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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 이라크 재건사업 '선견지명으로 따냈다'

총수의 안목을 파헤치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② '도전(挑戰) 경영'

이용석·전훈식 기자 기자  2012.08.13 1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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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재벌 총수의 안목을 파헤치다’ 시리즈,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편, 두 번째로 변화와 혁신을 통한 그의 ‘도전’을 다룬다. 한화그룹은 올해 그룹의 미래좌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창업 100년의 미래 비전을 여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동시에 지난 위업을 뛰어넘어 제2 도약을 가늠할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의 ‘도전 경영’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한화는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앞서 나가는 도전의 가치를 믿기에 끊임없는 열정으로 위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더 나은 미래의 가치를 꿈꾸며 행복한 내일을 향해 내딛는 힘찬 발걸음은 한화의 도전이자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한화의 지난 시기 도전이 자원 불모의 땅에 경제 대국을 세우고 국민 기업을 만드는 일이었다면, 현재 도전은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 고객에게 최고의 감동을 전하고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특히 김승연 회장은 끊임없는 진화와 혁신을 통해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로 전 세계 고객에게 ‘한화’라는 행복을 전하고 있다.

◆‘과감한 도전’ 총자산 115배 성장시켜

김승연 회장은 회장으로 재직한 지난 30년간, 그룹의 매출 27배, 총자산 115배, 당기순이익 223배를 성장시켰다. 젊은 나이로 회장이 되었을 당시에는 주위의 근심어린 시선이 많았지만, △한양화학 인수 △경인에너지 내국화 △한화유통·한화리조트 인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런 시선을 불식시키고 제2의 창업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80억달러 규모 해외 신도시 건설 1호로 기록되는 이라크 신도시 계약체결을 진두지휘한 김승연 회장이 이번엔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참여를 직접 챙기고 있다.

특히 취임 1년만인 1981년에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 배경은 김 회장의 과감한 도전 정신을 확연히 보여준다.

1980년대 초는 2차 석유파동이 밀어 닥쳐 석유화학 경기가 크게 위축됐던 시기다. 한양화학은 1980년 한 해에만 75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으며, 다우케미컬도 본사가 경영이 어려워 철수를 준비 중이었다.

석유화학의 장래가 어둡지 않으며 국제경기도 회복될 것이라 판단한 김 회장은 현실적 필요성을 고려해 인수를 독려했다. 특히 인수 과정에서 급박한 다우의 사정을 역이용해 유리한 계약조건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경인에너지 내국화(1983년)를 단행하면서 매출을 2배 이상 향상시키면서 재계로부터 ‘제2의 창업’을 이뤄낸 김 회장은 곧바로 3차 산업의 진출로 방향을 틀었다. 1985년, 정아그룹(현 한화호텔&리조트)을 인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1986년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 △1990년 경향신문사 등을 인수했으며, 1986년에는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이글스) 창단하기도 했다.

특히 1999년 당시 홍선기 대전시장으로부터 대덕테크노밸리 사업 제안을 받은 김 회장은 그룹 실무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역 발전을 위해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해 대덕테크노밸리의 사업화를 밀고 나갔다.

2001년부터 9년간의 사업기간을 거쳐 2009년 11월 5일 성공적인 준공식을 가진 대덕테크노밸리는 기존 도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산업 △주거 △교육 △문화 △레저가 어우러진 신개념 직주근접형 첨단복합단지로서 국내 최초의 도시개발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망설일 때 나서 ‘기회의 땅’ 선점

이라크에서도 한화의 도전은 계속됐다. 지난 5월30일 한화는 80억달러에 달하는 국내 해외건설 수주 사상 최대 규모의 이라크 신도시 10만 가구 건설 본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김승연 회장은 1970년대 태평양건설에서 중동건설 붐을 경험할 수 있었던 건설맨이었다. 사진 가운데 김 회장이 이라크 건설현장 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선수금 25%에 공사대금은 77억5000달러. 물가 상승을 반영한 공사금액 증액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실제 공사 대금은 총 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날 계약 체결은 우리나라 해외건설 누적수주액이 5000억달러를 돌파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47년 해외건설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국내 협력업체가 대거 이라크에 함께 진출하게 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게 됐다.

이번 프로젝트의 수주는 한화가 사업성을 검토하기 시작한 지 2년이 넘고 합의각서(MOA) 체결로부터는 1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성사된 ‘집념의 성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김승연 회장의 선견지명이 중추적인 영향을 미쳤다.

때는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2년 전인 2009년. 김 회장은 “미국이 승리해 종전이 이뤄지면 대규모 전후 복구사업이 잇따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회장의 이러한 판단은 지난 1970년대, 태평양 건설에서 중동 건설 붐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해외담당 임원과 사장을 지낸 건설맨이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이라크는 지정학적 위험요인이 상존해 있다. 이 때문에 인근 두바이나 카자흐스탄 등에서의 실패 전력이 있는 글로벌 건설업체들은 단념했지만, 김 회장은 ‘모두가 망설일 때 나서지 않으면 기회의 땅을 선점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도전했다.

특히 해당 프로젝트의 규모, 국가적 이익과 상징성 등을 고려해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해 세세한 부분까지 손수 챙기고 보고 받으며 관련 회의를 주관하는 등 프로젝트가 최종 수주될 수 있도록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은 전후 복구 사업으로 100만 세대 국민주택 건설을 추진하는 이라크 첫 계획인 ‘비스마야’ 프로젝트의 규모와 의미, 국가적 이익과 상징성 등을 고려해 중대 사안으로 판단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고 보고받으며 관련 회의를 주관하는 등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선대 김종회 회장의 별세로 29살의 젊은 나이로 회사를 물려받은 김 회장은 지난 31년간 한화를 매출 1조원(81년)에서 40조원을 목표로 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김 회장은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있다. 항상 최고를 추구하기 위해 ‘변화와 혁신’을 위한 그의 도전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