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65년 미국 아동문학가 마리 메이프스 도지가 어린이잡지에 연재한 '한스 브링커, 혹은 은빛 스케이트'란 동화를 보면 한 소년이 마을 전체를 구한 얘기가 나옵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은데요.
지대가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 한 마을에 한스 브링커라는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뚝방 길을 걷던 소년은 제방에 엄지손가락만한 작은구멍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소년은 자신의 손가락과 손, 팔 등을 이용해 터진 둑을 밤새 막아냈고, 결국 마을을 구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리 메이프스 도지 저 '한스 브링커, 혹은 은빛 스케이트'. |
잠실에 위치한 모 증권회사. 요 며칠 이곳 단골고객 차림은 한결같다고 하는데요. 짙은 남색바탕 작업점퍼에 가슴에는 하얀색과 붉은색 실이 어우러져 'SS' 수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장관인 점은 하나같이 똑같은 차림의 사람들이 주식거래 창구가 아닌 쌍용건설 우이동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 판매처 앞에서 줄줄이 대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자 임직원들이 직접 자사가 보유한 97억원 규모 우이동 ABCP를 매입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우이동 ABCP를 매입한 쌍용건설 A임원의 말을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최근 급여까지 삭감된 마당에 우이동 어음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3자 유상증자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무엇보다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사내에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죠. 우리 부서 J차장은 어음매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와이프 몰래 보험을 해약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회사 직원들은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현재 쌍용건설 임직원들에 의한 이 운동은 일주일 만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데요. 오랜 기간 쌍용과 함께해온 협력업체들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협력업체 B기업 관계자 전언입니다.
"최근 건설업계에 불어 닥친 위기는 쌍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모두의 어려움입니다. 다만 쌍용은 저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ABCP 매입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죠. 하루빨리 건설경기가 회복돼 건설업 종사자 모두 걱정을 덜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쌍용건설에 따르면 ABCP 매입운동은 약 일주일 만에 47억원 규모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실제 쌍용맨들의 자사사랑은 업계선 이미 정평이 나있는데요. 법정관리 중이던 2003년엔 1장에 고작 2000원 불과한 자사주를 주당 5000원에 매입해 깜짝 놀라게 하더니,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회사가 흑자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급여를 반납해 화제를 낳기도 했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자 본부제를 폐지, 내부조직 슬림화에 나서기도 했죠. 당시 쌍용건설은 기존 6본부41부6팀이던 조직을 28팀으로 확 줄여 임원수를 과거 32명에서 16명으로 딱 절반가량 줄이기도 했습니다.
물바다가 될 뻔한 마을을 구해낸 네덜란드 소년처럼 쌍용맨들도 쌍용건설을 무사히 구해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