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보라돌이~♪~ 뚜♩비♩~나♪나♪~뽀~♬♬ 텔레토비~♪♬ 텔레토비~♬♪”
요즘 아이들은 텔레토비를 보고 자란 세대다. 수업을 해 보면 몇 년 전과는 현격하게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때는 카리스마 있게 치고 나가는 수업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요즘은 부드럽게 이해를 시켜주는 수업을 좋아한다. 권위적인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논술 수업을 하다가 우연히 텔레토비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가 뭐라고 하자 아이 하나가 느리고 낮은 듯 귀여운 목소리로 “싫어~싫어~”라고 천천히 도리질을 치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순간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났다. 피구왕 통키에 열광한 세대였던 나는 텔레토비를 본 적이 없어 그게 뭐냐고 물었다. 문득, 대학 시절 후배들이 “아이 좋아~”하며 몸짓을 파닥거리던 것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가볍게 웃음을 머금으며 “귀여운 것들” 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확실히 우리와는 다른 세대였다. 더 이상 투쟁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또래끼리 사이가 좋았고 모일 때에도 권위적인 모습의 회의보다는 친밀함을 더욱 강조하는 세대였다. 마이크가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면 그 억압에 대해 “싫어~싫어~”라고 온화하게 한번 튕긴 다음 자율적 의지와 선택으로 다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억압은 싫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하지만 그 자유는 싫다고 집을 가출하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온화하게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결국은 제 자리, 즉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현명하고 자율적인 존재인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현명한 선택을 내리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까지도 깊이 있게 생각할 줄 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영상물은 억압을 분노로 풀었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평화롭게 풀어낼 줄 아는 세대로 아이들을 자라나게 할 것이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모든 존재의 조화를 추구하며 문제점을 해결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영상물이 전하는 다양한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부모 세대들은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1. 억압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대
텔레토비는 각기 다른 색깔, 각기 다른 안테나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항상 함께
다닌다. 대립과 투쟁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세대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통합이면서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며 그 개성을 서로 인정한다. 그들의
배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텔레비전은 문화를 상징한다. 자신의 안에 있는 역량을 아름다운 재능으로 만들어낸 문화를 내보이며 따로 따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한명이 문화를 내보이기 시작하면 다른 이들은 모두 집중해 준다. 아이들에게 듣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보고 듣거나 온몸으로 느끼는 것인데, 텔레토비는 바로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문화는 매일매일 다른 존재가 이야기하며 매일매일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많은 억압을 풀고 있다. 보통의 만화에서 설정하고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없다. 혹자는 중성이라고 하지만, 텔레토비는 그 어떤 성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소통에 관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맏형처럼 생긴 ‘보라돌이’는 남성인 듯싶지만 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그냥 하나의 존재다. ‘보라돌이’는 핸드백을 들고 있다. ‘남자는 강해야 돼, 남자는 울면 안돼’라는 하나의 억압을 풀고 있는 것이다. ‘보라돌이’는 어수룩하고 잘 넘어지면서 잘 웃는다. 첫째가 권위를 포기하고 동생인 듯싶은 모두를 사랑하니 다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특히 막내가 제일 잘 나간다. 씽씽카를 타고 달린다. 백인인 듯싶은 ‘보라돌이’가 백인인 듯싶은 ‘뽀’를 예뻐한다. 백인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억압을 푸는 것이다. 또한 ‘뚜비’는 흑인인 듯이 보인다. 그런데 ‘보라돌이’가 권위를 포기하니 그가 모자를 쓰고 신나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백인 우월주의를 없애고 싶다는 소망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가 없이 누가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없어지니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재능을 뽐내며 자유로우면서도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나나’는 여성인 듯싶은데 공놀이를 한다. 남자들의 전유물인 듯싶은 공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여성성의 억압을 푸는 것이다. 때로는 공이 놀라울 정도로 튀어 오른다. 황인종인 듯 보이는 ‘나나’가 공을 튀기는데 그 공이 높이 올라가도 그것이 허용된다. 최근 동양인들의 놀라운 발전과 연관되는 장면이다. 풍부한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는 동양인들(‘나나’)이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모습을 보고 서양인(‘보라돌이’)이 허용하고 예뻐한다. 서로를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하고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다.
‘보라돌이’는 맏형 또는 백인일 수도 있고 또한 모든 일의 주도자일 수 있다. 장자의 권위는 둘째의 시기심을 낳고 막내를 주눅 들게 만든다. 물론 막내라고 귀여움을 받긴 하지만 맏형에게 감히 덤벼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보라돌이’가 온화하게 대하자 아우들은 정말 신나게 달린다. 팀장이 권위적이면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선생님이 권위적이면 아이들은 자유로울 수 없고 잠재된 개성을 맘껏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이 영상물은 보여준다. 아이들은 매우 창의적이고 통통 튄다. 그들이 하는 그 어떤 말도 그냥 하는 말은 없다.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창의성 있는 말을 들어주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사고의 과정을 들어주고 그 사고를 발전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다가가 그들의 말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들어줄 때 그들의 사고력은 증가하고 이른바 ‘천재’로서 뇌가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2. 조화와 통합, 그리고 개성을 존중하는 세대
그들의 문화 창조의 힘은 자연에서 나온다. 자연의 바람을 타고 ‘바람개비’가 돌면 전파가 생성되고, 그들의 텔레비전이 켜진다. 한 명의 텔레비전이 켜지면 다른 텔레토비들은 그 한 명에 집중한다. 다른 존재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들어줄 줄 아는 것이다. 그들에겐 코끼리 모양의 청소기 기계조차도 소통의 대상이다.
텔레토비들이 자연과 조화로울 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온갖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코끼리 모양의 청소기는 인간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주는 충실한 모습을 재현한다. 몇 달에 한번, 또는 일년에 한번 꼴로 기계에 싫증내고 바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꾸어줄 수 있다.
청소기가 쓰레기를 먹어치우면 텔레토비들은 다가가 예쁘다고 애정을 보여준다. 기계에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면 기계가 자생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우리는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어야 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기계는 스스로 움직이며 모든 쓰레기를 먹어치운다. 그것도 매우 열성적으로 매우 기꺼이 먹어 치운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기계들은 인간의 편리를 돕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가는 편이다. 하지만 텔레토비들은 다르다. 기계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안다. 쓰레기를 먹어치우면 예쁘다고 쓰다듬어주며 다정하게 대해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고 있는 핸드폰이나 프린터, 컴퓨터 등은 우리가 일정 금액을 내고 산 물건이긴 하지만, 그 물건에 대한 애정을 가지지 않으면 쉽게 고장 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만약,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을 아이들이 배우게 된다면 물건을 잃어버리는 버릇 또한 점차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아이들은 핸드폰이나 갖가지 기계들을 몇 달 안돼서 싫증내기도 한다. 이 영상물은 그런 아이들의 좋지 않은 버릇을 고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조화는 존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의미를 일깨워 줄 것이다.
텔레토비들은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을 보이며 자신의 재능을 기뻐하고 상대방의 재능에 놀라워하며 서로의 재능을 차례로 내보인다. 또한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 세계와 소통하고 행복해한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으로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는 사회를 이루고 있고 수많은 다양한 구성원이 있기에 그 과정에서 진통을 겪겠지만, 우리 스스로 각성하고 또한 교육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은 매우 중요하며 그 중에서도 조화와 통합의 원리, 그리고 개성 존중을 아이들이 직접 체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3.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고 완벽한 소통을 이루는 세대
텔레토비는 매우 교육적이다. 물론 혹자들은 텔레토비가 순응주의를 낳는다, 동성연애를 낳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성연애는 억압된 성이 왜곡되어 분출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자연스러운 원래의 성을 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개성적인 능력을 개발하고 싶어 한다. 또한 무언가가 싫을 때 공격적으로 싫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학창시절, 필자의 후배들이 그랬듯 온화하게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자율적 선택과 의지로 집으로 돌아간다.
피구왕 통키를 보며 열광하던 세대인 필자에게 그 만화영화는 매우 낯설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나 억압받고 자라면서 많은 모순을 한 몸에 느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평등의 원리를 가르치는데, 전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보며 그 모순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통키처럼 신나게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다짐하곤 했다.
경쟁의 원리는 중요하다. 인간은 서로 경쟁하며 발전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단, 그것이 욕심에 의한 경쟁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일 때 인간은 조화로울 수 있고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다. 부를 추구하는 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존재인, 사회에서가 아니라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하나의 존재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다가올 사회에서의 1등이란 획일화된 1등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재능으로서 자신만의 재능을 발전시키며 그 속도에 따라 부를 획득하게 되는 것.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문화 창조의 힘, 텔레토비는 자연의 기운을 받아 자신의 몸에서 다양한 문화를 창조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텔레토비들은 한 존재의 문화를 집중하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 끊임없이 스스로의 창조의 힘을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발전된 부는 계속해서 돌고 돌아 경쟁의 원리를 통해 끊임없이 부를 창출하며 평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친구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려면 그의 가정환경과 친구관계, 사회적 위치에 따른 영향 관계 등을 모두 면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어느 정도만 알 뿐이지 완벽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우리는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그 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전에는 소통해야 할 대상이 많은 수가 아니었다.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했으며,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와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점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됐다. 인간과 소통이 안 될 경우 자연과 벗하며 소통을 추구했다. 그러나 세상이 발전하면서 교통, 통신의 발달로 세상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세계화는 현재 불균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상을 보는 시야는 넓어지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는 너무나 초라한 듯싶고,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는 것만 같다. 소통의 수단은 발전하여 지금 당장이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할 수 있고, 채팅할 수 있지만 가까워진 수단에 비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인간소외를 겪고 있다. 인간끼리 살을 맞대고 서로에 대한 위안으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던 예전과는 다르게 우리는 때로 홀로 이 세상에 있다는 느낌을 떨칠 길이 없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과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가까워지고 싶어서 전화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목소리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한 인터넷은 글자로 소통하는 도구이다. 글자는 표정을 볼 수 없으므로, 많은 왜곡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모티콘을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사실, 우리는 말 이외에도 온몸으로 표현한다. 간절한 분위기는 눈빛과 몸짓으로 그 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목소리만으로, 글자만으로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기에는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텔레토비들은 맘마를 먹자고 하면서 튜브로 음식을 섭취한다. 맘마를 먹고 문화를 창조한다. 튜브는 직통으로 가는 소통이다. 우리는 서로간의 소통을 통해 텔레토비가 맘마를 먹고 힘을 얻듯이 살아갈 힘을 얻고 서로간의 대화와 관심을 통해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한다. 전화나 인터넷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으로서 서로를 ‘실’로 이어주듯 이어주고 있다. 전화는 둘씩 이어주는 데 비래 인터넷은 수많은 사람을 그물처럼 촘촘히 이어준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그 한계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에 비해 요즘 나오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는 우리에게 직통으로 소통하게 만드는 ‘튜브’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글로 나타나는 상황은 우리에게 표정의 소통까지는 이루어줄 수 없었지만 동영상을 통해 소통하게 되면, 우리는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은 힘들 때에는 서로 위안을 주고 때로는 힘을 주고 그 힘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고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소통할 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것이 이루어지며, 그를
토대로 서로의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 맘마는 기본적인 식사일 수도 있고, 서로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먹고 힘내서 자신
속의 문화를 펼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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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비타에듀(www.vitaedu.com) 인터넷 강사
신설동 비타에듀학원 출강
케이스 2007학습지 해설강의
전) 강남 정일학원/ 부평 코리아에듀학원
송파, 중계 이상수학원/ 스카이에듀학원
중곡동 전문가집단학원 등 다수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