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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국대표번호의 불편한 진실: 불필요한 지출

백혜정 기자 기자  2012.08.23 16: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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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588, 1599, 1688, 1577 등으로 시작하는 전국대표전화서비스. 누구나 한번쯤 이용했을 법한 익숙한 번호다. 전국대표전화번호를 이용한 CM송까지 방송전파를 타고 있어, 이젠 술술 외울 정도로 친근하다.  

하지만 이 번호를 이용할 때 일정한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 같다. 지난해 5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국대표번호 이용자 중 48.6%가 자신이 통화료를 부담하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전국대표전화요금은 3분에 39원으로 비싼 편이 아닌듯 보이지만, 이 번호를 수시로 이용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전국대표번호 도입 시기엔 지능망 설치 등의 이유로 전국대표전화의 요금이 일반전화 대비 최대 3배나 비쌌다. 전화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항의가 빗발쳐 방송통신위원회에선 2004년 6월부터 전국대표번호도 일반전화요금(3분에 39원)과 같은 요금을 부과하도록 개선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전국대표번호 요금은 그대로다.

하지만 최근 이용료가 싼 인터넷전화가 각 가정이나 기업으로 확산되면서 일반전화가 상당량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전국대표전화서비스 요금은 상대적으로 높게 와닿는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전국대표번호는 편리하긴 하다. 일단, 번호 외우기가 쉽기 때문에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이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챙긴다. 전국대표번호는 번호 외우기가 쉬운 정점 때문에 단골고객유치에 유리하고, 이는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업 이미지 제고에 도움 되는 측면도 있다. 소규모 기업이 아닌, 어느 정도 갖출 건 갖춰놓은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고객관리가 수월하다는 이점도 있다.

전국대표번호는 음식 배달 업체들이 선호하지만, 상담이나 항의신고 등을 담당하는 기업 고객센터가 널리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발견된다. 소비자를 위한 명목으로 만든 고객센터전화에 유료요금이 붙어야 하는지의 문제다.
 
고객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대한 요금을 기업이 부담하는 수신자부담 서비스도 있다. ‘080’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거의 다 수신자부담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전국대표번호를 쓴다. ‘080 번호는 상대적으로 번호가 길어 기억되기 힘들다’, ‘전화요금을 모두 부담하기엔 액수가 크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1588, 1599 등의 발신자부담 번호를 선호한다.

통신업체도 문제다. 통신업체는 전국대표번호를 원하는 이(흔히 기업)로부터 요금을 받고 이 번호를 제공한다. 통신업체들은 이용자 즉, 기업들에게 전국대표번호 가입 권유를 위해 기본금을 제외하곤 추가요금이 붙지 않는다며 발신자요금부담 번호를 추천한다. 또 회선등급이 높을수록 소비자(기업)에게 좋은 번호를 제공하는데, 기업이 좋은 번호를 받기 위해선 최소 월 400만~500만원 정도의 비싼 기본금을 내야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부담하는 ‘비싼 기본금’은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게 뻔하다. 비싼 요금은 상품 가격에 고스란히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통위의 책임도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7월 전기통신번호관리세칙을 개정, 전화가 이용자에게 연결되기 전 통화요금 부담여부 등의 정보를 무료로 안내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이 거의 없음에도 시정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속담이 있다. 전국대표번호로 이익을 챙기는 곳은 기업과 통신업체, 두 곳이다. 언제까지 소비자가 전국대표번호 요금을 부담해야 할까. 소비자 입장에선 안 써도 될 돈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비자들이 통신사와 기업의 장사속 때문에 지출하지 않아도 될 돈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