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융권이 한숨짓고 있다. 보험업처럼 저금리 기조로 손실 우려에 직면하기도 하고, 카드 및 은행 영역에도 모두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내년엔 금년 실적 반만 되어도 좋겠다"는 소리가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증권 등 전영역을 괴롭힐 문제가 또 도사리고 있다. 과거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던 '내부규준'이 자승자박의 족쇄가 될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될 전망이다.
내부규준과 관련해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은 '금융권 탐욕'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시대적 조류와 무관하지 않다. 단순히 도덕성 잣대에 따른 비판에 그치지 않고 법망의 그물코가 놓친 영역에 실효성 있는 공격 무기로 삼으려는 경향이 엿보이고 있다.
◆문제자금 회수돼도 '내규 미작동 문제' 자체에 초점
우리은행 직원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게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삼 미래저축은행(현 친애저축은행)의 옛 회장 자금 부당인출-밀항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번 징계는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인출 행위를 막지 못한 문제가 도의적 책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상한 업무 처리에 대한 내부 스크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은행 자존심과 체면에 정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 셈이다.
김 전 회장은 영업정지 전인 5월3일 오후 5시께 현금 135억원과 수표 68억원 등 203억원을 우리은행 모 지점에서 찾아갔다. 그는 4시간 뒤 밀항을 시도하다가 체포됐다. 이번 금감원 징계 판단의 의의는 우리은행이 내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음에 무게가 실려있다고 할 수 있다.
3억원 이상 거액이 인출되면 자체 상시감시 시스템으로 걸러내야 하는데, 김 전 회장이 돈을 찾을 때는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또 인출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계좌 비밀번호도 마음대로 바꾼 점도 문제다. 우리은행이 내부 통제에서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는 방증이 이번 무더기 징계라는 것이다. 지점에서 돈을 내준 것은 지급정지 사유가 발생하기 전이 아니냐는 항변이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이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증빙을 갖추고 돈을 찾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논리가 깨지고 은행원들의 책임 문제가 불거지면서, 향후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밀항자금 인출에 응했다는 문제로 다수 직원이 징계 곤욕에 직면했다. 사진은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
◆부당한 접대 논란 결국 일부승소로?
실제로 내규 위반 등으로 제대로 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지 못해 손실을 유발했다는 논란이 '일부승소' 판결을 받은 경우도 최근 나온 바 있다.
대한해운 회사채에 투자한 일반투자자 130여명이 회사채 발행 주간사였던 현대증권을 상대로 4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에서 일부승소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대증권은 대한해운의 유상증자와 회사채발행의 주간사 업무를 맡아 공모를 진행했으나 이로부터 불과 한달여 만에 대한해운이 법정관리 신청을 내 투자자들의 손실을 유발했다.
대한해운 투자자들은 "현대증권이 타 증권사의 각종 분석과는 전혀 다르게 투자설명서를 썼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일반투자자에게 잘못된 판단을 이끌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는데, 이런 투자설명이 (결과가 틀렸다 해도) 합당한 이유와 검토를 거쳐 독립적, 양심적으로 나왔다면 바로 손실 책임을 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법정관리 직전 일부 관계자들이 대한해운 관계자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의혹이 내부통제규준 위반 논란과 연결지어지면서 소제기 당시 부각됐다.
이런 여행이 접대성인지 또 그렇다면 잘못된 업무 추진 등에 영향을 끼쳤는지의 문제를 형사처벌하려면 문제가 내부규준 위배의 경우보다 복잡해진다. 하지만 내부적인 통제망을 고의나 중과실로 깼다는 점이 민사소송에서 다른 논점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라면 재판부의 심증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은행권의 불합리한 업무관행의 폐해를 뿌리 뽑기 위해 단단히 벼르면서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눈길을 주는 것도 내부규준이 갖는 그물망으로서의 유용성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이에 따라 외부의 감시 눈초리에서 벗어나느냐의 문제 뿐만 아니라 늘상 '나와의 약속'을 의식해야 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는 지적이다. 금융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상 긴장하면서 불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운 코스가 펼쳐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