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주식시장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유독 까칠하다. 큰 맘 먹고 고심 끝에 종목을 골라 매수 주문을 넣기 무섭게 빠져버리는 주가. 덜컥 겁을 먹고 매도 주문을 내면 기다렸다는 듯 빨간불이 켜지는 시황판을 보고 가슴을 친 게 하루 이틀인가. 이런 상황에서 화살이 꽂히는 곳은 증권사 리서치센터다. 손해를 본 개인들은 물론 언론도 앞 다퉈 '엉터리 전망'을 탓한다. 윤지호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증권사 리서치하우스의 '기본기'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 같은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Back to the Basic.' 윤 센터장은 자신의 투자 및 리서치 원칙으로 '기본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그가 내다본 연말 이후 증시전망과 대선 관련 시장이슈 분석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선거의 계절' 관전 포인트는 역시 '경제'
내달 6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이 증시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또는 롬니 후보로의 정권교체가 특정 섹터에 수혜 혹은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쏟아지고 있다.
윤 센터장은 선거와 경제 상황의 연관성에 대해 "누가 당선돼도 경제 살리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재정절벽 이슈에 대해서는 "임기 중 재정절벽 사태를 굳이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정치인은 없다"며 가능성이 낮다고 내다봤다. |
"과거 미국 선거와 주가를 보면 재임에 성공할 때 주가가 더 좋았습니다. 최근 흐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반영되는 양상이었는데요. 롬니의 선전으로 오바마가 낙선하고 이후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연준에 대한 불확실성이 10월 조정의 배경이 됐던 게 예입니다."
오바마가 또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정책의 연속성, 특히 기존의 느슨한 통화정책이 당분간 이어지는 것은 물론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미디어를 비롯한 성장산업에 좀 더 비중을 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는 부차적 설명도 덧붙였다.
다만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는 정치보다 경제에 집중할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3분기부터 불거진 재정절벽 이슈 역시 실제 시장에 충격을 주기보다는 정치적인 '노이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또 "미국의 부채가 우려대로 심각한가에 대한 답은 '아직은 아니다'"라며 "부채에 대한 비용은 이자인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중은 늘었지만 이자 비중은 여전이 1.5% 수준"이라고 부연했다. 1948년 대공황 이후 이자비중은 평균 1.95%로 아직 평균을 밑돌고 있다는 것.
이어 "재정절벽은 부채비중을 줄이기 위한 것이고 당장 금리가 급격하게 오를 이유도 없는데 한꺼번에 빚을 줄이면 자칫 과거 대공황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이건 연준은 물론 정치인들 역시 잘 아는 사실이고 내년 2월경 재정절벽이 정치권 이슈로 불거질 수는 있겠지만 실제 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장기적 관점을 전제로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결국 경제'라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 대선주자들의 화두로 꼽힌 '경제민주화'는 어떨까. 대기업과 금융권을 압박하는 일련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 윤 센터장은 "세계적인 추세"라면서도 실제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최근 시장 근본주의, 즉 규제를 무제한으로 풀어줬을 때의 부작용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불거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올랐지만 분명한 것은 대기업 집단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역설적이게도 세계경제가 미국의 경기 회복에서 발단을 찾아가듯 국내경기 회복도 대기업의 역할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그는 "여야 어떤 후보가 당선돼도 이런 현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치는 경제와 등을 돌려서는 안 되고 돌릴 수도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투자도 리서치도 기본이 먼저다"
윤 센터장은 인터뷰 내내 '기본'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렸다. 투자도 리서치도 기본으로 돌아갈 때 길이 제대로 보인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개인투자자들을 울린 정치테마주 열풍도 기본적인 투자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개인적으로 단타매매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테마주 트레이딩은 기술적인 방법 중 하나일 뿐 '투자'는 아니지요. 특히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Risk'와 'Danger'를 구분하지 않고 뛰어드는 게 문제입니다."
투자와 리서치센터 운영과 관련해서도 윤 센터장은 "Back to the Basic"을 강조했다. 최근 업황 부진 속에서도 이트레이드증권이 R.A 없는 풀라인업 리서치를 지향하는 것은 기본기를 중시하는 그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
그의 기본원칙은 리서치센터 운영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올해 4월 이트레이드증권으로 둥지를 옮긴 그는 '작지만 색깔 있는 하우스'를 표방하며 조직 담금질에 나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RA(Research Assistant) 없는 '풀라인업 하우스'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일부 증권사들이 애널리스트 규모를 축소하고 보조요원인 RA에게 업무 부담을 떠안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애널리스트는 무엇보다 자료(리포트)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애널리스트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자료 하나하나가 하우스의 자존심이지요. 그래서 R.A에 의존하지 않고 애널들이 직접 데이터 게더링(gathering·수집)부터 참여하는 리서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마다 풀리포트를 발간하는 것도 기본기를 닦기 위한 훈련의 일종입니다."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에게 드리블 훈련만 주야장천 시키던 '영감님'(안 감독)의 심정이랄까. 하우스 소속 애널들은 엄청난 업무량을 감당해야 하고 윤 센터장 본인도 평일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을 불사하며 자료 집필에 열을 올릴 정도다.
한편 그는 좋은 애널리스트의 자질로 인문학적 소양과 성실함을 최고로 꼽았다. 지난해까지 금융투자분석사 자격시험 출제위원으로 활동했던 만큼 '증권맨'을 꿈꾸는 예비 후배들을 위해 윤 센터장은 몇 가지 팁을 귀띔했다.
"7~8년 전부터 면접관으로 나섰는데 요즘에는 정말 준비된 후배들이 많더군요. 벌써 마케팅 능력을 말하는 후배들도 있고 투자동아리 출신들도 많고요. 하지만 우리는 인문학적 소양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긴 승부를 견딜 수 있는 성실함은 필수입니다. 여기에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과 회계, 경제학 기본지식이 있으면 더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