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재 국내 건설업계는 위기에 빠져있다. '성공의 저주'라는 덫에 걸려 수년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탓이다. 2000년부터 2008년 초반까지 국내 건설업계는 '주택경기 호황'에 취해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토목이나 플랜트 등 업종 다각화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주택사업에만 매달린 결과다. 세계 금융위기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당수 업체들이 퇴출되거나 워크아웃에 빠진 가운데 끝없는 변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은 몇몇 건설사들의 특별한 비결 및 사연을 엿봤다.
"따르릉."
지난 6월 어느 날, 서울 송파구 신천동 쌍용건설 본사에 난데없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에머슨퍼시픽사 관계자였다. 코스닥상장사인 에머슨퍼시픽은 경남 남해 힐튼리조트와 금강산 아난티 골프·온천 리조트, 중앙컨트리클럽 등을 개발·운영 중인 곳이다.
"쌍용건설이죠? 여긴 에머슨퍼시픽이라는 회삽니다. 우리가 부산시, 부산도시공사와 함께 동부산관광단지에 6성급 콘래드호텔(2100억원 규모)을 짓게 됐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쌍용건설이 이 호텔을 지어줬으면 합니다."
콘래드호텔이란 세계적 호텔 체인인 힐튼 계열 중에서도 전 세계 20곳에서만 운영하고 있는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다.
다짜고짜 콘래드호텔을 지어내라니, 쌍용건설로선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간단히 풀렸다. 해외관광단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올봄 싱가포르에 다녀왔단 전언을 듣고부터다.
"부산시(사업자)와 부산도시공사(시행자) 관계자들과 함께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21세기 건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을 보게 됐죠. 그 순간 무릎을 탁 쳤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죠. 수소문 끝에 시공사를 찾아냈더니 쌍용건설이더군요,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에머슨퍼시픽 이야기인 즉,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에 버금가는 랜드마크를 동부산관광단지에 지어달란 것이었다.
◆세기의 건축가들 직접 '러브콜'
이처럼 쌍용건설은 찾아서 하는 수주보다 알아서 찾아오는 건수가 더 많다. 이도 아니면 세계적 건설사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거절하는 까다로운 설계를 선뜻 맡아하는 식이다. 일례로 에머슨퍼시픽이 한눈에 반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호텔' 수주일화는 유명하다.
세계적 건축가 모쉐 사프디가 친 마리나베이 샌즈호텔 설계도면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두 장의 카드가 '사람인(人)'자처럼 서로 기대어 서있는 듯한 3개 건축물 위에 축구장 3배 크기(1만2408㎥)만한 배 모양의 스카이파크가 올려져있는 모습이었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호텔. |
지난해 방한한 거장 사프디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통상 복잡한 설계를 마친 후엔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혀 도면을 반복해 수정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죠. 내가 5년 전 꿈꾸며 설계했던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제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은 완공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1세기 건축 기적' '현존하는 건축물 중 최고 난이도 공사'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2008년 건축부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역시 자신이 그린 설계도면을 쌍용건설에 맡기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쌍용건설은 세계 5대 건축가 중 한명인 장 누벨이 설계한 말레이시아 호텔형 아파트 '르 누벨 레지던스' 공사를 약 1억2700만달러(한화 1365억원)에 단독 수주한 바 있다.
◆환경까지 생각하는 명품 맞춤건축
이렇듯 세기의 건축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쌍용건설만의 최첨단 공법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특히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에 스카이파크를 올릴 때는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보잉 747 여객기 전장과 맞먹는 약 70m 가량이 하부 지지대 없이 돌출되는 외팔 보 구조를 띈 까닭이었다.
하지만 쌍용건설은 '경사구조물 공법'과 '경사벽 케이블 고정 시스템'을 활용, 누구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일을 오롯이 해냈다. 실제 이 공법은 싱가포르 건설대상에서 건설 생산성 대상 최고등급인 플래티넘과 골드를 각각 수상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2010년 초에 완공한 오션 프론트 콘도미니엄에는 최첨단 에너지절감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쌍용건설은 평균 기온이 32~34℃에 육박하는 싱가포르 환경을 감안해 설계만으로도 건물온도를 3~4℃ 낮춰주는 시스템을 적용, 싱가포르 건설청으로부터 주거건축 최초로 'BCA그린마크' 최상위 등급인 플래티넘을 받아냈다. BCA그린은 미국의 리드, 영국의 브리암과 함께 세계 3대 친환경 인증마크다.
◆고난이도·고부가가치 토목SOC 집중
이밖에도 쌍용건설은 고부가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고난이도 토목·플랜트 부문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2009년 6월 쌍용건설은 프랑스·중국·홍콩 3개국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제치고 싱가포르 '도시지하철 2단계 사업'을 단독 수주했다. 디자인&빌드 방식으로 수주한 이 프로젝트는 해외건설 40여년동안 역대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해외 플랜트 사업도 순항 중이다. 1980년대 초 사우디아라비아 우나이자 우수 하수처리시설을 시작으로 플랜트 사업에 발을 딛은 쌍용건설은 이후 △이란 하르그 원유 저장탱크 △카란지 가스 주입시설 △인도네시아 수랄라야 화력발전소 △사우디 하디드 제철소 등 다양한 공사를 수행해 왔다.
특히 2008년 3월 수주한 사우디 주베일 담수화 플랜트는 세계 최대 규모 담수설비 시설로, 250만명이 하루 동안 마실 수 있는 생수 80만톤을 생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