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권영세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이 11일 안철수 무소속 후보 캠프와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를 동시에 노린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파장의 폭과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명 '여론조사기관 현질(꾸준한 노력을 통해 업그레이드해야 할 게임 아이템 등을 현금으로 사는 비신사적 행위)' 의혹이다.
권 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 후보 캠프가) 여론조사 기관에 돈을 많이 풀었다고 알고 있다. 지금 메이저급 여론조사 기관은 출구 조사에 매달리고 있어서 미들급으로 많이 작업한 모양"이라고 말했으며, 이후 발언의 중차대한 성격상 논란이 증폭되자 "점심 때 얘기한 것은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일단 한 발 빼는 양상을 취했다.
여기에 안 후보 진영에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법적 조치 등 전개 방향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안 후보 진영에서는 12일 브리핑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근거를 대봐라"며 권 실장 발언을 맹비난했다.
◆여론조사, '단일화' 앞두고 文에 유리 전개 중인데 왜 安측 격앙됐냐면
현재 문 후보 진영과 안 후보간의 '단일화 추진'이 시동을 건 가운데, 여론조사에 금품 동원 조작 시도가 있다는 의견은 일단 문 후보측에 불리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실제로 근래 나오고 있는 (단일화 관련) 여론조사의 결과는 문 후보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흙탕물을 끼얹으면 일단 주된 피해는 문 후보쪽에 가지 않느냐는 해석인 셈이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 최근 실시한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문 후보가 안 후보보다 우위를 보이는 조사 결과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것).
리얼미터가 9~1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문 후보가 호남에서 47.2%의 지지율을 기록해 34.8%에 그친 안 후보를 12.4%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문 후보는 전국 단위 조사에서도 47.1%의 지지율로, 안 후보(33.8%)와의 격차를 13.3%포인트 차이로 넓혔다.
한국경제와 글로벌리서치의 같은 기간 조사에서도 문 후보는 호남의 야권 단일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52.3%의 지지율을 기록해, 안 후보(43.7%)를 8.6%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전국 단위에서도 문 후보(46.3%)가 안 후보(39.7%)보다 앞섰다.
한국갤럽(5~9일)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호남에서 48%의 지지율로 안 후보(43%)와 오차범위 내에서 이기는 접전 양상을 보였다.
매일경제와 한길리서치가 8~10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호남에서 안 후보(40.1%)가 문 후보(38.4%)와 접전을 벌이지만, 전국 단위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47.3%의 지지율을 기록해 33.8%에 그친 안 후보를 13.5%포인트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렇게 △안 후보가 문 후보에 추월을 당했다는 어젠다 세팅이 되는 상황에서 전체적인 판세에 혼탁 논란이 붙는 것은 상황 고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특히 △안 후보가 문 후보에 비해 판세의 키를 쥐고 있는 호남에서 밀리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고정관념처럼 굳어질 가능성이다. 호남이 정치적 풍향에서 민감하고 중요한 역할을 오래 고수해 온 점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본격적인 논란 부각 전의 결과들, 대체로 위의 결과 정도까지만 인식하고 이후 정보 수정(자료 업데이트)을 심리적으로 거부할 가능성이다. 앞으로 이를 뒤집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혼탁 논란과 뒤섞인 채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문제는 또 있다. 권 실장의 발언의 모호함이다. △대형 업체에 조작을 할 수 없으니 미들급에 주력한다는 의혹이 가리키는 회색지대가 너무 넓다는 데 있다. 여기서 업계 종사자나 정치권 관계자를 제외한 일반인 시각에서 보면 미들급의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에, 안 후보쪽에서는 여론조사를 어떤 방향에서도 활용하기 어려워지는 어려운 구도가 형성된다. 현재 위에서 소개된 정도의 업체들을 모두 업계 상위권으로 볼지, 이들 중 일부를 또 등급을 나눌지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해석론'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여론조사 전반에서 안 후보와 관련한 부정적 색안경이 제거될 가능성과 반비례해 피해가 장기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12월13일 여론조사 관련 공표 금지 시한만이 문제가 아니라 문-안 두 진영이 현재 단일화라는 국면을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이번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일화라는 측면에서 한정해 보자면 사실상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에 즈음해 먹칠을 당한 셈이라는 것이다. 안 후보측이 문 후보 진영에 비해 한층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효과 날까 우려도
이런 점에서 고전적인(고질적인) 네거티브 공세가 여전한 점에 대해서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조직이 없는 비정치인 출신 명망가 후보라는 점에서 안 후보는 문국현 전 대선후보(대선 이후 국회의원 역임)와 자주 비견돼 왔다. 하지만 이렇게 네거티브 공세에 자주 말려들면 문 '이명박-정동영-문국현' 구도보다는 '김영삼-김대중-정주영' 구도에 오히려 가까워질 여지가 높다.
2007년 대선에서는 명망가 출신이지만 'MB=경제 대통령 프레임'을 넘지 못한 비운의 정치 신인 구도로 끝났다면 과거 1992년 대선은 '양비론에 말려든 선거 패배'로 귀결됐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바꿔 말하면, 안 후보의 대선 이후 정치 행보에까지 이번 네거티브 공세는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 정부의 현대그룹 선거 지원 의혹은 관권 시비 논란으로 평가되는 양상이 처음에는 짙었다. 당시 정치권에서도 대선 이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당 때리기가 오히려 동정론을 유발했다는 YS진영 관계자 평(1992년 12월6일 3면)에서 보듯 네거티브성 이슈는 처음에는 동정론을 일정 부분 유발하는 효과마저 있다. 그러나 이후 '금권이 개입하는 선거', '현대를 개입시키는 국민당 내지 정주영' 프레임이 고착화되면서 '기성정치의 구태의연함을 먼저 배운 정주영'이라는 양비론이 등장, 결국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해 YS에 석패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그간 '목동녀 논란' 등 여러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안 후보의 이미지가 '구태의연(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굳건할지, '구태의연함으로 덧칠될지'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