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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버킹엄 궁전 근위대도 비정규직일까?

이정하 기자 기자  2012.07.13 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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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부~’, ‘부~’ 울려 펴지는 나팔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사람들 속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한참 동안 서서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 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필자가 이곳을 지나갈 때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수문장(守門將)은 한자 그대로 ‘문을 지키는 벼슬’이라는 의미로 조선시대 도성 및 궁궐의 각 문을 지키는 관직을 의미하는데요. 수문장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신록’에 단편적으로 나마 등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수문장 교대식은 서울시청의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요. ‘우리도 영국 버킹엄 궁전의 근위대 교대식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버킹엄의 교대식은 영국의 명물이자 궁전 방문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데요. 검은색의 독특한 털모자에 빨간 상의를 입는 근위병이 진행하는 교대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미리부터 좋은 자리를 잡고 행사가 거행되길 기다린다고 합니다.

시청 공무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수문장 교대식은 1996년부터 시행돼 올해로 16년째를 맞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아이디어를 낸 공무원이 지금의 노원구 국회의원 이노근 의원이라고 하네요.

수문장 교대의식은 △군호하부의식 △군호응대 △초엄 △중엄 △삼엄 △예필 △순라의식의 순으로 진행되며,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3회(11시, 14시, 15시30분)에 걸쳐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펼쳐진다고 합니다.

행사시간 동안 전통복식을 입어볼 수 있으며, 직접 북을 쳐서 교대의식을 알리는 ‘개식타고’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사전 예약을 하면 교대의식에 직접 참여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돼 온 수문장 교대의식이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러나 수문장 교대행사를 진행하는 인력은 이벤트 회사에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합니다.

처음 교대식을 재연할 당시에는 공익근무요원이 동원됐는데요. 공익근무요원이 귀고리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등 ‘군기가 빠져 보인다’는 지적이 한차례 일었고, 2007년부터는 이벤트 회사에서 맡아 인원을 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행사 진행 근로자들은 20~30대의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이며, 이들 대다수는 수문장이라는 역할이 전통문화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있다는데요. 하지만 월 130만원에 4대 보험도 적용이 안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88만원 세대의 어두운 단면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한정된 예산으로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서울시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요. 버킹엄 궁전 근위대의 화려함 만 배우지 말고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나 2차 세계 대전 당시 보여줬던 ‘영국 왕실은 언제나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 한다’라는 내적 가치도 함께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