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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9조공사 따낸 한화건설의 배짱

"남이 망설일 때 적극 나서야"…역발상 신화

박지영 기자 기자  2012.11.01 12: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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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재 국내 건설업계는 위기에 빠져있다. '성공의 저주' 덫에 걸려 수년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탓이다. 2000년부터 2008년 초반까지 국내 건설업계는 '주택경기 호황'에 빠져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토목이나 플랜트 등 업종 다각화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주택사업에만 매달린 결과다. 세계금융위기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당수 업체들이 퇴출되거나 워크아웃에 빠진 가운데 끝없는 변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은 몇몇 건설사들의 특별한 비결 및 사연을 엿봤다.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지난해 5월 해외수주 5000억달러 금자탑을 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한화건설 공이 컸다. 지난 5월 한화건설이 수주한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는 해외건설 사상 최대 규모로, 80억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이 사업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km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2018년까지 우리나라 분당 규모(1830㎥)의 신도시를 짓는 것이다.

단일 건설사가 10만 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를 '디자인&빌드(설계·조달·시공 일괄수행)' 방식으로 수주한 사례는 세계 건설역사상 처음이다. 
 
워낙 큰 사업인 만큼 계약을 성사하기까지 힘든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한화건설이 이번 프로젝트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작정하고 때를 기다렸다'는 것에 있다. 애초 한화건설은 이라크 신도시 건립이 확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이라크 전쟁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면 대규모 복구사업이 잇따르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중동 대부분 국가 주택사업은 현지 건설사들이 사업권을 따낸 뒤 외국업체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돼 수익이 별로 없었다. 국내 건설사들이 이라크 건을 외면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라크 미스마야 징에 들어설 1830㎥ 규모의 신도시 광장 투시도.

하지만 한화건설의 생각은 달랐다. 오랜 전쟁 탓에 이라크 현지에는 건설사가 거의 남지 않아 주택사업에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이러한 예견은 그대로 적중했고, 오래전부터 철저히 준비해온 한화건설은 여타 건설사보다 우위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지난 4월 카밀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방한했을 당시 팀당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설계부터 시공, 건설자재 확보, 자금조달 등 신도시 건설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 총리가 매우 만족해했다. 당초 주어진 10분 면담시간을 훌쩍 넘겨 30분이 지났는데도 막지를 않았다. 그때 사업수주를 자신했다."

그러나 한화건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 쇄기'를 박았다. 면담 다음날인 4월28일 총리 수행원들을 위해 헬리콥터를 띄웠다. 지난해 초 사업제안서 제출 당시 "삼성, 현대는 알지만 당신들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 관리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한화건설은 인천 남구 고잔동 일대에 조성 중인 미니신도시 '한화 에코 메트로(1만2000가구)' 현장을 보여주며 저력을 과시했다.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이라크 신도시 건립에 얽힌 에피소드는 이뿐만 아니다. 100여명에 달하는 한화건설 태스크포스(TF) 팀이 이라크 현지에 캠프를 치고 있었던 지난해 10월 어느 날의 일이다. 아침 8시부터 이튿날 새벽녘까지 도시락을 먹어가며 마라톤협상을 한 뒤 새우잠을 자고 있던 김현중 부회장을 현지 파트너가 황급히 깨웠다.

김 부회장이 겨우 눈을 붙인 사이 느닷없이 박격포 포탄이 캠프 바로 앞에 떨어진 것이다.  다들 포격소리에 방공호로 피했지만 김 부회장은 깊은 잠에 빠져 포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사건 이후 '김 부회장은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종'이라는 소문이 돌아 오히려 협상에 간접적 도움을 줬다.

◆타건설사들의 시기와 갖가지 소문

업계의 시기어린 시선과도 싸워 이겨야만 했다. 지난해 5월 이라크 신도시 건립에 대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한 직후부터 한화건설은 오랫동안 '저가수주' 의혹에 시달렸다. MOA 당시 계약금액은 72억5000만달러로 공사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긴 했지만 본계약 때는 77억5000만달러로 5억달러 늘었다. 여기에 향후 물가상승률을 적용한다는 조건까지 달아 실계약액은 8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게 한화건설 측 설명이다.

MOA 체결 이후에도 시련은 있었다. 구속력이 없는 계약이다 보니 제 3국 건설사들이 끊임없이 훼방을 놨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과정을 이겨낸 한화건설은 마침내 지난 5월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와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한화건설은 지난 9월13일 이라크 중앙은행을 통해 선수금 7억7500만불(약 8700억원)을 받아냈다. 선수금은 이라크 정부가 확보한 신도시 건설공사 예산서 집행됐으며, 이를 통해 한화건설은 이라크 현지에 건설자재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국내 자재를 현지로 보내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2014년부터 매월 2000가구씩 5년간 10만가구를 짓겠다는 게 한화건설 복안이다. 

※이라크 신도시 건설공사 개요

□ 공사명: Bismayah New city Projeck
□ 위  치: 바그다드서 동남쪽으로 10km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
□ 발주처: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
□ 공사규모: 1830ha 신도시 단지 조성 및 10만호 주택건설
□ 계약형태: 설계·조달·시공 포함한 디자인 빌드 방식
□ 계약금액: USD 77억5000만달러(에스칼레이션 조항 적용 실제 80억달러)
□ 공사기간: 7년
□ 주요 계약조건
-이라크 정부가 신도시 건설공사 예산 확보 및 주택분양 책임
-한화건설은 10만호 건설 및 단지조성공사(도급공사)
-원자재 등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공사금액 에스컬레이션 조항
□ 추진경과
-2011년 5월25일 10만호 주택건설을 위한 MOA 체결
-2012년 4월     사업추진을 위한 실무협의 타결
-2012년 5월15일 이라크정부 국무회의서 사업계획 승인
-2012년 5월30일 공사도급계약 체결 및 기공식
-2012년 7월12일 선수금 및 이행보증서 제출
-2012년 7월29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라크 총리와 추가수주 논의
-2012년 9월     이니셜캠프 완료, 모빌팀 이라크 부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