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기자 기자 2012.10.24 15:13:12
[프라임경제] 한화그룹이 지난 10월9일 설립 60주년을 맞았다. 1950년대 한국 경제의 부흥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국의 경제역사를 대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화그룹은, 특히 화학 분야를 시작으로 현재의 태양광 사업, 이라크 수주, 바이오 시밀러 등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통해 새로운 국내산업의 성장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1952년 한국화약을 설립하면서 국내 화약산업의 기초를 다졌다. 또한 1964년부터 화약 이외의 사업 분야의 진출을 꾀한다. 하지만 사업 다각화를 통한 여러 산업에서 회사의 비중은 1981년 김종희 회장이 영면, 김승연 회장이 뒤를 이으며 본격적인 성장경영이 시작된다. 한화그룹 60주년을 기념해 그들의 과거와 현재 업적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1952년 시작된 '창업과 성장·도약'
한화그룹은 1952년 10월9일 모태인 한국화약이 창립된 시점부터 1963년까지를 화약산업에 전념했던 창업기라 할 수 있다. 이어 1964년에는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하면서 처음으로 화약 이외의 사업 분야로 진출했다. 이후 한국화성공업(현 한화케미칼 및 한화L&C)을 설립해 석유화학 계열인 플라스틱 산업분야에 진출, 석유화학 산업의 기초를 마련했다.
한국의 경제역사와 함께한 한화그룹은 60년간의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의 다각화 등 미래 영속가능 기업으로 다시 발돋움을 시작하고 있다. |
이 시기는 한화그룹의 새로운 성장기로 평가되며 화약 이외 사업에 첫 진출한 사례로 꼽힌다. 한화그룹은 故 김종희 회장이 직접 그룹을 지휘하며 1980년까지 석유화학산업과 기계산업 등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10대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1981년에는 제 2의 창업기를 창업자 김종희 회장이 영면하면서 맞이한다. 김종희 회장체제를 김승연 회장이 바통을 이으며 1995년까지 화학산업의 수직계열화, 레저·유통산업, 한화이글스(전 빙그레이글스) 창단, 한화역사 설립, 한양소재와 한양 바스프우레탄 설립, 경향신문 인수 및 한화파이낸스와 제일투자자문(한화투자신탁운용) 설립 등 사업영역의 다각화를 추진해 한화그룹성장의 구심점이 된다.
김 회장은 1996년 10월 '혁명적 개혁'을 선언하며 한화그룹의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1980년대부터 진행됐던 개혁이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자세로 21세기형 사업구조로 그룹을 재편할 것임을 밝혔으며, 1999년까지 선제적이고 급격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2000년대 들어 한화그룹은 경영관행과 기업체질의 개편을 통해 내실경영 완성 및 사업구조 고도화 추구, 새로운 경영평가시스템 구축, ERP경영 도입과 같은 제2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또한 21세기 신 성장 사업의 축을 금융으로 정하고 대한생명(현 한화생명)과 신동아화재(한화손해보험), 63시티, 동양백화점(한화타임월드) 등을 인수, 그룹의 사세를 확장하는 도약기를 열었다. 2007년에는 태국에서 열린 해외사업진출 전략회의를 기점으로 그룹의 '글로벌 성장기'가 시작된다.
◆김 회장 성장의 핵심 '빛' 발한 '경영마인드'
이와 같은 성장과 발전에는 김승연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시적으로 김 회장이 취임하던 1981년 당시 계열사 19개, 총자산 7458억원, 매출액 1조1079억원, 임직원수 1만1600명에서 현재 총자산은 101조6590억원으로 135배, 매출액은 35조950억원으로 32배,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은 각각 163배, 63배 이상으로 증가해 비약적인 도약을 일궈낸 것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김승연 회장의 경영능력은 위기에서 다시 빛을 발했다. 수많은 굴지의 대기업들이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해체되던 중에 한화그룹은 김 회장의 '혁명적 개혁' 선언으로 IMF 외환위기에 대비 한발 빠른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살리는데 일조했다. 이는 한화그룹의 재도약에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평가된다.
또 IMF 위기극복을 위해 몸집을 절반 가까이 줄였던 한화그룹이 2002년 말 한화생명 인수전에서 승리했던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금융권 사업을 계기로 다시금 한 단계 점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김 회장은 무보수로 대표이사에 취임해 인수 1년 만에 한화생명을 생명보험업계 2위 자리로 올려놨다. 아울러 인수 당시 2조3000억에 달하던 누적결손금을 2008년 완전 해소시키는 쾌거를 달성했고, 2010년 3월에는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공적자금 회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글로벌 기업 성장 기반을 굳건히 다지기도 했다.
이어 김 회장은 국내 기간사업과 내수 위주의 사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방문하며 주요 경제인은 물론 정부 관료와 국가수반에 이르기까지 두루 만나며 사업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현재의 한화그룹을 정체되지 않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태양광·바이오시밀러·해외수주' 신성장동력 확보
김 회장에 대한 평가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태양광과 이라크 신도시 사업 수주 등 신성장 동력과 글로벌 비즈니스를 진두지휘하며 한화그룹의 실질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한국, 중국, 독일, 미국 등지에 태양광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 세계 3위 규모(셀 생산능력 2.3GW 기준)의 태양광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최근 독일 유수의 태양광 업체인 큐셀을 인수하면서 태양광 분야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중심에 자리한 태양광 사업은 지난 2010년 중국의 한화솔라원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화그룹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중심에 자리한 태양광 사업을 위해 지난 2010년 중국 한화솔라원을 인수했다(한화테크엠 창원공장 지붕에 위치한 태양광발전소). |
또한 한화솔라에너지(태양광발전소 건설 분야)와 한화솔라아메리카(R&D분야)를 설립, 한화케미칼을 필두로 여수에 연 1만톤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재 한화그룹은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모듈·태양광발전소'에 이르는 태양광 발전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이 분야 최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
건설 또한 남다른 발전을 거듭하며 글로벌 한화의 외침을 부르짖고 있다. 한화건설은 5월 9조원에 달하는 이라크 10만호 규모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사업기간도 7년에 이른다. 이를 통해 한화는 이라크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으며, 향후 지속될 이라크의 국가 재건 사업에서 경쟁사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한화는 바이오시밀러와 2차 전지용 양극재 등 또 다른 성장 동력 발굴에서도 상당한 진척을 이루고 있다. 현재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HD203 임상실험이 거의 마무리됐으며, 지난해 6월 미국의 머크와 7억2000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또한 기존 양극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LCO((LiCoO2, 리튬 코발트 산화물)와는 달리 자연 속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철을 주원료로 하는 LFP 양극재 개발에 성공해 가격경쟁력을 갖춘 친환경 양극재까지 다양한 신 성장 사업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화그룹은 제조, 금융, 서비스·레저 등 현재 53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 네트워크는 현지 법인과 지사 102개로 명실 공히 국내 10대 그룹(공정자산 기준)의 대표주자로 한국산업을 대변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은 101조6590억원이며, 매출액 35조950억원, 순이익 9945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투자는 1조6000억원을 집행했으며, 상시 근로 종업원수는 3만1338명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으로 한국을 알리고 있다.
1950년대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2012년 현재도 1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은 7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화그룹이 7개 기업에 포함될 수 있는 핵심은 무엇일까? 이러한 요인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한발 빠르게 대응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60년간 우리 경제의 기반을 닦고 성장을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영속적이며 지속가능한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시장을 향해 끊임없는 변화와 투자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 영속 가능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한화그룹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