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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 사장학] 거위의 편대비행, 어느 거위가 리더였던가?

[제44강] 리더십과 팔로어십(Followership)

허달 코치 기자  2012.08.10 16: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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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무려 80회에 이르는 Supex 추구 캔(CAN)미팅 끝에 마침내 ‘펌프가 문제면 펌프를 없애라!’ 신화를 만들어 낸 집단창의력 케이스를 제12강에서 소개하였던 기억이 난다.

성공한 SUPEX 추구 사례를 검토해 보면 처음 시작은 다 대동소이 하지만 최초의 갈림길이 톱(최고경영층-임원)의 역할에서부터 나온다.

톱이 일부 영리한 책상물림 구성원들의 파워포인트 멋진 보고서에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Lead, Help, Check 그 중 Help 부터 시작한다.

   
 
KFS(Key Factor for Success)와 그 목표 수준을 팀원들이 합의에 의해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지루할 정도로 이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한다.

80회의 회합 끝에 성공한 위의 사례에서, 회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20회차(回次)가 지나서야 모든 팀 구성원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목표에 합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애요인 제거까지 진도(進度) 나갔다가 KFS로 되돌아오는 시행착오를 몇 번씩 거친 이후에야, 구성원 모두가 빠짐없이 전원, 진정한 합의를 이루는 일이 가능해진다. 구성원 간에 공감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시너지 추구 노력은, 아마 프라이버시 존중하며, 개인의 능력에 깊이 의존하는 서구식 경영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방법일 것이다. 당연히 리더의 재능(Talent)과 구성원의 책임 한계 분명한 보조역할(Marginal Support)에 만족하고 말게 된다.

일례(一例)로 10년 전쯤, 당시 잘 나가던 브리티시 텔레콤의 CEO 피터 코크란이란 친구가 ‘지나친 팀플레이 강조는 집단 무능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일본을 방문한 감상을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파악해 보면 시너지를 저해하는 요소가 집단 속에 있으므로 이를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고 ‘피(避)해 가자’는 것이 그 주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시너지의 창출이 아니라 타협(compromise) 방식으로 가자는 것이다. 승-승이 아니라 승-패, 패-승의 사고로는 결단코 시너지의 세계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방식은 다르다. ‘사람 살류’를 외치는 인간 본성에 기본을 둔 공동체 의식과 명분에 높은 의의를 두는 소명(召命)의식, 틀을 부수는 한국인의 커뮤니케이션 원형(Archetype)의 위력(제38강에서 소개한 이어령 지음 ‘한국인의 기업정신’ 참조)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용광로(熔鑛爐)로 이 SUPEX 캔미팅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캔미팅에서는, 팀의 리더십도 당연히 변화를 겪는다. 중복이 되는 감이 있으나 ‘펌프가 문제면 펌프를 없애라’의 경험을 다시 돌이켜 분석해 본다면 초기 회의를 리드하던 머리 스마트한 구성원들은 주로 책상물림 타입이기 때문에, 장애요인 제거가 실천되기 시작하는 모임부터는, 그 공헌의 폭이 많이 줄어 들게 되었다. 어느 회차의 미팅에서 인가부터 직접 현장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손에 기름을 묻힌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주도적 위치에서 소외되어 있는 자신들의 위치가 싫어, 이 초기 리더들이 삐치는 경우도 생긴다. ‘너희들 내 말 안 듣고 멍청한 방식으로 해보아라. 난 모르겠다’ 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삐쳐 본들 어떻게 하겠는가?

SUPEX를 거는 주제(主題)가 무어 특별한 과제가 아니고, 우리가 일상 하고 있는 ‘일’ 중 그것 하나 잘 되면 여러 가지 좋은 영향을 이끌어 내는, 우선순위가 높은 ‘일’에 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서 빠지려면 결국은 조직의 활동에서 빠지는 결과가 되고 만다. 조직 내에서의 위치를 옮기든지, 정말 싫으면 회사를 그만두든지 하는 최후 입장까지 가는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 하고 마는 이벤트 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매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백 번이고 일이 성취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 SUPEX 추구이니까, 어느 기간이 지나면 이들이 소외(疎外)를 견디지 못해 되돌아오게 된다. 되돌아오면, 이번에는 자기들 나름대로 공헌을 하기 시작하게 된다. 공헌하지 않으면 구성원으로서 인정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인터넷 뒤지고, 학계 전문가 만나고, 이론 공부 등, 이른바 ‘by deduction’에 의해 지루한 자갈 뒤집기(가재 잡기 할 때 시냇물 속의 자갈 하나하나 다 뒤집어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표현)를 줄여 주는 역할도 하고, 패러다임 전환의 아이디어 창출해서 문제 해결에 새로운 시각(視角)의 접근을 촉구하기도 한다.

속으로 멍청이라고 부르던 팀 동료들이 가진 패러다임 상(上)의 차이점(difference)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축하(celebrate) 하게 된 이후의 일이다.

여기까지 오면 팀의 커뮤니케이션은 토의가 필요 없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눈빛만으로 동의하고 화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80차례의 회합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기투합(意氣投合)해서 일하고 있는 팀 분위기를. 시너지를 저해하는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의 장벽이 완전 제거 되면, 시너지 자연 법칙에 의거, 조직의 창의력인 제3의 대안이 틀림없이 떠오르게 된다. 이 융합 에너지(Fusion Energy)가 장애요인을 점진적 방식(Incremental Approach)이 아닌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효과적으로 제거해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팀의 동적요소 수준이 이를 통해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된다.

팀 구성원 개개인의 관리 역량이 팀 전체의 수준으로 상향평준화 될 뿐만이 아니다. 성공체험을 해본 사람들의 의욕, 패기는 두 말할 필요 없이 높을 것이며, 코오디네이션, 커뮤니케이션 다 마스터된 상태가 된다. 이 모두가 다 진정한 연결을 이루기 위해 필요했던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기업과 구성원의 윈윈(Win-Win)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체험해 보시라. 그룹 코칭을 잘 지도하는 전문코치의 도움을 받아도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50번, 100번 캔미팅 할 각오로 첫 번째 SUPEX 추구 회의를 시작하라는 말이다.

이 SUPEX 캔미팅의 마력(魔力)을, 실은 창시자인 최종현 회장도 처음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SUPEX 추구가 본격화 되기 훨씬 이전, 아주 초기에 회장과 마주 앉아 물어 본 일이 있다.

“회장님의 현실적 목표는 어디십니까? 전 구성원의 몇 퍼센트가 SUPEX 리더가 되면 만족하시겠어요?”

최 회장이 잠시 눈을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글쎄, 한 20%쯤. 그러나 50%를 목표해야 20%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대화가 SUPEX 추구의 본질을 절반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 대화였음을 최 회장이나 나나 얼마 뒤에는 깨닫게 되었다.

어느 반기(半期: 6개월마다의) 보고 때인가 내가 사내(社內) 여러 계층 구성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정기보고서에는 꼭 포함 시키라고 경영기획실의 엄명(嚴命)이 있었던 ‘동적요소 점검 현황 및 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 항목을 의도적으로 빼어버렸다. 모두들 ‘저러다 허 부사장 한번 된통 회장에게 당하지. 너무 까부는 것 아냐?’ 하는 걱정스러운 태도였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는 보고를 시작하기 전에 최 회장에게 떳떳이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동적요소 수준 점검보고는 저희 회사 정기보고에서 빼겠습니다.”

그랬더니, 배석자(陪席者)들이 숨을 죽이고 최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그 하회(下回)를 기다리는 것이 느껴졌다.

최 회장이 ‘왜?’ 하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전 구성원이 들고 일어나서 SUPEX 추구를 하니까 동적요소 수준 점검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저절로 전수점검(全數點檢)이 되는 셈이거든요.”

잠시 거기 앉은 우리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 뒤에 최 회장이 입가에 무뚝뚝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응, 그래? 어느새 거기까지 갔어?”

그 때 우리와 회장 사이에 오갔던 교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염화시중이라 하면 아마도 너무 심한 과장이 될까?

어쨌든 필자가 일종의 집념을 가지고 ‘최종현 사장학’을 기어이 그 최초의 원본비급(原本秘笈) 형태로 남기겠다며 이 글을 쓰는 원동력은, 그때 우리 사이에 나눈 그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의 교환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으로써 최 회장과 묵언(默言)으로 합의하였다.

SUPEX 추구는 구성원의 20%인 리더가 80%인 팔로어(Follower)를 이끌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성원의 100%가 참여하여, 스스로 SUPEX 챔피언, SUPEX 리더가 되는 과정이라는 선언이다.

50회든 80회든 마음을 여는 소통의 회합을 거친, 시너지를 달성한 SUPEX 캔미팅에서는 누가 리더이고, 누가 팔로어(follower)라는 구분이 없어진다. 과제의 성격에 따라 일의 진행을 맡은 사람이 있을 뿐 SUPEX 리더십이란 SUPEX 팔로어십과 완전히 일치하는 ‘하나의’ 개념이 된다.

여러분은 아마도 제11강에서 읽은 거위의 편대비행 이야기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시너지의 발현을 위해 힘든 자리를 바꾸어 맡던 그 편대 비행에서 과연 어느 거위가 리더였던가?

리더도 팔로어(Follower)도 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이에 필요한 개인창의력과 집단창의력, 시너지 창출과 관련하여 잠시 이름 붙인 위한 직분(職分)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맨 처음부터 어렵게, 어렵게 기업관에 합의하지 않았던가?

[다음 회에는 ‘최종현 사장학 연재를 마치며’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