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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우려가 연 저금리 시대, Go or Stop?

리먼 사태 이후 두드러져…과실은 기업에 부담은 가계로 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8.29 12: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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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자산은 줄고, 생활물가는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이중고를 겪는 시대. 불황인데도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본격화하는 게 아닌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지수'에 따르면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CSI)가 전달보다 1포인트 떨어진 99를 기록했다. 2월 기준치인 100을 찍은 뒤 5월(105)까지 다소 개선되던 소비심리는 다시 6월에 꺾여(101) 이후 3개월 연속 하향세를 보였다. 이런 한편, 가계의 물가 우려는 여전했다. 기대인플레이션(1년간 물가 전망)은 3.6%로 전달과 같았다.

이런 배경에는 금리를 조정하는 정책으로 돈을 풀어도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저금리 정책에 적절히 제동을 걸어야 할지 가능성을 따져 봐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저금리 수혜는 기업이…돈맛에 취해 주담대 늘렸던 가계만 고생?

최근 일각에서는 가계부실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저금리를 통해 과다부채 가계의 이자부담을 줄이고 통화당국이 금리인하를 통해 대출금리 하락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는 등 현상황에서는 저금리를 활용할 필요가 높다는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예를 들어 LG경제연구원 8월 보고서).

이렇게 보면 저금리 정책이 가계부실화의 적절한 처방인 동시에 가계에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방편일 뿐, 저금리 정책 자체가 가계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정책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 등의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기업대출 금리는 2008년(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시기다) 7.17%에서 올해 5월 5.74%로 크게 하락했다. 회사채 금리는 7.02%에서 4.01%로 급락했고, 국고채 금리는 5.27%에서 3.38%로 내려갔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우리 나라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어떤 방향을 택했는지 드러내는 수치상 징표라고 하겠다. 

그런 한편, 근래 전결금리 문제 등이 부각되기 전까지 이로 인해 가계는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적용받았다. 기업과 정부만 저금리 수혜 대상이었던 셈이다.

이런 와중에서 저금리라는 상황과 은행권의 안전한 대출 선호 현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의 시장은 성장세를 거듭했다. 현재 세계적인 경제침체가 본격화되면서 가계를 괴롭히고 있는 역자산 효과 즉, 실물자산의 가격 하락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은 이 같은 저금리 국면의 그림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13개월 기준금리를 연속 동결하던 국은행이 뒤 7월에 갑작스레 '인하' 카드를 꺼냈는데 이때 실기 논란이 거셌다. 이미 과거에도 '금리 정상화'를 할 기회를 놓쳤다는 실기론이 있었는데 인하 조치 역시 시점상 문제가 없지 않았다는 것. 이런 와중에 2008년 이후 지속돼 온 저금리 기조를 어떻게 털고 가계의 부담감을 줄이고 갈지 주목된다. 사진은 한국은행.

저금리 추진한다고 돈이 도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현재의 금리 추진 방향과 의도에 따라 시중에 돈이 도는 효과가 발생하는가를 들여봐도 부정적이다.

5월 통화승수(금융회사들이 한은에서 공급받은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대출 등으로 시중에 공급한 통화량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는 22.2로,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준을 보였다. 시중에 돈이 도는 속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통화승수가 낮아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 투자와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부동자금은 650조원 안팎을 유지하며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시장 상황을 지켜보려는 자금이 좀처럼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것. 6월 단기부동자금(단기 금융상품군)은 648조5712억 원으로 전년동월(637조291억 원) 대비 11조5421억 원(1.81%) 늘어났다.

이런 와중에 현재와 같은 금리 방향을 유지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도 이견이 일고 있는 점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28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7월 금통위 회의록을 보면, 지난 번 금통위가 기준금리 0.25%포인트를 인하하는 과정에서 6명의 금통위원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나머지 1명은 인하에 기명으로 반대표를 냈다. 임승태 위원은 기명으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3.25%)에서 유지하자고 주장했다. 또 임 위원은 금리가 아닌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와중에 한 위원이 가계부채 문제를 거론, "금리 인하는 오히려 가계부채 연착륙, 저축률 제고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장기 성장 잠재력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하고 다른 위원은 "우리나라 가계대출이 경기순응적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 효과는 크지 않다"고 반박하는 등 가계부채 문제에 있어 금리를 낮게 가져가는 상황이 득이 되는지에 대해 이견이 표출된 점 역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즉 이견이 없지 않지만, 가계부채 연착륙이라는 이슈를 놓고 볼 때에는 저금리가 부정적 영향을 주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달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가계는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대출 등 생활자금을 3079억원 대출받았다. 전달보다 약 세 배가량 늘었다. 올 초부터 꾸준히 감소하던 생활자금 대출은 4월부터 꾸준히 증가했는데, 이를 보면 가계대출이 경기순응적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일본 저금리 실패 반성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

향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통계청 인구 추계와 노동가능인력, 자본 축적 등을 감안할 때 2012∼2017년은 3.5%, 2018∼2030년은 2.8%, 2031∼2050년은 1.6%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금융연구원 추정 자료). 이런 사정은 이번 경제위기 여파를 넘더라도 낮은 성장과 관련해 고민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말로도 바꿔 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리부터 금리를 낮춰 정책의 추진 여지를 스스로 좁게 제약할 필요가 없으며 더욱이 그런 금리의 방향성이 기대만큼의 효과는 없고 가계의 고통만 키우는 부산물을 크게 내놓고 있다면 더욱 재검토의 필요가 있다.

일본이 저성장에 빠지자 일찌감치 저금리라는 정책 카드로 대응했지만 실제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금리라는 유용한 카드 하나만 잃은 셈이 된 예도 있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지난해 3월 희망대장정을 통해 살핀 현장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저금리, 고환율 정책이 국민 생활을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고성장 정책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가 있는데, 우리 경제가 스스로 고성장 기회 자체를 포기하는 경제 방향성을 택할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고성장이라는 명목을 위해 저금리 상황의 부작용을 어느 정도까지 안고 갈지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발언은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번 금통위에서 소수 의견이지만 제기된 것처럼, 총액한도대출제도를 손질해 기업 중에서도 자금 필요성이 높고 반면 융통 사정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벤처기업이나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지방 등에 지원집중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실물경제 침체에 유동성 함정까지 겹치는 난국을 피해갈 방법으로 주목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