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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최인훈의 '광장'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기자  2012.10.20 14: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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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책만큼 많은 물건도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책들이라도 소설은 소설, 시는 시, 수필은 수필일 뿐이다. 소설 같은 시를 보지 못했고, 시 같은 소설은 더구나 보지 못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읽기 전까지는.

광장! 지금까지 한국 소설가의 작품 중에 100쇄 넘게 읽히면서 스테디, 베스트 셀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은 딱 3 작품으로 알고 있다. 고(故)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리고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 그것들이다.

   
 
책의 서문을 종합하면 1960년 ‘새벽’ 11월호에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던 것 같다. 이후 52년을 흐르면서 <광장>은 개정에 개정이 거듭 되면서 오늘에 이른 것 같다. 그 사이 영어, 일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전 세계인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까? 충분히 있다. 개정을 거듭할 만큼 <광장>에 대한 작가의 혼이 현재 진행형이고, 그 혼이 문장 하나, 단어 하나, 느낌표와 쉼표 하나까지 살벌(?)하리만큼 녹아 들었다. 이전 판과 이후 판의 변화, 이를테면 느낌표의 위치와 단어의 교체에 대해 따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문장 하나, 단어 하나 대충 읽고 지나갈 대목이 없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시처럼 정밀하다. 정말 시 같은 소설이다. 줄마다 읽는 문장의 맛이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이 그윽하여 때론 미소를, 때론 슬픔을 독자로부터 뽑아낸다.

아마도 이 작품의 초판을 완성하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하루에 기껏해야 한 문장 정도 써내려 가지 않았나 싶으니까. 그래서 <최보기의 책보기>를 쓰는 것도 몹시 조심스럽다. 원작의 문장 하나가 하루를 걸렸을 것 같은데 서평도 그리 써야 하지 않을까, 혹시나 원작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칠까 걱정이 앞선다. 사실은 그래서 오랫동안 못쓰고 망설였다.

주인공 대학생 이명준, 교정에서 종로로 걸어 나오는 걸로 봐서 아마도 그 당시 혜화동에 있었다던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학생 정도로 추측된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분단조국의 현실에 대해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는, 상당한 지식인이어야 하니까. 목련 꽃 그늘 아래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슬퍼하고, 달빛 창가에서 인간과 세상을 사유하던 평범한 청년의 삶은 어느 날 찾아온 S서 형사로 인해 처참하게 부숴진다.

북으로 넘어간 공산주의자, 아버지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로 끌려간 그는 복날 개처럼 얻어 맞는다. 그를 멸시하고 때리는 형사들은 일제시대, 일제 순사의 앞잡이로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특고’ 들이었고, 해방 후에는 좌익 때려잡는다는 명분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사람들이다. 독립군 잡아 고문했던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보다 그 시절의 화려했던 무용담을 아예 대놓고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부조리, 자본주의의 <밀실의 광장>에서 펼쳐지는 몰 인간성에 실망한 그는 아버지가 있는 북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사회주의 북한 역시 부조리 천지였고, ‘자아비판’이라는 날 선 송곳의 대가리였다. 칼 마르크스가 인류를 구원하리라던 메신저, 문명 공산사회는 ‘스탈린과 크렘린 궁’이라는 새로운 제왕적 벽에 부딪쳐 무참히 깨져버린 날계란 속 노른자일 뿐이었다.

마침내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전쟁이 터지고 남쪽에 포로로 잡힌 그는 정전과 함께 진행된 포로교환 때 남과 북을 단호하게 거부, 제 3국 행 배에 오른다. 마카오 인근에서 인도로 향하는 타고르호의 어느 아침, 전날 저녁까지 있었던 이명준이 보이지 않는다. 남중국해 깊은 바다에 자신의 몸을 맡긴 것이다. 전쟁 통 동굴에서 꽃 피었던 은혜와의 사랑, 그 사랑의 선물이었던 뱃속의 딸, 뱃전을 따라오는 갈매기 두 마리, 마침내 ‘내딸아!’로 터지는 이명준의 복장이 끊어지는 깊고 깊은 아픔, 독자의 눈물도 여기서 마침내 터지고 만다. 못난 조국의 타살이었다.

님웨일즈의 소설 ‘아리랑’, 1919년 삼일만세운동의 처절한 실패를 보면서 11살에 ‘국제과부 조선’을 떠나는 소년 김산. 해방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울부짖던 그가 <광장>에 있다. 상해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과 그를 암살했던 안두희가 <광장>있다. 1996년 끝내 안두희를 응징했던 박기서의 ‘정의봉’은 그러나 아직 <광장>에 없다. 해방 후 귀국한 의열단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선생과 그를 조롱하고 탄압, 고문했던 일제 순사 출신 수사과장 노덕술이 <광장>에 있다.

조국을 배반하고 일제에 협력하며 호의호식했던 세력들이 오히려 자신의 목숨, 가족의 운명, 가문의 폐망마저 불사했던 독립운동 세력들을 청산해버린 오욕의 역사, 남북 분단의 부조리는 지금도 풀지 못한, 한반도의 숙명이다.

60여 년 전의 <밀실의 광장>은 지금도 여전히 <밀실의 광장>이다. 산업화 독재 시절 온 국민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렸던 재벌이 어느덧 <광장>을 넘어 <골목>의 빵집과 구멍가게 주인의 숨통을 당당하게 노린다. S서 형사에게 끌려가 험악하게 얻어맞고 풀려난 명준이 경찰서 옆 풀섶에 누워 읊조린다.

   
 
좋은 철
궁리질 공부꾼은
보람을 위함도 아니면서
코피를 흘렸는데
내 나라 하늘은
곱기가 지랄이다.

프라임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