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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인이라면 투표 전 귀가하지 않는다"

정금철 기자 기자  2012.12.11 1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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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1932년 4월29일 오전 중국 상해 홍구공원. 일본이 자신들 국왕의 생일과 승전을 기념해 행사를 벌이던 왁자지껄한 한 때. 일본 국가가 거의 끝날 무렵, 한 야채장수가 느닷없이 행사장에 수류탄을 투척해 장급 일본군 2명이 사망하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폭탄전문가인 김홍일의 도움을 받아 저격용 물통폭탄 1개, 자결용 도시락폭탄 1개를 품에 지닌 채 식장에 들어가 거사를 치른 그는, 결국 1932년 12월19일 일본 가나자와(金澤)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1908년 충남 예산 출신인 아름다운 청년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義士)'의 짧고도 짧은 25세의 생애였다.

거사 당시 홍구공원에서 일본군 대장 및 거류민단장이 사망하는 것은 물론 중장 둘과 주중공사, 총영사와 서기장 등 어리석게도 순박했던 아시아 국가들을 침탈한 원흉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蔣介石)는 크게 마음이 동해 윤봉길 의사를 '4억분의 1'의 사나이로 인정했다.

장 총통은 이 일을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전폭 지원을 약속, 실제 한국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 응원하는 등 역사적인 새 축을 쓸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윤봉길 의사 80주기되는 날이자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선거가 8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양쪽 발에 신발을 신고 샛길을 미친 듯이 달려 한쪽 팔에 꼭 쥔 조카의 X-mas선물, 18색 노루표 크레파스를 조급하게 전달할 것만 같은 친절한 인상의 일본국 유신정당·신풍 대표 스즈키 노부유키.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저질렀던 이 일본인은 지난 9월22일 가나자와시에 있는 윤봉길 의사 순국기념비에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는 말뚝은 기본이고 윤봉길 의사를 '조선인 테러리스트'라고 비하했다.

이와 함께 이 일본인은 지난 4일 편지와 말뚝,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을 민주통합당 앞으로 보내 "친일파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에 되돌아가라"며 "박 대통령의 초상을 액(액자)에 넣어서 매일 아침 예배하라"고 끼적였다.

아울러 일본의 한 TV프로그램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일본에 '우호적'인 인물로 규정한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반일'로 표현, 일본을 사이에 둔 대립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는 지난 10월16일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며 박근혜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이제 그는 12월19일, 대선일이자 일본에 할아버지를 잃은 날에 일본이 직접 우호적이라고 평가한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위해 필전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  

세계 언론으로부터 '친일을 한 독재자(strong man)의 딸'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으며 대선에 출마한 새누리당 소속 기호1번 대통령 후보 박근혜와 일본에 조부를 잃고 한 서린 인생을 살았지만 결국 새누리당 캠프에 들어가 박근혜를 지지하게 된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 윤주경.  

보기에 따라 애매한 편성이지만 단순하게 구분해 비교 우선가치를 개인에 둔 진보와 국가를 우위로 내세운 보수라는 기본이념에서 보면 애국을 최우선 가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윤주경씨가 보수를 기치 삼은 새누리당을 따르는 처신도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다만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보다는 친일과 반일, 친미와 반미 등 어느 편과 더 가깝고 살가운지를 재는, 유치하고 옹졸한 병폐적 패러다임의 막장을 정치적 괴뢰와 페르소나로 교묘히 둘러 감싸는, 정치활동이라고 볼 수도 없는 자본적 치정(癡情)이 정치로 오인받는 시점이라 가슴이 싸하긴 하다.          

연쇄적으로 꼬인 '뫼비우스의 끈' 같은 치졸한 감정대립을 순서 없이 절단해 바로 펼 수 있는 가장 쉽고도 바른 길은 바로 투표다. 시의적절하게도 바로 며칠 후 우리는 이 권한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다.

진실을 외쳐도 듣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고 진실을 들으려 애써도 들을 수 없는 다수의 무리가 있다. 나중에 대한민국이 더욱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자식의 눈을 통한 자신 속 마음의 거울을 보라. 거기엔 누가 있을까?

끝으로 다음은 윤 의사가 거사를 며칠 앞두고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보낸 유언 중 일부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후략)

순국선열들의 피가 퇴적된 이 땅에 태어나 용감한 투사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젊은이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