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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건설부도 직격탄에 ‘4년째 흉물’ 한 주상복합의 ‘한숨’

랜드마크 꿈꾸던 중랑구 ‘성원 상떼르시엘’…하청직원들 임금도 못받아

이혜민 기자 기자  2012.08.10 13: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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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건설시장 불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택경기를 살리겠다며 5·10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바닥을 치는 건설경기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집값은 곤두박질 쳤으며, 황금알로 인식돼 왔던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급격히 줄었다. 잇단 악재에 중견건설사들은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흉물처럼 방치된 공사현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서울 중랑구 한복판에 ‘흉가’로 변해버린 주상복합 건설현장을 찾아가봤다.

2008년 8월 불어 닥친 세계금융위기는 국내 건설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건설사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고 도미노식 부도가 이어졌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100위 안에 드는 건설사 중 총 21개 업체가 2011년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 때 시공능력평가 50위안에 들었던 성원건설도 이 안에 포함된다.

   
중랑구 최초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주목을 받았던 '성원 상떼 르시엘'이 흉가로 변한지 4년째다.
1999년 외환위기 때 한차례 부도난 성원건설은 법정관리를 통해 기사회생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확장한 해외사업 부진과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결국 성원건설 대표는 해외로 도피했으며, 회사 또한 2010년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상봉 상떼 르시엘이 ‘흉가’로 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금융위기에 100위권 건설사중 21개 워크아웃·법정관리

지난 7일 오후 6시께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근처. 상봉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10여분 올라가다 보면 코스트코 뒤로 하늘과 맞닿을 듯 한 건물 두개가 보인다. 중랑구 최초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던 ‘성원 상떼 르시엘’이다. 대지면적 26만4963평(8만7791㎡), 건축면적 10만7344평(35만4855㎡)인 상떼 르시엘은 연면적만 해도 302만135평(998만3919㎡)에 달한다.

그러나 2006년 3월 첫 삽을 뜬 이곳은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완공이 덜된 상태다. 찌든 때가 쌓여 얼룩진 외관은 4년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줬다. 페인트칠도 안 된 상태로 4년간 방치된 상떼 르시엘은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도로에서 건축사무소로 연결되는 빨간색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니 그대로 멈춰버린 상떼 르시엘 공사현장이 한눈에 보였다. 현장 곳곳에는 나무자재와 유리파편 등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공사현장에는 마치 4년의 공백을 보여주는 듯, 얼룩진 외관과 온갖 쓰레기가 가득했다.
다시 임시사무소로 돌아와 사무실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굳게 닫혀있었다. 그러나 유리문을 통해 내부를 살펴볼 순 있었다. 회의용 탁자에는 서류뭉치와 필기구, 종이컵 등이 어질러진 채 그대로 놓여있었으며, 바닥에는 팸플릿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상자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사무소 유리문 앞은 더욱 가관이었다. 전기배선에서부터 먹다 버린 음료캔, 비닐봉지, 달력 등 온갖 쓰레기 집합소였다.

◆부도건설사 뒤처리는 하청업체 몫?

계단을 내려와 상떼 르시엘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파란색 알루미늄으로 된 가림막에는 하청업체가 쓴 것으로 보이는 ‘유치권 행사중’, ‘현장사수’ 글귀가 빨간색 스프레이로 적혀있었다.

   
상떼 르시엘의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하도급업체들이 기성대금 미지불로 인해 유치권을 행사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또 우측에는 ‘당현장은 하도급 기성대금 미지불 관계로 유치권 행사중’이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그 밑에는 ‘당현장에 무단침입 및 자재나 기물파손 시 형사처벌된다’고도 설명돼 있었다. 

성원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자재비를 떼이게 된 하청업체들이 물건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인근의 S부동산 중개업자는 “성원건설이 부도난 후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하도급업체”라며 “상떼 르시엘 공사를 진행했던 하도급업체는 총 40~50곳 정도 되는데 상당수가 임금을 못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중개업자는 이어 “3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소송을 진행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현재는 이마저도 거의 무산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상떼 르시엘 공사에 참여했던 하청업체는 모두 도산위기에 놓일 정도로 사세가 기울었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A하청업체 관계자는 “정확한 피해금액을 밝힐 순 없지만 물건대금과 공사대금을 모두 못 받은 상태”라며 “그나마 소송에서 이겨 임금의 40%를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올해부터 10~20년에 걸쳐 분할 지급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사와 달리 나머지 하청업체들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금액이 적어 포기한 곳도 여럿인 데다, 소송비용도 만만찮아 일찌감치 포기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 또 다른 하청업체 B사 관계자는 “피해를 보긴했죠”라며 그때 상황을 기억하기도 싫은 듯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하도급자는 하도급청구의 채권자로서 특별히 혜택 받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현실적으로는 해당 원도급이 부도가 나면 나중에 채권 조정이 있거나, 승소가 있어도 실질적으로 임금지급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