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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16일째' 이화의료원, 과녁은 산별교섭

3차례 사후조정회의서도 입장자 좁히지 못해 장기화 불가피

조민경 기자 기자  2012.09.20 16: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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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임금협상을 놓고 지난 5일 시작된 이화의료원 파업이 오늘(20일)로 16일째를 맞았다. 파업돌입 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3차례의 사후조정회의(특별조정위원회)가 열렸으나 모두 협상 불발됐다. 노조 측은 자신들의 요구안 수용만 주장하고 있고, 사측(이화의료원 측)은 아직까지 협상안 마련도 하지 못해 이번 파업은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번 파업의 배경과 진행상황, 향후 전개방향에 대해 노조와 이화의료원 측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화의료원 측은 지난 7월부터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이화의료원지부(이하 이화의료원 노조)와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을 벌여왔다. 지난 9월4일까지 세 달간 열린 총 9차례 교섭 중 이화의료원 측의 불참과 퇴장으로 총 2차례 교섭만 이뤄졌다. 이에 이화의료원 노조는 5일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6년만의 파업 왜?

이번 파업은 지난 2006년 이후 6년만의 파업이자, 2008년 이후 산별교섭을 둘러싼 첫 파업이다.

이화의료원 노조는 △임금 8.7% 인상 △보육대책 마련 △연장근로해결(8시간 이상 초과수당 지급) △비정규직 문제 해결 △식사개선 △무급 안식휴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임금인상이 가장 주요한 요구사안이다. 노조는 이 같은 요구사안 수용을 주장하며 매일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이화의료원 로비를 점거, 집단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화의료원 노조(이화의료원지부)가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병원 로비를 점거하고 이화의료원 측에 임금인상, 근로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화의료원지부(이화의료원 노조) 임미경 지부장은 "이화의료원은 2008년 경영 위기 이후 현재는 실질적으로 경영정상화가 이뤄졌다"며 "조합원들의 (임금삭감)인내와 노력으로 병원이 성장해왔기에 이제는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때문에 임금인상과 보육, 식당시설 개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는 게 임 지부장의 설명이다.

◆"마스터플랜 앞두고 파국 원하나" vs. "조합원 노고 보상 받아야"

실제 이화의료원은 2008년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 통합 이후 경영상의 위기를 맞은 바 있다. 그럼에도 인력 구조조정 없이 직원들의 임금 삭감으로 병원경영을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당시 동대문병원 직원들의 임금이 19%씩, 목동병원 직원들의 임금이 6%씩 삭감됐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임금협상분에 1.5%의 임금보전분을 더해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화의료원 측은 "병원이 위기를 극복하고 경영정상화에 접어들었다 해도 앞으로 마곡지구 제2병원 건립 등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파업은 의료원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병원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데 중요한 시기인 현재, 노조의 요구를 한꺼번에 수용하기엔 힘든 점이 있다"면서 "단계별로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업이 16일째 이어지며 이화의료원 측은 병원 이미지 훼손과 함께 병원운영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노조 측이 병원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데다 노조원들이 파업에 참가하며 병원운영에 지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무하는 직원들을 에워싸고 시위를 벌이거나 출근하는 직원들을 파업현장으로 끌고 가는 등 업무·진료방해 행위도 일삼고 있다.

이에 대해 이화의료원 측은 "파업으로 인해 진료와 업무처리가 지연되는 등 유무형의 손해가 크다"며 "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 대체인력을 뽑아 진료차질을 최대한 만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외래환자는 파업 전보다 20~3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업의 주요쟁점 '산별교섭'?

노조 측과의 협상, 파업 해결에 대해서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산별교섭 안건을 제외하고 임단협 쟁점에 대해서만 교섭하라고 권고했음에도 불구 노조 측이 이를 공식화하지 않고 산별협상 관철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협상에 어려움이 있음을 내비쳤다.

산별교섭이란, 한 병원과 이 병원의 노조가 교섭을 하는 것(기업별교섭)이 아닌 다수 병원(사용자단체)과 이 다수 병원의 노조(산(업)별 노조)가 교섭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약한 사용자단체보다 같은 뜻을 공유하는 노조가 훨씬 교섭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또한, 이 같은 산별교섭에서 타결된 협상 내용은 참여한 다수 병원과 노조에 모두 적용돼 노조에게는 장려되지만, 사용자단체로서는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교섭일 수밖에 없다.

   
파업에 돌입한 이화의료원 노조가 병원 곳곳에 대자보를 붙여 자신들의 요구안 수용을 주장하고 있다.
이화의료원의 이번 파업도 이 같은 산별교섭이 주요 쟁점이다. 실협상 해결에 있어서도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화의료원 노조 측은 다른 병원 노조들과 함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산별교섭을 해왔으나 2009년 산별교섭 결렬 후 지난해까지는 산별교섭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를 산별교섭 재시행의 해로 지정하며, 지난 5월부터 일부 병원들과 산별교섭을 진행, 산별협약을 마련했다. 산별협약 내용은 △임금 8.7% 인상 △보건의료체계 개선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이화의료원 노조 측도 당초 임단협을 통해 산별교섭에 참가하고 산별협약 내용을 이화의료원 측이 수용해줄 것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화의료원 측은 산별교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후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산별교섭에 관한 전권을 이화의료원지부 임미경 지부장에게 위임했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노조 측에 산별교섭 참가 안건을 제외하고 교섭할 것을 권고했다.  

◆산별교섭 투쟁 타깃…파업 장기화 불가피

이러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산별교섭 참가 제외 권고로 한때 이화의료원 분쟁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화의료원과 노조 측은 여전히 입장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권고가 강제할 법적효력이 없는데다, 산별교섭 전권을 위임받은 이화의료지부가 산별교섭 포기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이화의료지부 임미경 지부장에게 산별교섭 전권을 위임한 것이 오히려 이화의료원 파업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올해를 산별교섭 재시행의 해로 선포한 상황에서, 산별교섭 전권을 위임받은 이화의료원 노조 측은 산별교섭 성사에 대표성을 띠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이번 이화의료원의 파업은 이화의료원 노조의 의지뿐 아니라 보건의료노조가 산별교섭에 불참한 사립대학들에 대한 타깃 파업의 첫 타자가 된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전권을 위임받은 이화의료원 노조로써는 산별노조(보건의료노조)를 대표해 산별교섭을 이뤄내야만 하는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19일 열린 3차 사후조정회의에서 노조 측은 산별교섭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의료원 측도 임단협에 대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해 이날 사후조정회의는 결렬됐다. 4차 사후조정회의 날짜도 미정인 상황이다. 
 
산별교섭을 진행해야하는 노조와, 이를 하지 않겠다는 이화의료원 측의 입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파업은 장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화의료원 측은 "병원을 보건의료노조의 목표실현을 위한 도구,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임금협상에는 성실히 응할 것이지만 산별교섭에 대해서는 양보는 없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