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과 '초박빙'으로 집계된 방송 3사의 출구조사, 지역색이 뚜렷한 득표율 차이 등 박 당선인의 당선이 확실해 질 때까지 좀처럼 기울지 않는 판세에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소 시시할 정도로 박 당선인의 우세로 끝이 났는데요. 어쨌거나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75.8%로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계시지요? 이는 4050만7842명의 총 선거인수 가운데 3072만1459명이 투표장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나머지 978만6383명은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혹시 이번 대선에서 무효투표수는 몇 표였는지 열고 계십니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12만6838표가 무효로 분류됐습니다.
여기서 알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기권과 무효표는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요. 앞서 말한 투표장을 찾지 않은 978만6383명은 투표 의사가 없어 '기권'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선거장을 찾았지만 고의든 실수든 무효로 처리된 12만6838표는 '무효표'로 구분됩니다.
표면적으로 '기권'과 '무효표'는 두 가지 모두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권을 하느냐 무효표가 되느냐에 따라 투표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실제 투표장도 찾지 않은 '기권'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효표'는 어쨌거나 투표할 의사가 있어 투표장을 찾은 것이기 때문에 투표율에 집계됩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표율입니다. 투표율은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투표율은 정치인들에게 "우리는 이만큼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정당 혹은 후보별로 무조건 지지라는 '고정지지투표층'이 있습니다. '고정지지투표층'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정작 정치인들이 더욱 신경 쓰는 것은 '고정지지투표층'이 아니라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유동층'이고, 이 '유동층'을 가늠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무효표'입니다.
정리하면, 투표율에 포함되는 '무효표'는 정치인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유동층'과 직결되고, 투표장을 찾지 않은 '기권' 행사자는 정치인들에게 총 투표수를 채우는 국민일 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가 아닙니다.
기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의적(기표를 하지 않거나 이중기표, 투표용지에 낙서를 하는 등) '무효표' 행사의 이유는 대부분 "마음에 쏙 드는 후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야말로 예의주시, 정치판을 지켜보고는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권'은 "나는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누가 당선되든 상관없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치인들은 '무효표'에 관심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투표율을 좌지우지하는 '무효표'가 다음 선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알고 있기 때문에 '무효표층'을 분석해 이들을 위한 공약과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투표소도 찾지 않은 채 '기권한다'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더라도 최소한 투표장을 찾아 '무효표'를 행사하는 것이 정치인들을 겁먹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