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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비상경영론,'실전감각' 혹은 '지나친 자가발전'

설비투자 몸사리고 당국실패규정·규제완화요청 초점 논란여지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8.29 1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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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재계의 반격?' 근래 나오고 있는 재계의 경제 진단과 돌파는 정당한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이 28일 "(정부의)재정·통화정책이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투자와 고용에 앞장서기로 했다"고 발언한 가운데 이를 경제민주화 담론 등에 대한 반격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재계의 변화 요구를 대선이 가까운 최근 상황과 연결, 포퓰리즘 정책 논란을 붙이고 이에 대한 공격적 방어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풀이다. 더욱이 이번 발언이 담은 향후 추진 방향 등은 정치적인 기업 때리기에 대한 반응 정도가 아니라 '경제 비관론'을 본격적으로 견인하려는 시동음이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허 회장은 경제 5단체장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글로벌 경제 위기 속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국내 경기의 회복 모멘텀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이에 경제 단체는 (정부의) 재정·통화 정책이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 기업이 직접 투자와 고용에 앞장서기로 했다"고 발언했다.

허 회장의 드라이브에 경제 5단체장들도 힘을 실어 줄 태세다. 경제 5단체장들은 이날 경제를 살리는 데 재계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를 설치키로 했다. 특별위원회의의 수장은 경제 5단체장들이 직접 맡아 힘을 싣겠다는 방침이다. 경제계는 하반기 일자리 창출과 불황기 고용조정 자제 등을 약속했다.

규제 완화론 또 꺼내들고 대기업 혜택 안 크다 해명 열올리는 재계

하지만 당국이 미덥지 않으니 짐을 떠맡겠다는 점이 꼭 선의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이런 여러 발언과 함께 재계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정부 지원도 요청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주고 에너지 절약시설이나 노후시설 개체투자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수출이 어려운 만큼, 의료, 관광, 교육, 문화·콘텐츠 등 서비스 부문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건의했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이 경제위기와 이를 둘러싼 당국 해법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재계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내놔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같은 발언은 경제단체들과 재계의 일관된 뜻을 묶어 표출한 것으로 읽혀 주목된다.
수출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경제침체를 겪고 있는 만큼, 중국이나 미국, 유럽 등 우리의 주요 수출 무대가 모두 냉각된 분위기이기 때문.

하지만 재계가 그 동안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고 의견을 개진하는 데 조심스러웠던 것은 아니라는 점, 여러 번 감지된 움직임의 내용과 방향 등을 겹쳐 보면 이번 5단체장 회동에서 나온 발언들은 정권 말과 경기침체 상황에서 위기론 극대화 효과를 원하고 있는 일련의 흐름선상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7월3일 대한상의가 위원회 활성화를 천명하고 나선 점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대한상의는 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정기회의를 열어 업계 애로사항을 수렴해 기업 의견을 정책당국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22일 전경련은 25개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그룹 위기체감도 및 대응현황 조사' 결과를 내놨는데 위기의 해법으로 필요한 정책으로 '규제완화 및 신규규제도입 지양(60%)'를 비롯해 '금리 추가인하(16%)', '각종 세제혜택(16%)', '추경예산 편성(4%)' 등을 꼽는 등 각종 요구 조건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표명하고 있고 그런 기회 개척에도 적극성을 재계가 보일 것임을 알 수 있다.

26일 전경련이 '기업 R&D 투자현황 및 조세지원제도 개선과제 결과'를 발표하고 대·중견기업의 R&D 투자액 대비 세액공제액 비율은 오히려 감소 추세라는 주장을 한 것도 일부에서 대기업 중심으로 혜택이 쏠린다는 지적을 모면하기 위한 이론적 반격으로 해석된다.

재계 주장 논란 여지 많아…설비투자 몸사리는 등 스스로 문제키워

우선 R&D 세액공제액 비율 논란은,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이 7월26일 "자산상위 10대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 납부액 중 17.2%만 납부했음에도, 임시투자세액공제액 비율과 R&D 세액공제액 비율은 전체공제액의 절반에 달했다"고 비판한 점에 대해 반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재벌이 내는 법인세 규모는 전체 기업의 1/5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이 누리는 세액공제 혜택의 크기는 전체 공제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현재 상위 10대 재벌이 받은 임시투자세액공제 규모는 1조1260억원으로 전체 공제액(2억1165억원)의 53.2%에 달했다. R&D세액공제 규모도 전체 공제액 1조5185억원의 42.2%인 6405억원에 이르렀다. 이런 홍 의원의 문제제기는 윤영선 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의 박사학위 논문 자료 등을 참조해 제시한 것으로 이는 학술적으로 논의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전경련측 반박이 꼭 옳다고 단시간 내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부분이다.

규제의 완화 못지 않게 금리 등 혜택 제공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점 역시 이기주의가 지나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은행 등의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기업대출 금리는 2008년(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시기다) 7.17%에서 올해 5월 5.74%로 크게 하락했다. 회사채 금리는 7.02%에서 4.01%로 급락했고, 국고채 금리는 5.27%에서 3.38%로 내려갔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우리 나라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어떤 방향을 택했는지 드러내는 수치상 징표라고 하겠다.

그런 한편, 근래 전결금리 문제 등이 부각되기 전까지 이로 인해 가계는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적용받았다. 기업과 정부만 저금리 수혜 대상이었던 셈이다. 이미 충분한 혜택 제공을 추진해 왔음에도 추가적인 혜택 요구와 "당국의 금리나 재정정책만으로는 안 된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는 점은 아전인수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설비투자면에서 재계가 보이는 패턴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7일 발표된 기재부의 '그린북'은 근래의 경제 사정과 향후 전망을 내놓으면서 일부 위험 징후를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린북은 설비투자 역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다소 위축되고 있어 둔화될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재계는 과거부터 여러 번 설비투자와 관련한 혜택을 요청하거나, 오히려 이 투자 문제를 순환출자와 연관지어 설비투자 대신 주식매입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해외 전례를 종합해 보면, 1인당 GDP가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증가하던 시기(1995~2005년) 한국의 설비투자 증가율(6.8%)이 같은 시기의 일본(1984~1988년 :10.2%)이나 미국(1978~1987년: 9.3%) 혹은 프랑스(1979~1990년: 9.6%) 등에 비해 크게 부실하다는 우려도 있다. 아울러, 일본의 경우 설비투자 과잉으로 '잃어버린 10년'의 여파에서 선제적 대응을 하는 데 실패했다고 하나 이미 IMF 구제금융 시대를 거치면서 과잉설비 우려를 털어낸 우리와 일본을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 등에서 보면 재계의 시각이 전적으로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나친 위기론 오히려 문제키워…美 위기론자의 고백

이런 점에서 보면, 기업(특히 대기업)들이 현재의 경제 사정과 향후 방향에 관해 위기의식을 지나치게 크게 갖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또 이를 재계 개혁 요구에 대한 방패로 삼는(혹은 삼기 위해 이를 자가발전하는) 것은 모순을 낳을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재계는 현재 상황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으며 위기경영 등 비상대응하겠다는 의견을 많이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위기론 자가발전으로 치닫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표는 '주요그룹 위기체감도 및 대응현황 조사' 중 비상계획 실시 계획 설문조사 결과(전경련 자료).
특히 현재 제로(0)성장 우려 등 저성장 우려감이 있는 것은 실물경제의 침체가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구구조 등으로 볼 때 언젠가 우리 경제가 필연적으로 겪을 요소이기도 하다.

향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12∼2017년은 3.5%, 2018∼2030년은 2.8%, 2031∼2050년은 1.6%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금융연구원 임진 연구위원 언론기고 자료에서 재인용)고 하지만, 인구 추계와 노동가능인력, 자본 축적 등을 감안할 때 종합적으로 올 것이지 당국이나 정치권의 잘못으로 오는 결과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지나친 위기론, 비관론을 부각하는 것은 경제의 자기암시 실현성 등에서 볼 때 좋은 일은 아니다. 금년 2월에 미국의 대표적 위기론자였던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딘 베이커 소장이 칼럼을 통해 "현재 경제 상황에서 비관론자들의 '더블딥' 경고가 관찰되곤 하는데 이는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으며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지나친 비관론 부양에 대해 자성론을 제시한 바도 있다. 우리나라의 재계 일각에서 부는 비관론이 이와 같은 여러 문제점들을 피해 실전감각으로 받아들여질지, 재계만의 공감대와 아전인수로 끝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