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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통계가 강한 나라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9.21 11: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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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흔히 통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세상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디즈레일리의 격언을 언급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문제의 전개 방향과 향후 대응책 등을 '통찰'하려면 지금까지 갖고 있는 자료를 어떤 형태로든 가공해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질 나쁜 거짓말 취급을 하면서도 통계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통계의 중요성과 통계를 다루는 마인드에 관해 여러 가지를 시사한 자리가 근래 있었다. 20일 은행연합회 건물에서는 흥미로운 세미나가 열렸다. KB금융 경영연구소가 준비한 이 세미나는 '주택 경기 장기 침체 가능성'이라는 이슈를 시의적절히 다뤄 입추의 여지가 없이 청중이 몰리는 성과를 거뒀다.

많은 주택 관련 정보가 나왔지만, 여기서는 주택과 관련한 여러 의미 깊은 이야기들보다 그 준비 과정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두번째 발표 연사로 나선 한양대 이창무 교수(도시공학)는 서울과 수도권 집값 부담이 지나치게 높다는 세간의 인식에 제동을 거는 자료들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PIR(Price Income Ratio, 소득대비주택가격비율)을 비교했는데,  우리 수도권과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 PIR을 비교할 때 그 값이 생각보다 높은 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분석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을 갖고 있다.

첫째 PIR을 국제비교한다는 것이 가진 어려움을 여러 복잡한 과정으로 뚫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국내의 시세자료와 동일한 가격자료 취득이 어렵다는 점이 난관이다. 또 가구소득(세전소득)은 각국 도시권별 가구소득 조사자료를 이용하지만, 불가능한 경우에는 Census 중위 가구소득 증가율을 적용해 추정하는 등 보완을 했다. 국내의 지표 문제에서도 각 연도별 가구소득 중위값은 가계동향조사의 중위가구 그룹 증가율 등을 써 추정했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자료의 기준점이 다른 것을 여러 단계를 통해 추정, 보완한 점에서 끈질긴 노력이 돋보이는 발표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보통 말하지만, 단편적으로 흩어진 자료 즉 첩보를 엮지 않으면 의미있는 정보라고 할 수 없다. 하우스 푸어 등 논란이 많고 주택 문제와 관련 실물과 금융 모두가 곤란을 겪는 와중에 이런 주제 선택과 분석 시도가 의미가 깊다. 더 일찍 이뤄졌다면 하는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었으나 지금이라도 이 같은 통계적 접근이 이뤄진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이 발표가 가진 미덕은 통계의 함정 문제와 통계를 바라볼 시각에 대한 주문까지 곁들여졌다는 데 있다.

이 교수는 통계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고 어떤 자료를 쓰느냐의 선택 기로에 따라 여러 다양한 가공이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 청중의 양해를 구했다.

이 교수는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를 활용할 때 다가구주택을 넣을지 말지 선택이 왜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또 이로 인해 통계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는 점 등에 대해 가감없이 설명했다. 또 가계동향조사의 가구소득이 왜 과대평가되어 있는지, 전국 자료만 보고돼 있는 한계점 등을 이야기했다. 여러 가지 '자료 공백'을 메울 '추정치'를 만들 때 기로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여러분이 생각하던 것과 다른 통계가 나왔다고 해서 실망은 말아달라며, 다른 자료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갖고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20일 세미나의 이 교수 발표는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분산된 데이터를 이리저리 가공하고 빈 칸을 보완해 통계화하고 이를 활용하는 점에 아직도 여백이 적지 않음을 드러내 줬다. 이 교수가 이번에 여러 지표를 고생스럽게 가공한 과정 자체가 주택과 소득의 연관 관계 같은 문제에 늘 시달리는 나라에서 여태 이 같은 분석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아 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수의 당부처럼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이 같은 자료에서 출발하더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된 나라가 된다면, 그런 문제점은 빠르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가 강해 미증유의 세계경제 난국 여파에도 여러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 그런 과정에서 여러 다른 관점에서 만들어진 통계들이 제출돼 백가쟁명하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면 구미 선진제국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러 면에서 통계가 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세미나장에서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