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55년부터 50년 이상 초창기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 터를 잡아왔던 신흥증권은 지난 2008년 3월 현대자동차그룹에 2090억원 규모로 매각됐다. 현대차그룹은 신흥증권 인수 후 사명을 '현대차IB증권'으로 바꿨지만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HYUNDAI MOTOR COMPANY'의 이니셜인 지금의 HMC투자증권으로 변경했다.
당시 현대증권(003450)은 동일업종에서 현대차IB증권이 '현대'라는 명칭을 사용, 같은 현대 계열사 오인할 우려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고 현대차 측은 범 현대그룹 내에서 소모적인 분쟁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름을 수정했다.
어쩌다 증권사 간 상표권 분쟁과 관련한 이슈가 들릴 때마다 이 얘기가 회자될 정도로, 다소 의외일 수도 있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상표·특허권 분쟁을 보기 힘들다. 그러나 여느 해와 다르게 올해 증권가에는 이 같은 지적재산권 관련 분쟁이 몇 건 발생했다.
◆ '서비스·상품 분쟁' 동업자 정신이 우선
올해 벌어진 이지적인 다툼의 첫 포성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시장에서 들려왔다. 지난 3월 SK증권(001510)은 신한금융투자, 우리투자증권(005940), 대우증권(006800)의 MTS 서비스가 자사 서비스인 '주파수(주식파수꾼)'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안내장을 해당 증권사에 발송했다.
주파수는 입력된 종목과 관련한 신규 뉴스가 나오거나 주식이 목표주가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관련 화면에 연결하는 서비스로, 올 1월 특허등록까지 마친 게 사실이지만 당시 증권사들은 이와 관련해 하나 같이 곤욕스런 입장을 밝혔다.
스마트폰이 활성화하기 전인 피처폰 시대부터 목표가 도달 때 문자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이미 존재했고 주파수의 특허기술이 증권사라면 어차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능인만큼 특별하다고 규정하기 애매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SK증권은 첨단공학 주식분석 프로그램(SRS, Stock Rating System)을 갖춘 '주파수2'의 서비스를 9월 시작하면서 특허에 대한 권리를 크게 주장하지 않아 신경전은 일단락된 상태다.
6월에는 미래에셋증권(037620)이 특허권 분쟁 대열에 합류했다. 해외채권을 포함한 이표채권에 투자하는 월지급식 신탁 상품에 대한 특허 등록을 4월에 끝낸 미래에셋증권은 20년간 특허권을 갖게 됐지만 타 증권사에서도 이미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 독창성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미래에셋증권 역시 SK증권과 마찬가지로 상품에 대한 특허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서 분쟁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 양보할 수 없는 이름이지만 해결 반전도
지난 7월 현대증권과 하나대투증권은 하나의 브랜드를 놓고 맞섰다. 현대증권은 지난 5월 창사 50주년 기념 캠페인의 기치로 '에이블(able)'을 내걸고 대대적인 광고까지 했으나 'able'이라는 브랜드는 이미 하나대투증권에서 10년 전인 2002년 상표권까지 등록했던 것.
하나대투증권과 'able(에이블)' 브랜드를 놓고 양립했던 현대증권은 양사 간 양도협약을 체결해 'able'을 자사의 기치로 계속 내걸 수 있게 됐다. |
이에 대해 하나대투증권 관계자는 "현대증권의 상표권 사용 협조를 대승적 차원에서 검토한 결과 양도하기로 했다"며 "브랜드 유지 및 관리비, 상표권 등록비 등 상표 권리행사와 관련했던 부분을 현대증권이 보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 발생한 모든 지적재산권 분쟁이 당사자 간 협의에 따라 원만히 해결된 것만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솔로몬투자증권은 하나대투증권과 현대증권이 소소한 신경전을 벌이던 7월, 같은 이름을 가진 저축은행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투자증권'으로 개명을 추진하다가 유진투자증권(001200)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1954년 설립된 서울증권은 2006년 7월 유진그룹의 계열사인 유진기업에 인수됐고 이듬해인 2007년 3월 유진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후 같은 해 12월 사명을 현재의 유진투자증권으로 확정했다. 유진투자증권은 2020년까지 서울증권에 대한 상표권을 갱신한 상태다.
이후 솔로몬투자증권은 전문 네이밍업체에 새로운 이름을 의뢰해 '투자(Investment)의 거장(Maestro)'이라는 뜻과 함께 '나는 증권사다'라는 의미도 포함한 아이엠(I’M)투자증권으로 새롭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