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호사다마, KB국민은행 중국 법인 개소식 관련 출장에서 KB금융그룹 관계자간에 불미스러운 의견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급기야 금융감독원 차원의 경위 파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어윤대 KB금융 회장 등은 KB국민은행 중국 현지법인 개소식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했다. 하지만 ING생명 인수 문제를 놓고 평소 불만이 있었던 어 회장이 사외이사와 고위 임원 등이 참석한 술자리에서 고성을 내는 등 소란이 있었던 것으로 5일 알려졌다. 금감원에서는 경위서를 요구한 상태다.
◆경위서 제출, 상황 따라 미묘한 의미
금감원의 경위서 제출 요구는 루머의 확대 재상산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세부사항에서 다소 다르게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전말 파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금감원의 경위서 요구는 경우에 따라서 받아들여지는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들어서 금감원이 추진한 '검사서비스 품질제고 로드맵'에 따르면 사안이 경미하고 관련 임직원의 이견이 없거나 경위서, 의견서 등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경우에는 확인서 제출을 생략토록 했으며 여기에 좋은 반응을 얻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검사와 관련한 경우다.
위법과 부당행위의 입증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받는 확인서 대신 경위서로 대체하는 게 낫다는 점과 경위서 자체에 대한 호불호 문제는 다른 사항이라는 해석이다. 더욱이 '품위 유지 문제'를 놓고 감독기구에서 상황 파악에 나섰다는 점이 상황의 당사자나 금융기관으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KB국민은행 중국법인 설립 관련한 출장길에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고성을 내는 등 소란이 있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금융감독원이 경위 파악에 나섰다. 사진은 KB국민은행 중국법인 설립 축하 행사 후 한-중금융원탁회의가 열린 모습. |
◆압박에 맞대응 김승유 전 행장, '외교적' 처리한 국민은행
금감원이 은행 고위층에 경위서를 요구했던 사례들을 보면 이 같은 경위서의 의미는 더 두드러진다. 법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모호한 대목에서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또 사실 확인이 필요하면서도 군기 잡기를 겸하는 듯한 뉘앙스로 사용된 경우도 없지 않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인 셈이다.
'김승유 행장 시대'이던 2001년, 하나은행은 현대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CP)과 관련해 금감원에 경위서 제출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새마을금고연합회가 하나은행의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하면서 현대건설 CP에 투자해 달라고 약정을 맺었는데, 이것이 만기가 되자 하나은행은 새마을금고연합회측에 현금 대신 CP 현물을 내줬다. 하지만 당시는 현대건설 사정이 안 좋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그룹이 계열분리로 시끄럽던 시절.
현대건설은 이 어음이 채권은행단이 만기를 연장해 주기로 합의한 '협의채권'이라며 지급을 거부했고 금감원은 하나은행에 경위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하나은행은 이 어음은 특정금전신탁에 들어 있어 은행 재산이 아니라 고객 재산이라며 원칙을 내세우며 반발했다.
이를 은행이 현금으로 대지급할 경우 특정금전신탁의 체계가 무너진다는 주장은 맞지만, 현대건설 위기에 다른 은행들은 지원책 마련에 나서는 상황에 이기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던 것.
당국은 하나은행이 제출한 경위서가 김승유 당시 행장(현 하나고 이사장) 명의가 아니라며 반송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고 김 당시 행장이 금감원을 방문, 원칙에 입각해 설명을 하는 등 이 문제를 둘러싸고 진통이 적지 않았다. 경위서가 해법으로서의 역할을 초기부터 잘 한 경우는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KB의 경우처럼 '고위층의 일신상 문제'로 경위 파악이 진행된 사례는 2003년에도 있었다. 그 당시 시선을 모았던 곳은 국민은행으로, 김정태 당시 행장의 장기 입원이 논란을 빚자 금감원이 '경영 공백' 문제와 김 행장의 병세에 대한 질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민은행측은 병원 진단서와 함께 경위서를 제출했다.
이 같은 김 전 행장과 국민은행의 경위서 처리는 외교적으로 잘 매듭지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외교관들의 경우 마찰이 있거나 불만을 표시해야 하는 경우 건강을 이유로 행사 등에 불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유사하게 수습한 경우다.
당시 정권과 불편한 관계라는 평가가 많았던 김 전 행장은 거취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는 상황. 과로로 인한 입원이라는 진단서를 첨부함으로써 서로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차선책을 찾으며 비껴간 셈이다.
결국 받는 쪽도 내는 쪽도 민감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사실의 확인 차원을 넘어 일종의 숨은 의사 전달과 상황의 백브리핑 등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위서에 관련된 관심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