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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국내 최고령 빵집의 위엄 “줄을 서시오~”

이보배 기자 기자  2012.09.18 16: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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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어느 주말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한 빵집의 오후 4시 30분 풍경입니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집게와 쟁반을 들고 빵집 안을 배회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매장은 곧 인파로 가득 채워졌는데요. 생전 처음 보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습니다.

드디어 직원이 제빵실에서 따끈한 빵이 가득한 손수레를 끌고 나왔습니다.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빵 쟁반을 매대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집게를 든 사람들이 돌진했습니다. 수북하던 빵은 1분도 되지 않아 동이 났지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군산 '이성당(李姓堂)'에서 단판빵이 나오는 시간의 풍경입니다. 가까운 익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다녔음에도 ‘이성당’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지 않았는데 국내에서는 꽤나 유명한 빵집이더군요.

제과점보다 빵집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이성당은 1945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켜왔다고 합니다. 일제 점령기인 1920년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과점을 해방 직후 한국인 이모씨가 인수해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이라는 뜻의 '이성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이후 지난해 작고한 오남례씨 부부가 사들여 운영한 뒤 지금은 오씨의 며느리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매장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빵의 종류가 그다지 많지 않고, 비주얼 역시 유명 제과점 빵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당을 찾는 사람은 군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단팥빵과 아채빵에 있습니다. 쌀가루 반죽에 달지 않고 부드러운 단팥을 넣은 단팥빵과 각종 야채를 고소한 소스에 버무려 속을 채운 야채빵은 겉을 싼 빵보다 속이 더 많은 게 특징입니다. 도톰한 단팥빵을 상상했다면 생각보다 납작한 겉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한입 베어 물고 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단팥빵은 2010년 인기를 모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소재로 활용된 덕분에 더욱 명물이 됐습니다. 이성당을 군산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관광명소로 만들어준 것이지요.

그런데 단팥빵을 구입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서울 도심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떠올랐습니다. 먼저 묻겠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의 줄서기는 한 줄 서기가 좋을까요, 두 줄 서기가 좋을까요?

과거에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으로 '한 줄 서기'가 권장됐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성숙한 에스컬레이터 문화를 보여주자"며 벌인 운동이 확산된 것이죠. 하지만 한 줄 서기 운동 이후 안전사고가 눈에 띄게 늘고, 에스컬레이터 고장 건수가 잦아지자,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과 지하철 운영기관들은 2007년부터 '두 줄 서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두 줄 서기는 시민들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쁜 사람'들을 위해 걸을 수 있는 왼편과 '덜 바쁜 사람'들이 서서 가는 오른편으로 굳어진 이유 때문입니다.

두 줄 서기 운동 이후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주변에는 '에스컬레이터는 빨리 가기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두 줄로 서서 안전하게 이용하세요'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지만 왼편에 서서 가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두 줄 서기 운동에 부응하고자 가끔 왼쪽에 서보지만, 따가운 뒤통수와 심지어 욕설을 하는 사람들의 등쌀에 오른쪽으로 비켜서기 십상인 것이지요.

하지만 한 줄 서기의 부작용은 확실해 보입니다. 한 줄 서기 정착 직전인 2002년 에스컬레이터 관련 사고는 4건에 불과했지만 2004년 9건, 2006년 43건, 2008년 108건, 2010년 109건으로 8년 만에 27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에스컬레이터 고장률도 증가 추세입니다. 사람들이 서 있는 오른쪽으로만 하중이 쏠리기 때문에 편마모가 발생해 기계 수명이 짧아진 것입니다.

한 줄 서기를 한다고 왼편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길기로 유명한 이대역과 건대입구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실험을 해 본 결과 서서 가는 것과 걸어가는 시간차는 1분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왼편으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빨리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한 줄 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각보다 빠르지도 않고, 위험하고 사고율은 높은 '한 줄 서기'를 계속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용객들의 안전과 에스컬레이터의 수명을 지키면서 혼잡하지 않은 역사 환경을 위해 '두 줄 서기'가 더욱 권장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는 항상 불편이 따른다고 하지만 1분 불편으로 출퇴근길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실천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