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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칠푼이'에 담긴 YS 코치학 한계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7.12 1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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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가끔 기사를 쓰거나 읽다 보면 난감할 경우가 있다. 원색적인 표현을 쏟아내는 경우 이걸 대체 어디까지 받아적을지 혹은 이걸 어느 수준까지 교열해 소개할 것인지 판단이 안 설 때다.

그대로 인용하자니 격정토로의 분위기는 살겠지만 비속어 순화를 왜 안 했는지 문제가 될 것 같고, 적당히 깎아서 내보내려니 분위기 전달 효과가 반감돼 그도 문제다.

시간이 좀 된 케이스를 들어보면, 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에 빠진 직후였던 199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 후보로 나섰던 당시 자민련 한호선 후보는 “김영삼이가 청와대에서 한 일이 뭐가 있느냐. 칼국수나 X먹고” 어느 정책토론회에서 운운하는 발언을 했다.

표기하기가 곤혹스러웠던지 동아일보는 이런 식으로 가림 표시를 했고, 경향신문은 그대로 적어 내보냈다. 사실 이 X먹다의 경우 욕심사납게 먹는 모양을 말한다고 보면 비속어로 볼 게 아니고, 먹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보면 순화 대상이 된다. 그러니 현장에서 기자들이 송고해 온 이 적나라한 ‘워딩’ 표현을 받아든 각 언론사 데스크들이 당황하고 고심했을 건 불문가지다.

그런데, 저 칼국수 X먹은 사연의 폄하 대상인 YS 역시 막말논란에서 별반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 중 하나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골목 강아지, 주막 강아지 운운하며 서로 정담(?)을 주고받아 한국 정치 언어의 격을 한 단계 떨어뜨린 일이 대표적이다. 말을 별로 가리지 않는다는 평이 적지 않을 정도의 말을 쏟아내고 있어 어느 선까지 직접적으로 인용 소개를 해야 할지 난감스러운 이슈메이커 중 하나다.

그런 YS가 11일에 또 사고를 냈다. 상도동 자택을 예방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덕담을 한다는 게 과했는지, 김 지사에게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의 경쟁자인 유력 정치인을 깎아내리는 표현을 과감히 사용한 것이다. YS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칠푼이라고 혹평했다.

YS는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사력을 다한다. 선거는 일단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덕담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에 김 지사가 “이번에는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고 겸양을 표하면서 문제가 됐다. “그건 사자도 아니다. 칠푼이”라고 말했다는 것. 칠푼이는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온 칠삭둥이를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박 전 위원장에 대한 YS의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현 대통령 진영을 지지하면서 친박 진영과는 다소 소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내내 야당 투사 노릇을 했으니 심정적으로 그 딸이 ‘유신 잔당’으로 보이는 것도 인간인 이상 이해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고 거부감이 있다고 해서 원색적으로 비난하면 정치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칠푼이 발언의 문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정당한 평가 없이 싫은 티를 내는 데 그쳤다는 점에 있다.

정치를 하다 보면, 상대가 나쁘고, 인격이 모리배 혹은 그 이하이고, 저 인간은 정치를 해서는 도저히 안 된다 싶은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다 못해 기사 제목을 뽑아도 강하게 비판을 하는 걸 넘어서서 상당히 거친 말을 쓰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있는데 ‘세 치 혀로 떠야 하는’ 정치인은 오죽하겠는가.

또 길게 상대방이 왜 나쁘고 어쩌고 식으로 설명을 길게 하는 것보다 ‘촌철살인’으로 짧게 거친 말을 날리는 게 효과적인 현실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고 상식이 있다.

첫째로 이번 발언의 문제를 가리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많은 상식적인 시민들이 봤을 때 박 전 위원장의 약점을 제대로 찌른 속시원한 위트 넘치는 말로 보일지, 자기 아들 국회의원 공천을 안 줬다고 패악을 부리는 것으로 보이는지 저울질하면 된다.

세평이 후자에 기운다면 ‘막말’을 써가며 ‘상식적으로는 현재 사자의 외양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강력한 상대를 우습게 토끼로 보게끔’ 코치한 셈이 된다. YS의 칠푼이 평가가 정치공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판단을 담은 조언인지는 몰라도, 정치인의 태도와 마음가짐이라는 면에서는 김 지사에게 결코 도움이 별반 안 될 코치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상대를 우습게 보고 거칠게 깎아내리고 하는 YS식 칠푼이 정치학은 상대방이 정치적 정당성이 0점이었을 시대, 예를 들어 쿠데타 정권을 상대로 싸우거나 할 시대에서도 별로 점잖은 처신은 아니었을 텐데, 여전히 저러는 세칭 정치 원로가 있다니 안타깝다. 어쩌면 YS식 정치 인식은 저런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기에, 그 자신도 일개 도지사 후보에게 “청와대에서 한 게 뭐 있나. 칼국수나 X먹고”라는 식으로 비판당하는 대상으로 일찌감치부터 전락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