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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인력시장에서 총알받이 사오자는 겁니까?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8.21 07: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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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는 많은 군 전역자들이 뒤늦게 대학을 가고 집을 샀다. 전쟁이 종료된 후 쏟아져 나올 전역자들이 실업자로 전락, 사회적 고민거리가 될 것을 우려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4년 6월 서명한 제대군인 원호법(GI Bill)이 이 같은 지원의 근거가 됐다. 승전 이후 1000만명이 넘는 참전용사가 이 법의 혜택을 받았다.

200만원씩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양질의 일자리’ 20만개. 민주통합당의 대선 주자 중 하나인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모병제 전환 발언을 근래 내놔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병제 전환시 국내총생산(GDP)상으로도 긍정적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 한다.

먼저 전제를 확인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병역의 의무가 신성한 책무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신성하지만 고통스러운 무엇인가에 틀림없다. 엄격한 규율 아래서 자유를 속박당하며 생활하는 게 즐거울 리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전쟁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는 목숨을 나라에 맡겨놓은 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병역 의무를 꼭 돈으로 환산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이는 징병제가 꼭 지고지선이고 공평하며 모병제가 철두철미하게 악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 세계 역사상 확인된다는 데 기인한다. 또 반대로 모병제가 좋고 징병제가 나쁘다고 정리할 것만도 아니다.

모병론 찬성파에서는 위의 제대군인 원호법이 계층 이동의 한 수단으로 작용한 점을 높이 살 것으로 보인다. 근래 모병제 미국 군대가 18만으로 130만 이라크군을 이긴 사례를 보면, 병역과 돈의 함수관계를 논하려는 시도를 매도할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따라서 모병제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꼭 ‘도저히 정상적인 두뇌에서는 나올 수 없는 생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또, 사실 모병제론이 전제로 깔고 있는 ‘이제 병력 숫자가 아닌 첨단 과학전의 시대’라는 이야기도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다만 여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작용한다. 문화 차이다. 미군이 잘 싸우는 것은 모병제를 하든, 징병제를 하든 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좋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돈을 주는 좋은 직장 논리로만 밀어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에 지원이 잘 되는 현실적 이유까지 받쳐준다고 해야 옳은 것이다.

대통령은 스스로를 최고 사령관으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고, 군이라는 집단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역시 높다. 이런 전제 하에 위의 제대군인 원호법 사안도 돈으로만 요약할 게 아니라 ‘돈으로 표현되는 그 이상의 무엇’을 제대군인들에게 줬다는 쪽으로 이해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군역을 천시해 상무주의가 박약한 역사적 전통에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면서 돈이나 힘 있는 집 자제의 경우 군복무를 제대로 하지 않지 않느냐는 오래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도 종종 불거지는 병무 행정상의 각종 비리는 병역을 하기 싫고 무서운 것, 빠질 수 있는데도 곱게 (끌려)가면 바보인 그런 것으로 남겨놓고 있다.

즉, 명문대나 대기업 선호 풍토가 비정상적인 나라에서 아무리 조건이 좋고 잠재성이 있고 실속이 있다고 해봐야 학벌 서열주의나 유망 중소기업 인력난이 절대로 일거에 사라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돈을 후하게 주면 (남들은 가기 싫다고 그냥 안 가는) 군대를 좋은 직장으로 다들 생각할 것이라고 결론을 깔끔히 짓는 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건 나눠서 하기도 귀찮으니 그냥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돈 집어 주고 조용히 덮자는 소리일 수도 있다.

물론 모병제를 하되, 사회지도층의 자제는 의무적으로 군입대를 하는 관행이 빠른 기간 내 형성되면 문제는 정말 해피엔딩으로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기자는 그 가능성을 ‘대단히 회의적’으로 본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이런 군대, 병역 그리고 군인과 관련된 시각을 바꿀 수 없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지금처럼 징병제를 유지하고 고난을 분담시키는 틀을 공식적으로 유지하되, 그래도 “나라에서 병무 행정을 공평하게는 집행하더라”라는 믿음을 최대한 주려고 노력하면서 유지하는 게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이런 모병제 도입 논의는 월급 액수나 복리후생만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어디서 허접한 장정들 돈으로 사다가 전방에 보초 세우자’는 식의 정말 치졸하고 비정한 논리로 변질, 운영될 수 있다. 지금도 좋지 않지만, 정말 최악으로 나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