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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경술국치 102년, 부러진 '카타나'

이종엽 기자 기자  2012.08.29 09: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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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사상 최대의 태풍 '볼라벤'이 몰아친 8월29일. 대한민국 국민은 분명 여느때 와는 다른 아침을 맞이했다.

이날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혹자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8월29일 일것이다.

102년 전 그날은 치욕의 태풍과 대한제국민의 눈물이 삼천리 강산을 덮어 버리고 남을 날이었다.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국체를 상실하고 황제와 황족, 신하 그리고 만백성이 제국주의 침략의 원흉인 일왕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그런 날이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촉발된 양국 관계는 지난 100여년의 역사 중 가장 첨예한 주제와 상황 전개가 이뤄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과거사 청산과 영토 그리고 민족 자존심을 건 한일 양국의 팽팽한 긴장감은 지금 한반도를 휩쓸고 간 태풍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일일이 사건을 말하지 않아도 양국의 예리한 신경전은 동아시아의 힘의 균형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전세계는 감지하고 있다.

경술국치를 이틀 앞둔 지난 27일 외신들은 의미있는 두 가지 기사를 타전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증거는 없다고 말해 한국민의 공분을 산 사건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상향 조정한 사건이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전범국가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만행을 규탄하며, 수 많은 증언과 자료들이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일국의 최고 지도자급에 있는 총리가 공식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한 것은 세계 속에서 일본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는 단초가 됨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치는 의미심장하다. 최고등급인 ‘Aaa’에서 하향하기 시작한 일본은 이제 한국과 같은 신용등급을 가진 나라가 됐다.

이는 최근 일본이 통화스와프 축소 등 한국에 대한 광범위한 경제 제재를 검토 중인 시기에 전세계가 한국의 안정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쇠락하는 일본과 이미 일본의 등을 밟고 올라서려는 대한민국.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는 미국이 어느 누구 편도 들지 못하고 있는 현상황은 한국과 일본의 대립각이 향후 동아시아가 전세계 힘의 균형의 중심에 있음을 반증한 것이며, 더 나아가 '탈아입구'를 지향한 일본은 더이상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공동체적 정체성 형성이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독도 문제로 격앙된 한일 양국과, 중국과 일본, 일본과 러시아는 지난 100여년 전 정리되지 않은 영토 문제로 언제든지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

여기에 미국, 독일과 함께 전세계 경제를 호령했던 일본은 더이상 경제대국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이미 한국과 중국이 기술력은 물론 각 산업군 별 규모의 경제가 이제 어깨를 견줄만 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지난 세기 단카이 세대가 벌어 들인 자금은 서서히 소진될 것이며, 일본 자체 내에서도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라고 외칠 만큼 국가 전체 분위기는 일부 우익세력을 제외하고는 논외시될 만큼 활기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일본의 신진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사카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시장 정도가 '일본 재건'을 내세우며, 발버둥 치지만 한계가 있다.

광속으로 변화하는 세계 경제 흐름 속에서 '갈라파고스 섬'과 같이 도태·변종이 돼 버린 일본은 더이상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한때, 최고의 전자제품이라고 칭송받던 소니와 도시바, 파나소닉은 이미 우리 삼성과 LG의 발 아래 제품으로 전락했으며, 독일 이외의 차와는 경쟁을 불허한다고 외친 일본의 자동차 산업도 기술력과 끈기로 똘똘 뭉친 현대차와 기아차의 도전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달 자주 방문하던 일본의 공업도시 메카 나고야를 들렀다. 지인의 소개로 시미즈건설과 미츠비시중공업의 관계자를 만났지만 이들에게 관심은 '내일'이 아닌 '오늘'로 바뀐 것을 여실히 느꼈다.    

노쇠해가는 자신들과 젊은이들이 사라진 도시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화려했던 과거만 회상하는 무기력한 모습이 작금의 일본이다. 세계화의 문을 닫아버린 젊은이들과 이들을 이끌어 가기에는 기력을 상실한 일본, 이들은 결코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현재는 비록 고단한 삶을 살고 있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법은 배운 청년들과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친면서 갈고 닦은 노하우를 전세계에 곳곳에 펼치고 있는 장년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난 세기 만주벌에서 이름 없이 산화한 청년들과 가슴에 품은 뜻이 하늘에 사무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절반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웅혼했던 한민족 역사의 회복에 전력을 기울여야한다. 아시아의 패자를 넘어 세계를 호령하기 위해 남북 협력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민족 과제다.

   
 
그렇다고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 아니다. 남북 모두의 뜨거운 에너지가 민족 미래의 불씨가 돼 지난 100여년 전 금수강산을 유린한 이들에게 과연 어떤 손을 내밀 것인가 고민해야할 때가 올 것이다.

못난 동생을 혼내 줄 회초리를 들 것인지, 역사와 예를 다시 가르칠 손을 내밀 것인지 말이다.

이종엽 자본시장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