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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은행, 헤어짐의 뒷모습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8.28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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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좋은 금융상품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솔깃해져 이것저것 가입하는 A양. 막상 들어놓고 제대로 관리를 못해 숫자만 창대하고 총잔고액은 미약한 지경에 이르렀는데요. 날을 잡아 여기저기 은행을 들러 쓸데없는 통장을 해지하기에 이릅니다.

은행마다 통장을 해지할 때 처리 방법이 다르더군요. 전산으로 출력된 ‘계산서’, ‘확인증’을 내주는 것은 같지만 통장 뒷면에 마그네틱선을 떼어내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은행은 삼각형으로 통장 모서리를 오려내고 거기서부터 마그네틱선을 벗겨내고, 신한은행의 경우에는 마그네틱선만 제거합니다. 신한은행의 경우에는 지점에 따라 통장에 고무인으로 사용불가를 찍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하나은행 홍보팀 관계자에게 문의해 봤지만, 이런 세부적인 처리는 특별히 어떻게 하라고 신입 행원 시절에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실제로 지점 배치를 받으면서 편한 방법대로 요령과 재량에 따라 습관처럼 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어차피 폐쇄된다는 게 중요하지 “이렇게 가위질해 해지하면 예쁘다”거나 “이것이 바로 숨막히는 폐쇄 통장의 뒤태” 운운할 것은 아니니까요.

진정한 통장 해지의 뒷모습은 도장을 찍느냐 아니냐 통장 뒷면을 어떻게 오리냐 같은 부분이 아니라 거래를 끊고 나가는 고객에게 어떤 말을 하며 거래를 매듭짓는지 같은 대목에 있지 싶습니다. 어느 은행에서는 말썽꾸러기 A양이 만기도 한참 남은 적금을 급히 깨겠다고 신청하자,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진 고객이라고 생각했는지 “나중에, ‘꼭’ 다시 오시라”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 어려운(?) 고객이 된 A양은 살짝 기가 막혔다고 말하고 있지만, 막상 그 행원의 따뜻한 말에 나중에 꼭 그 은행에 다시 적금을 들러 가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고객의 정서적 측면을 고려하는 CEM(Customer Experience Management) 영업이 주목받으면서 이런 헤어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지도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됐는데요. 특히 이런 영역은 이제 우리 ○○은행과 인연을 끊고 나가는 고객이라고 생각하면 관리 대상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는 CRM(Customer Relation Management) 마케팅과는 결이 다른 접근이라고 하겠습니다.

A양의 경우가 CEM의 ‘좋은 사례’였다면 참고로 이번에는 CEM의 ‘나쁜 사례’를 하나 보시겠습니다. 아래의 사진 속 인물은 고객 응대에 불만을 품고, 자신이 갖고 있는 거래관계를 몽땅 폐쇄하겠다며 증오를 불태우는 고객(편의상 B양이라 합니다)인데요. B양은 은행에 들렀다가 같은 금융그룹에 속하는 카드를 발급해 만들어 쓰던 고객입니다. 불편을 느껴 ○○은행에 문의를 했다고 하는데, “고객님 그건 ○○은행이 아니라 ○○카드에 문의를…”이라는 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문제는, 그런 안내를 하는 중에 고객에게 응대하는 태도가 불친절했느냐는 논란이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더 큰 논란과 문제는, 이에 기분이 상한 B양이 “나 이제 ○○은행 통장도 없애 버리련다”고 하자, 카드대금 다 빠져 나간 다음에나 없앨 수 있다는 대꾸를 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이 신청돼 있던 계좌이체 문제를 다 정리한 다음에야 통장을 폐쇄할 수 있다고 은행들이 주장하는데, 이미 일전에 본지에서 다뤘듯, 큰 논리적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은행연합회 쪽 설명 등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더욱이, B양이 정작 듣고 싶었던 말은 “왜 갑자기 그러시느냐”는 수습용 멘트였을 텐데, 그 대신 (통장에 자동이체 신청돼 있는) 카드 대금 다 나간 뒤에 해지 가능하다는 쿨한(쌀쌀한) 대응만 돌아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 원성에도 어느 정도 귀를 기울여 볼 문제입니다.

2008년에 나온 어느 조사 결과를 보면, 은행 등 서비스업종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그 유혹을 받고 실제 이탈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일본의 이탈 비율에 비해서는 2배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런 이동으로 인해 연간 국내 기업에 발생하는 비용은 약 3조7000억원, 특히 본인의 이탈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까지 서비스에 대한 불만 표출, 이를 바꾸도록 권유 등 영향을 끼치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연간 약 5조5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이 보고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A양도 B양도, 은행 입장에서 보면 이제 거래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떠나겠다는 ‘똑같이 영양가 없는 사람’이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그런 고객들과 작별하는 은행들의 뒷모습은 이렇게나 통장을 정리하는 뒷모습의 다양함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니 ‘우리는 과연 고객들에게 어떤 뒷모습을 보이고 돌아선 금융기관으로 기억될지’ 은행들로서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