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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NLL 폭로 국회의원의 씁쓸한 자기모순

이보배 기자 기자  2012.10.26 11: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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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012년 국정감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오는 10월29일부터 31일까지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번 국정감사의 50%는 정수장학회, 나머지 50%는 노무현-김정일의 NLL 녹취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9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감사가 남아있으니 논란은 이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볼 때, 논란의 요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느냐'와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김정일 간의 NLL 녹취록이 존재하느냐'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녹취록 공개를 요구하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녹취록 자체가 없다"며 새누리당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맞서고 있다.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쪽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다만 기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보여 달라는 새누리당의 행동에 관한 것이다.

지난 22일 새누리당 '민주당 정부의 영토주권 포기 등 대북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소속 송광호 위원장과 처음으로 NLL 의혹을 폭로한 정문헌 의원을 비롯해 이철우·류성걸 의원은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대화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전 NLL을 포기하고자 여론 대책회의를 열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아무리 대선을 앞둔 여야의 자존심이 달려있다 할지라도 황당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지정기록물 공개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진 경우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 등에만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 같은 행동은 법을 만들고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 대통령기록관장에게 불법행위를 하라고 주장한 것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란 △법령에 따른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 △대내외 경제정책이나 무역거래 및 재정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돼 경우 국민경제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 △정무직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물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 및 관계인의 생명·신체·재산 및 명예에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 △대통령과 대통령의 보좌기관 및 자문기관 사이 또는 대통령의 자문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써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기록물 등을 말하고 이들 기록은 현행법상 15년에서 최장 30년까지 비공개할 수 있다.

법으로 정해놓은 대통령기록지정물은 쉽게 말해 약속된 '비밀'이라는 것인데 국회의원들이 나라의 '비밀'을 말해 달라며 무리하게(혹은 무례하게) 떼를 쓴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논란의 핵심에 있는 정문헌 의원이 이와 같은 행동에 동참했다는 것은 더욱 의구심을 들게 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정 의원은 지난 2005년 11월22일 '예문춘추관법'이라는 법안을 발의했다.

'예문춘추관법'은 현재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 법률'의 모태가 되는 법안으로 해당 법안에는 현재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와 유사한 법안이 포함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27조(특정기록물) △대통령은 국가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기록물을 특정하여 공개 및 열람 그리고 자료제출이 가능한 시점을 따로 정할 수 있다. 이 경우 특정기록물의 지정은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시점의 기준은 퇴임 즉시, 퇴임 후 각각 2·5·10·30년 등으로 하며 최장 50년을 넘을 수 없다 △특정기록물은 제1항이 정한 시점이 되기 전까지는 공개·열람되지 아니하며, 누구도 그 제출을 요구할 수 없다. 다만, 춘추관이 특정기록물을 효율적으로 관리·보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그리고 해당 대통령이 형사상의 소추를 받아 그 증거로써 필요한 경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진 경우 등은 예외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현재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 법률'보다 더욱 강한 법안으로 당시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고친 법안이 바로 현행 법안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정 의원이 입법 발의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인데 이런 법을 입법 발의한 인물이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다짜고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내놓으라고 주장한 것은 자기모순이 아닌가 묻고 싶다.

물론 국민의 알권리와 국방경계선이라는 NLL의 특성상 무조건 감춰서는 안 될 일이라는 데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엄연히 관련법이 존재하는 데 절차와 법안 내용을 무시한 채 무조건 내놓으라는 행동에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덧붙이자면 2007년 정상회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장수 전 장관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의원의 NLL 포기 발언 주장에 대해 "처음에는 설마 그랬지.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겠느냐 라고, 생각을 했는데 인민무력부장하고 회담을 하면서 들었던 얘기, 평소에 하시던 얘기, 그때 들은 얘기, 정 의원 얘기, 또 평소에 했던 좌초지종의 맥락을 살펴보면 개연성도 없지 않아 있으니…"라고 말했다.

발언의 요지를 살펴보면 '개연성도 없지 않아 있다'면서 새누리당 측 입장에 무게를 더하는 듯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화록 공개 여부에 대해 "기록은 진실로 봐야 한다. 정 의원이 잘 못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입장에서는 개연성은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내 추론이 틀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면서 "선례 제한을 하고 그것도 보안업무 시행 규정에 따라, 어디까지나 국민 통합과 국익을 위해서 필요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 통합과 국익을 위한다는 전제조건 하에 현행법, 그러니까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진 경우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 등에만 공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스스로 만들어놓은 현행법까지 무시하며 밀어붙이는 정치행태가 참으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