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항공우주산업(047810·이하 KAI)의 지분매각 입찰이 또 다시 무산됐다. 지난 8월 첫 유찰 사태 이후 두 번째 매각 시도마저 물거품이 되면서 매각 대상 기업인 KAI는 물론 입찰자인 대한항공(003490), 현대중공업(009540)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17일 한국정책금융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까지 본입찰 제안서를 마감한 결과 현대중공업만 응찰했으며 대한항공은 참여하지 않았다. 국가계약법상 특정 기업의 단독 응찰은 금지돼 있다. 국유재산 매각 때는 2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는 유효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로써 KAI 매각 이슈는 사실상 다음 정권의 손으로 넘어갔다.
2차 매각 입찰 협상이 불발된 한국항공우주(KAI) 주가가 18일 장중 3% 이상 밀렸다. 유력한 인수 협상자로 거론됐던 대한항공은 "실사 결과 KAI 주가 수준이 적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치권의 부정적인 반응과 4분기 실적 부진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한항공이 한 발 물러선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
반면 대한항공은 최근 4분기 실적 부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인수자금이 소요되는 프로젝트가 무산돼 안도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매각 대상인 KAI 지분 41.75%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약 1조2000억원,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1조5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항공 "KAI 주가 너무 비싸" 이유는 따로?
대한항공은 표면적으로 KAI의 주가 수준을 문제 삼았다. 실사 결과 현재 주가 수준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KAI 인수를 통해 항공우주산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입장은 편함없다"며 "다만 실사 결과 현재 주가 수준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인수 포기는 아니며 향후 주가가 적정 수준으로 내려가면 다시 인수전에 나설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KAI 일부 민영화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도 싸늘하다. 지난 16일 대선후보 3차 TV토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KAI 민영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항공우주기술 발전은 국가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투자하고 지원해야한다"고 말해 민영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
KAI 주가 수준에 대해 시장의 의견도 엇갈린다. 17일 KAI 주가는 2만6700원으로 마감했다. 1년 사이 30% 이상 빠진 가격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해외수주 부진까지 악재로 작용하며 회사 주가는 지난 5월21일 장중 2만3700원까지 하락하며 연중 최저점을 찍었다.
7개월여가 지났으나 주가 수준은 여전히 연중 최저점에서 약 8% 회복하는 선에 그쳤다. 현재 증권사들이 내놓은 KAI의 목표주가는 3만9000~4만3000원 수준으로 지금보다 50% 이상 웃돈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KAI의 '주가 디스카운트'가 M&A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KAI는 국내 유일의 완성항공기 제조업체다.
이상우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회사의 외형 가능성과 신규 수주 모멘텀, 높은 수주잔고 등 을 고려하면 주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며 "다만 M&A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악재로 작용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KAI는 지난달 페루 공군에 초등훈련기(KT-1) 10대 및 경공격기(KA-1) 10대 등 총 20대 공급하는 해외 수주 프로젝트 성사시키기도 했다. 규모는 총 2억 달러(약 2300억원)로 그간 부진했던 해외수주 모멘텀에 대한 기대를 키우면서 시장의 기대를 모았다.
◆대한항공, 현금 쥐었으나 4분기 실적 우려
대한항공은 KAI 지분 인수를 위한 '실탄'(현금)을 모두 확보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차기 정권이 들어서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야 M&A 협상이 재개되는 만큼 회사 입장에서는 1조원이 넘는 여유자금을 비축하게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원화강세와 글로벌 경기 부진 등에 대처하기 위해 대한항공이 현금 확보에 무게를 두고 입찰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증권사들은 대한항공의 4분기 실적 부진을 우려하며 목표주가를 일제히 낮춰 잡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의 지속적인 하락과 외국항공사, 저가항공사(LCC)의 한국 국제선이 늘면서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대보다 느린 글로벌 경기 회복도 악재라는 분석이다.
KTB투자증권은 17일 회사의 목표주가를 기존 6만원에서 5만7000원으로 하향조정했다. 이 증권사 신지윤 연구원은 "원화강세와 항공자유화 추세 등의 영향으로 인천공항 국제선 기준 대한항공의 점유율은 지난달 35.8%를 기록했다"며 "이는 지난해 대비 2.8% 감소한 것으로 시장점유율의 하락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신 연구원은 또 "최근 한일 노선 및 중미 환승 부진을 일시적인 것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며 "이번 KAI 인수 협상 불발도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돼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트레이드증권 역시 14일 대한항공 목표주가를 기존 8만2000원에서 7만원으로 낮춰 잡았다. 이 증권사 김민지 연구원은 "일본노선 실적 부진과 저가항공사 활성화로 인한 변수, 경기 회복 지연으로 인한 화물 실적 조정과 환율, 유가 등을 감안하면 4분기 실적과 목표주가 하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다만 "장거리 노선 지배력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고 영토분쟁으로 인한 일본 노선 실적 부진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판단되는 만큼 투자의견은 'Buy'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IBK투자증권은 이번 매각 협상 불발로 대한항공 주가 향방이 '실적'에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증권사 심원섭 연구원은 "KAI 매각이 재매각으로 결정될 경우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관련 이슈로 인한 주가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실적과 연동된 주가 흐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대한항공과 함께 2차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현대중공업 역시 KAI 인수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한항공보다 현대중공업이 KAI 인수사로 더 적당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차입금 의존도가 17.5%에 불과해 재무건정성을 갖췄다는 점, 일본의 경우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등이 기존 주력 사업인 조선업에서 항공 산업으로 진출 영역을 확대해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석원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은 선박엔지니어링 기술을 바탕으로 항공기 자체설계 및 기술력 향상이 가능하다"며 "기존 해양 뿐 아니라 항공 방위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고 글로벌 영업망을 갖춰 항공기 수출 수주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