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가 주식시장에서는 종이호랑이였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이후 공정위)가 거둬들인 과징금 규모는 1조원대에 육박한다. 그러나 막상 공세에 시달린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기업 주가에는 정부의 규제 약발이 안 먹혔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지난달까지 올해 들어서만 총 9138억원의 과징금을 징수했다. 이는 지난해 3573억원에 비하면 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올해는 농심을 비롯한 4개 라면업체의 담합과 삼성전자, LG전자의 전자제품 가격 담합 등 굵직한 사안이 집중된 것도 이유다.
◆과징금 폭탄 기업, 주가는 '본전' 혹은 '상승'
올해 개별 기업 가운데 가장 큰 과징금 폭탄을 맞은 곳은 단연 농심이다.
공정위는 지난 3월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 기업에 대해 9년 동안 라면값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총 1354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지난 7월 공정위가 공개한 최종의결서에 따르면 농심은 1080억7000만원의 과징금 부과를 명령받았고 삼양식품과 오뚜기는 각각 120억6000만원, 98억4800만원을 물게됐다. 한국야쿠르트 역시 62억6600만원의 적잖은 과징금 부담을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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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규모가 지난 11월까지 9138억원에 달하며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당초 목표치였던 4029억원을 두배 이상 뛰어넘은 셈이다. 내년에는 공정위의 칼날이 더욱 매섭게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목표금액은 올해보다 50% 가량 불어난 6034억원이다. 그럼에도 효과적인 규제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적지 않다. |
1월 가전제품 가격 담합 사실이 적발돼 460억원대 과징금을 물게 된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주가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같은 달 삼성전자 주가는 2.5% 상승해 110만원대를 돌파했고 LG전자는 8.67% 급등했다. LG전자의 경우 지난 3월 해당건에 대한 시정조치와 과징금이 면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같은 달 15일 장중 9만4300원을 찍으며 연중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대림산업, 현대건설 등 8개 대형건설사가 4대강 공사 담합 혐의로 최소 40억원에서 최대 200억원대 과징금 폭탄을 맞았을 때도 관련주는 건재했다.
보도 직후인 7일에만 GS건설과 대림산업, 삼성물산 등이 2~3%대 동반상승한 것. 특히 최종결의안에 따라 225억4800만원으로 가장 많은 과징금을 물게 된 대림산업은 같은 달 내내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했다.
◆현실성 없는 규제 반복, 투자자 '학습효과'
과징금 폭탄이 떨어지거나 새로운 규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일반적으로 기업 주가에는 악재다. 이른바 '규제 리스크'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제나 신규 출점 제한 등이 일부 유통주의 발목을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근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금융투자업계는 흔히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이미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사안' '현실성 없는 규제' 등의 분석을 내놓는다.
일례로 4대강 공사 담합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한화증권은 "과징금이 대형 건설사들의 올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불과하다"며 "해당 건설사의 기업 가치나 업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동요도 적었다.
한 증권사 기업분석팀 관계자는 "정권 말기로 접어들면서 기업에 대한 규제가 계속 쏟아져 나왔지만 현실성이 없는 내용들도 많았다"며 "공정위 과징금 역시 대부분 기업의 영업이익에 비해 규모가 적고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을 거치면 감면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실제 기업 벨류에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보니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투자자들에게는 일종의 학습효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