)' 유통사업자인 농심에 유통계약 해지 공문을 보내면서 제주개발공사와 농심이 결별 수순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농심이 소송을 제기하고, 제주개발공사가 항고하는 등 법적 분쟁이 벌어졌다.
광동제약 '삼다수', 농심 '백두산 백산수', 롯데칠성 '백두산 하늘샘물'(좌측부터). |
3월15일자로 광동제약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제주개발공사와 농심과의 법적 분쟁으로 유통사업권을 넘겨받지 못했다. 이후 광동제약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12월15일 '삼다수' 유통사업권을 넘겨받아 지난 17일부터 본격 유통에 나서고 있다.
◆생수시장 '한라산물' vs '백두산물'
국내 생수시장 점유율 1위 '삼다수' 유통사업권이 광동제약에 넘어가며 기존 유통사업자였던 농심은 '백두산 백산수'라는 자사 브랜드 생수를 출시했다.
여기에 롯데칠성음료(이하 롯데칠성)도 '백두산 하늘샘'이라는 새 브랜드를 내놓으며 생수시장 지각변동이 일 전망이다. 무엇보다 종전 '삼다수'로 국내 생수시장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던 농심의 1위 탈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함께 '한라산물'과 '백두산물'의 대결구도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광동제약이 유통하는 '삼다수'는 한라산물이지만, 농심과 롯데칠성의 생수는 백두산물이기 때문. 이들 3사 중 어느 곳이, 어떤 물이 재편되는 생수시장 1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전망이다.
◆하얀국물라면 '1년 천하'·빨간국물라면 '시장제패'
하얀국물라면 열풍이 1년 천하로 끝났다. '꼬꼬면', '나가사끼짬뽕', '기스면' 등 하얀국물라면 대표 3인방은 올 초부터 점유율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해 11월 판매순위 기준 톱10에 단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 반짝 인기를 끈 하얀국물라면들. 올해는 빨간국물라면에 뒤져 인기순위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
농심 '신라면', 삼양식품 '삼양라면'이 스테디셀러로 입지를 공고히 했으며 팔도 '남자라면'도 인기를 누렸다. 이와 함께 농심 '신라면블랙', 풀무원 '꽃게짬뽕', 삼양식품 '호면당 라면' 등 프리미엄라면도 차별화된 맛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커피믹스 시장 '이전투구'
올 한해 커피믹스 시장에서는 동서식품 '맥심'과 '카누', 남양유업 '프렌치카페카페믹스'와 '루카', 롯데칠성의 '칸타타 스틱커피', 서울우유 '골든카페 모카골드' 등이 과열경쟁을 넘어 이전투구 양상을 보였다. 이는 수요증가에 비해 진출업체와 제품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동서식품과 남양유업 등 업체들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할인, 대형포장 제품에 소형포장 제품 붙여 팔기, 사은품 증정 등 끼워 팔기 식의 무리한 판촉경쟁을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농심까지 커피믹스 시장 진출을 예고해 향후 커피믹스 시장 경쟁은 더욱 불꽃 튀길 전망이다.
◆산양분유, 세슘검출 논란 불구 새 업체 진출 '활발'
환경운동연합이 일동후디스 산양분유에서 방사성물질인 세슘이 검출됐다고 발표하며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 단체가 근거로 삼은 검사법이 일반 식품검사법에 사용되지 않는 방법을 이용한 것으로 밝혀지며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시장 1위 일동후디스가 세슘논란으로 부진을 겪는 사이 아이배냇, 남양유업 등이 산양분유시장에 뛰어들었다. |
한편, 산양분유시장 독보적 1위인 일동후디스가 악재를 겪는 동안 다른 업체들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너도나도 시장진출을 서둘렀다.
신생 분유업체 아이배냇과 분유업계 1위 남양유업이 산양분유를 출시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이배냇은 '산양유 성분100%', 남양유업은 '모유와 동일한 단백질 조성을 갖춘 산양분유'를 앞세워 산양분유 시장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파리바게뜨 등 제과업 중기 적합업종 지정 논란
올초 동네빵집과 기존 가맹점 영업지역 보호를 위한 '제과·제빵 분야의 가맹사업 모범거래기준' 마련으로, SPC그룹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 뚜레쥬르는 기존 가맹점에서 반경 500m 이내 신규 출점이 금지되는 등 국내 매장확장이 까다로워졌다.
여기에 대한제과협회가 동네빵집 생존을 주장하며 동반성장위원회에 제과·제빵업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신청, 지정 여부는 내년 1월경 나올 전망이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이들 브랜드의 국내 사업전개가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대한제과협회가 제과·제빵업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신청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달 선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당초 입장을 바꿔 한 달 뒤로 연기했다. |
◆경기불황에 신제품 급감·장수제품 인기
'불황일수록 장수제품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소비자들이 맛과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신제품을 구매하기보다 검증이 된 장수식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불황 탓에 기존에 익숙한 장수제품들의 인기가 많았다"면서 "신제품 출시도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고, 업계 전체적으로도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올해 식품업계는 전반적으로 신제품 출시보다는 기존 인기제품을 리뉴얼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안정적인 매출신장을 꾀했다.
◆대선 직후 가격인상 봇물
대선 직후인 지난 20일부터 식품가격 인상이 줄을 이었다. 동아원이 21일부터 밀가루 출고가를 평균 8.7% 인상했으며, CJ제일제당도 연내 밀가루 가격인상을 단행할 예정이다. 이 외에 CJ제일제당과 풀무원은 12월초 두부와 콩나물 등 신선식품 가격을 올렸으며, 하이트진로와 보해의 소주 가격도 인상됐다.
이에 앞서 연중 식품업계 전반에서 가격인상이 단행되기도 했다. 풀무원식품(스파게티·냉장면), 오뚜기·동원F&B·사조(참치캔), 롯데칠성·코카콜라(음료), 롯데제과·해태제과(과자), 삼양식품(라면) 등이 올해 제품 가격을 올렸다.
◆3세 경영체제 구축
3세 경영체제가 구축된 것도 올해 식품업계의 이슈 중 하나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차녀 임상민씨가 부장(부본부장)으로 경영에 본격 뛰어든데 이어 임 회장의 장녀이자 임 부장의 언니인 임세령씨가 식품사업총괄 부문 상무로 발령받으며 대상이 3세 경영을 본격 가동했다.
또한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의 딸 김윤지씨도 올해 하반기부터 경영일선에 합류했다. 김윤지씨는 작은 아버지인 김정민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유아용품 계열사 제로투세븐에서 대리로 마케팅 실무경험을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