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클린턴 '성노예' 한마디에 뒷북 망신

노병우 기자 기자  2012.07.25 17:29:39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위안부(comfort women)’ 용어를 두고 요즘 말들이 많다. 일반명사처럼 쓰여온 이 단어는 일본인들이 붙여 썼던 말이다. 그리고 결코 일본군을 위안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그런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단어의 뉘앙스 때문에 ‘위안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이 있는 것이다.

일본군이 자신들의 편의대로 붙인 이 ‘위안부’라는 용어는, 사실상 강제적인 성노예(enfored sex slave)를 마치 매춘부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성노예들을 심각하게 모독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이유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 당사자들과 관계자들은 이 용어에 대한 반감을 보여왔다.

최근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국무부 고위 관리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 ‘일본군 위안부’ 대신에 ‘강제적인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지시한 데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클린턴 발언 이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협의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며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 차원에서 명칭 변경을 추진해보겠다는 의지로 비쳤다. 

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와 학계, 여성단체가 이미 ‘성노예(sex slave)’로 영문표기 중이라고 밝혀, 정부의 ‘명칭 변경 검토’ 의사는 ‘뒷북치기’ 꼴이 됐다.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후에 대응했더라면, 이런 비웃음 살만한 발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조선 여성들을 상대로 저질렀던 ‘성노예 착취’ 사건에 대한 문제 해결을 피하고 있다. 양자간 협의를 1년째 거부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 정치인 한 마디에 ‘용어 변경 검토 의사’를 보인 점은 아무짝에도 도움 되지 않는 호들갑, 혹은 인사치레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 74년 동안 극도의 고통을 받아온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은 20년째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시위를 하고 있지만, 정부가 똑 부러지게 해결해준 것은 사실상 없다. 성노예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조차 받아주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해결 의지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러는 동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차츰 잊혀지고 있다. 최근 고교생 535명 대상으로 한 위안부 문제 의식조사에 따르면, 86%(464명)가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다. 정부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시간이 더 지나면 흐지부지될 테니 일본 감정 건드려가면서 외교상 불편한 일 만들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 이런 생각이 추호만큼이라도 있다면, 일본정부랑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정부는 그동안 일본과의 성노예 피해 문제 해결에 대해 상당히 수동적이었다. 최근 정부는 일본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밀실 체결하려다 들통이 나면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반일감정이 국익에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며 여당은 정부를 감싸기까지 했다. 이런 정부여당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과연 있는지, 비관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