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生의 고통이 창작의 거름”···유명선 개인전

1월26~31일 대구 KBS 1·2전시실

김훈기 기자 기자  2007.01.21 21:56:36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날(生)것의 세계와 다듬어진 세계를 넘나드는 참으로 희한한 사람이 있다. 개인전이 벌써 여섯 번째이니 화가이고, 시집도 냈으니 시인이다. 시는 이미 진중함을 지나 내지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림 역시 인상 깊기는 마찬가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안광을 ‘쏴대’는 것 같다.

   
<유명선 ‘수상한 삶’ 80.3×100㎝·캔버스에 유화·2005>

화가 유명선과 그의 그림들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젊은 시절(그는 아직도 30대 후반으로 착각할 정도의 미모(?)를 간직하고 있지만 지천명이 눈앞이다) 미대에서 그림을 배운 적은 있으나, 도중에 그만뒀다. 그래서 독학에 가까운 그의 그림은 ‘독특’하다. 15년 가까이 스스로의 삶을 캔버스에 옮겨온 ‘내공’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유명선 ‘시원(始原)’ 60.6×72.7㎝·캔버스에 유화·2004>
그의 그림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고독에 대한 천착이 중심이다. 그래서 일까 화가 자신이 “인간 존재의 안쓰러운 몸부림”의 ‘시원(사진)’을 찾기 위해 타인의 핏 속으로 거침없이 더듬이를 깊이 질러 넣는다. 고독이, 고통이 저릿하게 자신의 온 몸을 관통하도록.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독이 가져오는 두려움과 고통의 변죽을 울리려는 행위가 아니다. 정면으로 응시해 중심을 흔들기 위한 ‘몸짓’인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 쌓은 성벽 너머의 그 무엇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선 ‘업’ 100×80.3㎝·캔버스에 유화·2006>
하지만 고통 저 너머에 방점을 두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불편’하다. 이미 사람들은 모험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편한 색과 거친 붓놀림이 ‘우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바람이든 길이든 사람이든 씻김굿 하듯 춤을 추는 것이 일벌의 춤 같다. 굽이친 길을 달려 그 곳에 가 보자는.

그러나 인간 유명선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우울’과는 전혀 다르다. 작업실 겸 찻집을 운영하는데, 여럿이 앉아 술을 마시든 차를 마시든 사람들을 흡인해 버리고 만다.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손자를 아련한 손짓 하나로 불러 이끌듯, 푹신한 이불처럼 모두를 덮어버린다.

   
<유명선 ‘소통불능’ 30×60㎝·캔버스에 유화·2006>
그림에게 고통이라는 겉옷을 내어주고, 시(詩)에게 응어리진 속내를 토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을 안고 끌고 수십 년의 삶을 견뎌야 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라 해도 무방하다. 돌려 말하면, 그는 가시광선 밖의 빛을 받아 눈앞에 보여주는 프리즘인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자의식들이 간직한 보이지 않는 아픔들에 스스로 촉수를 찔러 넣어 온 몸으로 받아들인 고통들을, 수액을 짜듯 물감을 풀어 캔버스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우리들에게 은근슬쩍 권하고 있다. 불편하지만, 아프지만, 두렵지만 내 모습이 어떤지, 아직도 웅크린 채 두려워하고 있는지 직접 보라는 것이다. 그가 ‘작업’이라고 부르는 수천, 수만의 붓질을 거쳐 거르고 걸러 나온 그림들이 아프기까지 한 이유이다.

   
<유명선 ‘시인’ 45.5×53㎝·캔버스에 유화·2006>
화가들이 개인전을 여는 것은 결국 자신을 향한 채찍질에 다름 아니다. 세상에 환쟁이로 나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시인 또한 매한가지. 그러나 그의 말처럼 ‘쟁이’들에게는 삶에서 일정부분 포기해야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편안한 삶이든, 행복이든.

화가 유명선 역시 지천명에 가까운 삶이 녹록치 많은 않았음이 그림 속에서 드러난다. 프리즘을 통해 나오는 것은 타인의 삶도 있지만, 결국 알게 모르게 자신의 빛깔도 담아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화가 유명선-화실에서>
지나온 삶의 편린들과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가출시켜 걸판지게 난장을 벌리겠다는 화가 유명선의 이번 전시회를 두고, 시인 전무용은 “작가의 고뇌가 어떤 작품 으로 환생했는지 작품과 대화하며 사랑의 더듬이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자”고 권한다.

고통에게도 물기가 서려 있다면, 그것은 멍든 푸른 눈물일 것이다. 제목도 주제도 무의미하다며 39점이나 되는 자신들의 작품을 ‘가출’시켰다고 말하는 화가 유명선. 푸른 눈물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뜨겁게 흘렸는지 더듬이를 뻗어 저릿한 고통이 온 몸에 퍼지도록 예방주사를 맞아보는 것은 어떨까?

010-8662-9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