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롯데그룹이 최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33년간 사용해 온 '호남석유화학'이라는 회사명을 오는 27일부터 '롯데케미칼'로 바꾸기로 의결하자 지역민들이 "호남을 뺐다"며 서운해 하고 있다.
18일 여수산단과 상의에 따르면 이번 호남석유화학의 사명변경은 껌,과자,음료,쇼핑,놀이공원 등 소비재 기업으로 불리던 롯데그룹이 1979년 여수석유화학을 인수, 호남석유화학으로 간판을 바꿔단지 33년만의 개명이다.
호남석유화학은 롯데가 유화산업 진출을 통해 중화학공업분야로까지 사업을 다각화하고 오늘날 '5대재벌'로 성장한 발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매출액은 16조원으로 롯데그룹 전체매출 73조원의 22%를 점유하고 있어 그룹내에서 매출액 비중이 가장 높다.
롯데 측은 "호남석유화학이라는 사명이 특정지역을 연상케 해 글로벌 기업에 어울리지 않아 바꿨다"는 것이 주요 개명사유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여수국가산단에서 성장해 온 기업이 '호남' 색채를 빼는데만 급급하다며 아쉽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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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인 여수석유화학 국가산업단지. |
변변한 기업이 없는 호남에서 '호남석유'라는 사명은 여수산단과 호남을 알리는 매개체가 됐다. 그런데 별안간 '호남'을 없앰으로써 이제는 여수산단에 "호남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 것.
79년 여수석유화학을 인수할때 '롯데석유화학'이라고 짓지 않고, '호남석유화학'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수사람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호남석유가 오염물질을 뿜어대면서 정작 여수지역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는 매우 인색한 기업으로 꼽고 있다. GS가 여수에 다목적문화예술공연장인 '예울마루'를 지어 여수시에 기부한 것과도 대비된다.
그렇다고 GS도 전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수산단 최대기업인 호남정유가 LG칼텍스정유(1996)로 바뀌더니, LG 공동창업주인 구씨와 허씨 가문이 LG 재산을 둘로 나눠가지면서, 또다시 GS칼텍스(2005)로 바뀌어 '호남정유'는 추억의 사명이 됐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호남정유는 단골 우승자인 여자배구팀이 유명해 지역민들은 '호유(湖油)~!' 라고 연호하기도 했다.
산업발전이 더딘 호남에서의 '호남정유'는 럭키금성그룹(현재의 LG) 회장의 고향이 전남 여수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돌았다. 여수 향토기업으로 인식된 것도 사실이다.
여수.순천에서는 삼성보다 금성사(LG) 가전제품이 더 잘 팔렸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금성사 공장은 경남창원에, 삼성전자는 가전공장은 수원에 있어 지역에서는 흔한 전자부품 회사조차 없던 시절 임에도.
여수 토박이 이모(58)씨는 "여수산단 작년 매출액이 89조원을 돌파했는데 여수를 연고로 하는 프로 구단 하나가 없다는 것은 지역사회를 우습게 아는 것"이라며 "여수산단 기업들에 비하면 규모가 턱없이 작은 부영그룹도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연고도 없는 전북에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는 자세는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1970년대까지 '호남에틸렌'이라는 회사도 존재했다. 그러나 건설회사인 대림산업이 인수하면서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로 간판이 바뀌었고, 나프타분해설비는 따로 떼어내 한화와 대림이 합작설립한 '여천NCC'가 태동했다.
이제 여수산단에는 사명에 '호남'을 집어넣은 회사가 한 군데도 없다. 다만, 유일하게 호남화력발전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자세히 뜯어보면 한전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이 전국의 발전소에 지역명을 붙여 '호남'에대한 애정이 강하다고는 볼 수 없다. 동서발전 측은 호남화력 외에도 당진화력(충남), 울산화력, 일산열병합, 동해화력(강원) 등의 사업장 주소지를 사명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수시민 양모(43)씨는 "다른 지역에는 지역에서 성장해 전국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많이 있는데, 여수산단 기업들은 여수시민들과 한마디 양해도 없이 호남흔적 지우기에 여념이 없어 실망스럽다"며 "지역 사람들은 여수엑스포 덕에 고속도로라도 뚫렸지, 그것이 없었다면 도로.철도 뚫는데 기본 20년은 족히 걸렸을 거라는 푸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사명변경 논란에 대해 롯데 측 관계자는 "최근 KP케미칼과 대산유화를 흡수합병하면서 지역명인 호남석유화학이라는 사명이 어울리지 않고 롯데 계열사로 인식되지 못해 혼동을 줄 수 있어 개명한 것이다"며 의도성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