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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대토농지에선 베테랑 세리도 자란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7.12 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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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조세심판원이 내놓은 대토 관련 결정례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토(代土)라는 용어는 원래 농사를 짓던 땅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매각 대금으로 다른 땅을 사 농사를 짓는 경우에 거론되는 단어인데, 조세특례제한법 제 70조 및 시행령 67조 등에서 농지대토에 대한 양도세는 100% 감면토록 하고 있는 점 때문에 세금 전쟁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 규정에는 반드시 농작업의 1/2 이상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경작 또는 재배해야 한다고 돼 있기까지 해 ‘무늬만 자경농’을 잡아내야 하는 세무 당국자들로서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토는 원래 농사짓던 땅 대신 구하게 되므로 거리가 멀어지거나 해 불편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단속하는 공무원들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하냐는 불만도 이런 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달 초, 거주지에서 편도 50Km(왕복으로 따지면 100Km) 이상 거리에 소재한 농지를 자경(自耕)한 게 맞느냐를 다툰 케이스에서 납세자의 억울하다는 주장을 ‘인용결정’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자경한 연한에 따라 양도세액이 감면되는 혜택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다툼이 생기자 조세심판원에서 공무원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이지요.

이 사안은 거리가 너무 멀어 농사를 짓는 게 어렵다는 상식의 범위가 교통 발전 등으로 크게 확장된 케이스라는 점에서 우선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픽업 트럭이 특히 유행하는 이유가 농사나 레저 등으로 다소 먼 거리를 오가며 짐을 실어나르는 데 요긴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런 교통과 농사의 패턴 변화가 우리 쪽에서도 시작됐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경 여부를 탐문한 과세관청의 공무원이 조사 과정에서 잘못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엄격히 따진 점도 이야깃거리입니다. 자기는 스스로 농사를 지은 게 맞다며 과세처분에 불복, 조세심판원까지 가게 된 이번 사건 청구인은 특별한 다른 직업이 없다고 합니다. 조사를 해 보니 다른 데서 소득이 있었던 신호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니, 거리가 다소 먼 것은 사실이지만 농작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1/2이상 투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다소 미심쩍더라도 인정해 주는 게 맞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세심판원은 이렇게 모호한 부분은 납세자 주장을 대폭 수긍해 준 반면, 과세관청 조사공무원의 입증 노력에는 엄격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번 청구에서는, 청구인이 실제로 스스로 농사를 지었는지 토지 인근 주민으로부터 진술·녹취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 문제가 됐습니다.

또 유도심문 질문이 있는 등도 녹취의 증거능력 인정이 어려운 이유라고 조세심판원은 지적했습니다.

세리(稅吏) 뿐만 아니라 어떤 행정목적으로 조사, 출입 내지 행위를 하려면 증표를 휴대, 제시하고 떳떳하게 일을 진행하도록 돼 있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기도 하는데 이 점을 꼬집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안 해 오면 증거능력 인정 안 해 줄 테니 알아서 하라는 일선 관행에 대한 ‘경고’인 셈이지요.

시계를 좀 더 앞으로 돌려 5월에는 대토해 농사를 짓던 중 고라니에게 밭을 습격당해 ‘털린’ 경우를 다룬 심판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관할 세무서가 1, 2차 현지확인 때에는 대토농지에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봤는데, 3차 조사로 방문한 해에는 농사 지은 흔적이 없다고 해서, 즉 농작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경 사실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금 감면을 받지 못했던 사안입니다. 

감쪽같이 농사지은 흔적이 사라져 버린 원인은 무엇일까요? 문제가 된 해에는 인근 야산 고라니가 침입해 밭의 작물을 모두 먹어치웠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조세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관할 세무서가 1, 2차 현지확인 시와는 달리 3차 현지확인 시에는 대토감면을 부인한 사실로 볼 때 성급하게 자경 여부를 판단해 과세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청구인이 3차 현지확인 무렵에 농사를 짓던 점을 입증할 사진을 자료로 제출한 점도 이런 청구인에 유리한 결론에 큰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거기까지 어떻게 왔다갔다 하면서 농사를 짓느냐고 타박을 주면 납세자 입장에서는 불복이란 꿈도 못 꿨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사안 같은 경우 고라니한테 농사 다 지어놓은 걸 털렸다는 소리를 지금 믿으라는 거냐며 “관청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소리도 어쩌면 나왔겠지요.

그러나 세월이 바뀌어 공무원이 조사해 온 자료는 흠이 조금만 있어도 안 인정해 주고, 일반 시민이 낸 사진은 상대적으로 덜 까다롭게 인정해 주는 상황의 역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토농지는 원래보다는 아무래도 관리하기가 어려워지는 점이 있어 농사짓는 입장에서도 애로사항이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세심판원에서는 이런 자경농의 애로사항 크기만 커지는 대신 공무원의 입증을 더 엄격하게 키우는 것 같습니다.

대토 세금 조사하고 물리기 힘들다 일선의 푸념이 높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합니다. 머리와 몸 모두를 다 바쁘게 뛰면서 다른 데서 소득을 올리느라 농사지을 여지가 없는 건 아닌지, 정말 왔다갔다 농사짓는 게 맞는지 등을 그것도 유도심문 같은 꼼수는 절대 안 쓰면서 입증해 내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대토농지 세금을 맡아 보면 그야말로 유능하고 발빠른 세리로 자라는 속성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바야흐로, 대토농지에서는 배추만 크는 게 아니라 베테랑 세리도 크게 되는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