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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일본식 불황 공포에 묻히고 있는 '대기업 역할론'

日과 상황 다른데 DTI 완화에 고용·연구개발 축소 등 해법은 거꾸로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8.21 07: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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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일본식 불황의 우려감이 점차 현실로 나타나면서 침체를 헤쳐나갈 해법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가고 있다. 19일 각종 연구소 등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최악의 경우 이번 3·4분기 경제성장률에서 '제로 성장'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를 덮친 실물경제 침체의 파도가 결국 우리 경기의 침체로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19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민간·국책연구소, 학계 및 금융기관의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 하반기 경제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3명 중 32명(74.4%)이 한국경제의 L자형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기업 등은 해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 마지막까지 지켜온 부동산 규제의 마지노선을 푸는 초강수를 띄웠다. 또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각종 투자 문제에서 기업들이 몸을 사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점도 현상황에 대한 반응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재의 경기 해법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우선 부동산 해법은 겉으로는 자산 디플레이션이 올 경우 버티기 힘든 취약층을 배려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자산가들을 위한 배려가 혼재돼 있는 등 부동산·토건을 중심으로 한 경제 신화에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다.

또, 설비와 인력의 고용 등 각종 투자 문제에서 기업들이 몸을 사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법들이 우리 현실과 다른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즉, 부동산 버블 붕괴를 극도로 우려하는 경향의 한켠에서 긴축경영 패턴이 나타나고 있는데, 다만 과연 이것이 온당한 방향인가에 대한 논의는 본격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외의 경제 사정은 버블 붕괴 무렵의 일본과 다소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일본식 불황에 대한 공포감으로 해법의 단추를 잘못 꿰 나가고 있는 게 아닌지 살필 시점이다. 특히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대기업의 역할론을 주문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중소기업에 고통 분담을 크게 요구하는 양상으로 진행되는 점은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본식 버블, 중기대출 문제에 고용 & 설비과다 겹쳤다지만… 한국은?

일본식 불황을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 버블의 붕괴를 막는 데 실패했다는 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단지 부동산 버블 붕괴 때문에 부실채권 문제가 10년 가까이 지속됐다거나 일본의 경제 회복이 꼭 이 문제만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다.

금융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장기침체:일본의 경험과 시사점(박종규 선임연구위원, 주간 금융브리프 15권 46호)'은 부동산 관련 대출 외에 △버블 기간 중 대폭 늘어났던 중소기업에 대한 일반대출이 부실화된 문제 △1980년대 후반에 누적된 과잉설비가 너무 많아 상당기간 신규투자가 안 됐다는 점 △버블 기간 중 인력 과잉 고용을 했지만 이를 적기에 시정하지 못한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일본과 우리가 같은 경제 베이스를 갖추고 있다면, 중소기업의 대출 컨트롤과 고용과 설비 과잉에 대한 강한 브레이크를 거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럽 재정위기를 맞이하기 전까지의 사정을 보면 지금과 같은 해법을 꺼내드는 게 온당치 않아 보인다.

근래 은행계 내외에 따르면, 중기 대출 연체율은 은행별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최대 3%대에 근접했던 중기 연체율은 은행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1%대로 떨어져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한국은행, 2012년 2·4분기)'가 "국내 은행의 대출태도는 중소기업 및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대체로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됨"이라는 상황은(이런 내용은 KDI, '2012년 2·4분기 부동산시장 동향분석'에도 소개돼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경계와 금융지원에 대한 인색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용 문제 역시 마찬가지. 일본은 버블이 한창 끼었을 때 과도한 고용을 했다가 이를 털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불황의 터널을 통과하게 됐다고 하지만, 우리의 고용 상황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 요청(1997년) 이후 크게 유동성이 높아진 이후 과잉고용을 걱정할 정도로 호조를 보이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 제조업 취업자가 1년 만에 늘어나는 등 지난달 취업자가 1년 전보다 47만명 늘어났다고 하지만, 이는 은퇴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창업 열기에 기댄 측면이 크다. 또 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히 활동해야 할 20대에서 40대 일자리는 줄고 있다. '고용의 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등은 특히 청년층 고용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7월26일 ‘경제동향 및 이슈’를 통해 내수부진과 저성장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표 참조). 이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감소한 것은 내수부진 탓이다.

설비의 과잉 문제 역시, 한국은 IMF 시대를 겪으면서 그 전의 과잉 부분을 해소했는데, 그 이후 이 부분에 투자를 좀처럼 늘리지 않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2000년에서 2007년 설비투자 증가율은 4.5%선. 이는 1980년에서 1996년 즉 IMF 시대 전까지의 12.5%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진다.

OECD는 1인당 GDP가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증가하던 시기(1995~2005년) 한국의 설비투자 증가율(6.8%)이 같은 시기의 일본(1984~1988년 :10.2%)이나 미국(1978~1987년: 9.3%) 혹은 프랑스(1979~1990년: 9.6%) 등에 비해 크게 부실함을 보여준다.

이런 와중에서 대기업이 설비투자를 올해도 부진하게 할 것이라는 연구결과(현대경제연구원이 3월 내놓은 '최근 설비투자 부진의 배경과 전망' 보고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 문화가 대기업 중심으로 퍼지고 있고 경기의 둔화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대기업, 세법 개정 국면서 보이는 반응은 '엄살' 논란

이런 와중에서 근래 이슈가 된 세법 개정 국면에서 대기업이 보이는 반발 기류는 지나치다는 지적 또한 따른다.

이번 정부 추진안을 보면,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은 연장하거나 확대한 반면, 대기업에는 증세 기조를 보이는 것으로 일응 보인다. 기획재정부 분석 결과, 중소기업(서민·중산층 포함)은 2400억원가량 세부담이 줄어들지만 대기업(고소득자 포함)은 1조65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설비투자에 대한 공제혜택을 신규 고용창출 인원에 따라 부여하는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의 기본공제율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축소되는 점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이 우대되는 것은 중견기업에 집중되는 점 등도 대기업의 불만을 살 수 있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과거부터 따져보면, 정부가 기업들한테 제공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와 R&D 세액공제 혜택이 10대 기업한테 편중됐기 때문에 이번 세법 개편에서의 상대적 불이익은 대기업 팔비틀기로 보기보다는, 과거 폐단을 시정하는 측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유효하다.

예를 들어 7월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이 윤영선 전 관세청장의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가 설비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분석, 공개한 결과를 보면 상위 10대 기업이 지난 2009년에 납부한 법인세는 6조 7745억원을 나타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09년 전체 법인세 납부액 39조 1545억원을 100.0%로 할 경우 17.2%를 차지하는 데 그친다.

반면 상위 10대 기업들이 2009년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받은 금액은 1조1260억원으로 전체 2조1165억원 중 53.2%에 달했다. 또 R&D 세액공제는 6405억원을 받아 전체 1조5185억원 중에서 42.2%의 혜택을 차지했다.

결국 대기업은 우리 경제 전반 특히 세금 면에서 기여하는 바보다 훨씬 크게 혜택을 챙겨가고 있다.

포퓰리즘인가? 정당한 대기업 고용·투자 역할인가?

이런 상황이고 보니, 대기업이 경제의 어려움을 이유로 법인세 인하 등 사탕만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연구 등의 축소나 고용 부진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점을 따져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 특히 대기업들이 경제 환경에서 얻고 있는 각종 혜택은 중소기업과 가계의 희생과 부양에서 얻고 있는 것이며, 우리 경제가 추종하는 모델로 그간 흔히 언급돼 온 일본과도 다른 양상으로까지 치중되고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일본 버블붕괴와 극복 장기화의 한 원인으로까지 지적된 대출 남발을 경험하지 못해 왔으며, 고용과 투자 등에서 보더라도 일본이 버블 시대에 경험한 과잉 고용 등의 사정은 우리 가계에 상당히 낯선 개념이다.

부동산 대책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기업의 역할론이 간접적으로 필요하다. 40세 미만 월급 생활자의 DTI 여력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부동산 연착륙을 하려고 해도, 고용이 안정화돼야 빚을 얻을 수 있는 심리적 상황이 개선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사에서 이미 언급했듯 20세에서 40세까지의 고용 사정이 개선되지 않고 있고, 이런 점에 기업들의 엄살이 작용한다면 당국의 이번 부동산 해법 역시 대기업의 책임 방기로 효과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해 볼 수 있다.

다만 대선이라는 중요 정치 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일정한 규모의 역할론을 넘은 주문은 포퓰리즘에 기반한 대기업 팔 비틀기에 다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기몰이식으로 대기업 역할강화 주문을 할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높다.

대신 유력 대선 주자들이 셰도우 캐비넷(집권 후를 대비해 예비 내각을 짜는 일)이나 싱크 탱크를 동원해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고, 정권 교체 후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