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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빌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기자  2012.09.04 16: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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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자신의 삶에 백 프로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은 드물다. 남과 달리 나만 불행과 불운으로 팍팍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괴로워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일단 당신이 어떻게 현재의 당신으로, 여기 지구에 있게 되었는지,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행운아인지 생각해 보자.

지구에 산, 강, 바다가 생기기도 훨씬 전인 38억년-38억년이다-전에 옷도 없이 네발 로 기어 다니던 당신의 먼 직계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지금의 아버지,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성을 만나 자손을 낳았기에 지금의 당신이 태어날 수 있었다.

다시 설명하자면 당신부터 38억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당신의 수많은 직계 선조들이 하나같이 사랑의 파트너를 만났었고, 전쟁이나 천재지변, 배고픔, 질병 또는 산에서 호랑이에게 먹히거나 물에 빠짐으로써 결혼도 못하고 일찍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실로 어마어마한 행운 때문에 현재의 당신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또 어떠한가. ‘무한하게 광활한’이라고 쓸 수밖에 없는 우주에서 사람 또는 진드기, 은행나무와 같은 생물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기로는 우주 전체에서 생물이 존재하는 곳은 우리 은하에서도 별로 드러나지 않은 지구뿐이다.

   
 
별것 아닌 걸로 생각되는가? 4Km 거리 곳곳의 식탁 1500개에 마구 뿌려놓은 소금 알갱이들이 별이라면 그 알갱이 중에 하나가 지구다. 그렇지만 이 지구마저 생물이 살아가기에는 환경이 아주 나쁜 곳이다.

깊은 바다 속에서부터 가장 높은 산까지 생물이 살 수 있는 공간의 높이는 겨우 20Km에 불과하다. 당신 아파트를 우주라 친다면 20Km는 아파트 표면의 페인트칠 두께도 안된다. 그런데 당신 같은 ‘인간’에게 주어진 공간은 더더욱 인색하다. 4억년 전, 인류의 직계 조상들이 바다에서 튀어나와 육지에서 산소를 호흡하며 살기로 하는, 성급한 결정을 내리면서 그렇게 돼버렸다.

그 조상들의 성급함 때문에 인간은 지구상에 생물이 살 수 있는 공간 중 0.05%의 공간 안에서만 겨우 생존이 가능한 존재가 돼버렸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인간은 물속, 땅속, 하늘이 아닌 육지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런데 지구 전체 면적과 공간 중에 인류가 살기에 적합한 육지는 겨우 4%에 불과하다.

인류가 사용 가능한 민물은 빙하까지 다 포함해도 전체 민물의 3%에 불과하다. 우리가 숨쉴 산소가 있는 공기(대류)층은 아무리 높아 봐야 16Km, 지구 전체를 책상 위의 지구본으로 치자면 지구본 표면의 니스칠에도 못 미치는 두께의 공기에 의존해 우리 모두는 숨을 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지구, 그러나 태양계와 우주 안에서의 지구는 사실상 가냘프고 외로운 작은 별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약 1억5000만Km다. 1초에 36만Km를 달리는 태양빛이 7분이면 지구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보는 태양은 7분 전 태양이다.

지금 보는 북극성은 680여년 전, 태조 이성계 대왕이 어렸을 때 북극성을 출발했던 빛이 이제야 지구에 도착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계 이후 지금까지의 어느 시대에 북극성이 폭발해 없어졌다면 사람들은 폭발 후 680년이 지나는 때부터 북극성을 볼 수 없게 된다.

지구의 지름은 대략 1만3000Km, 둘레는 약 4만Km다. 서울-부산을 400Km로 보고 환산하면 지름은 33배, 둘레는 100배 정도다. 시속 10만Km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동시에 자체적으로 적도지역은 시속 1666Km, 극지방은 시속 몇 미터로 자전한다. 이리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의 소리가 당신 귀에 들리지 않음으로써 고막이 찢어지지 않는 것도, 적도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어지러움에 쓰러지지 않은 것도 모두 행운의 연속이다.

광할한 우주도 우주지만 당신은 아직 바다속과 땅속을 1Km 남짓도 제대로 못 들어가봤다. 바다속과 땅속은 더욱 더 수수께끼이다. 지구가 수박이라면 아직 껍질도 제대로 못 벗겨 본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여기에 아무 일 없이 있다는 것, 숨쉬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웃는다는 것, 정말 기적적이지 않은가!

지구의 사양을 벗어나 우주적 관점에서 당신의 ‘거대한, 신과 같은’이라고 밖에 쓸 수 없는 능력 하나만 더 살펴보자. 당신이 무심코 책장을 휙 넘기는 순간 가만히 잠자던 수 천, 수 조 개의 원자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일으키며 빅뱅을 일으킨다.

우주라는 거대한 나무에 열린 열매 하나에 불과한 지구 역시 46억년 전 누군가가 책장을 휙 넘기면서 일어난 빅뱅으로 만들어 졌듯이 당신의 책갈피 주위에 무한히 작은 우주가 탄생하고, 그 미세의 무한 속에 당신 같은 생명체의 먼 조상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뾰족한 돌을 들고 사냥에 나서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기적과 거대한 능력을 타고난 당신이 여기, 지구, 대한민국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평균 65만시간(72년) 정도에 불과하다.

전 우주적 행운을 타고 난 것에 비하면 결코 많지 않은, 찰나의 시간이다. 어찌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덕환 옮김, 도서출판 까치>

프라임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