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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무라카미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기자  2012.07.07 11: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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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상실의 시대’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생이다. 우리 나이로 64세다. 소설 ‘은교’를 쓴 박범신은 1946년 생이다. 우리 나이로 67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효고현-필자는 여기가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이다. 박범신은 논산에서 나고 자랐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에게 이곳은 ‘논산’이라 쓰고 ‘조뺑이’라 읽힌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IQ84’는 필자가 아는 하루키의 작품이고,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는 박범신의 작품이다. 하루키는 2012년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는 다소 애매몽롱(?)한 제목의 신작 에세이집을 또 냈다고 한다. 대서특필한 신문기사 때문에 알게 되었다.

   

반면 박범신은 2010년 소설 ‘은교’를 냈었는데 2년 동안 잠잠하다 2012년 영화 ‘은교’ 때문에 소설 ‘은교’가 화제가 됐다.

영화 ‘은교’ 덕에 방송에 출연한 박범신은 트윗과 페이스북을 통해 “방송출연을 후회한다. 책은 읽지도 않고, 영화만 보고 질문한다. 왜 70과 17로 모든 것을 예단하는가. 은교에서 나이는 사소한 모티브에 불과하다. 스캔들이 아니다. 소설 ‘은교’가 전하는 인간의 오묘함을 영화 ‘은교’가 모두 전달 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영화 ‘은교’만 보고 은교를 다 아는 것처럼 한다는…”이라 토로하며 ‘읽히지 않은 책’에 대한 작가의 서운한 마음을 살짝 내비췄다.

어쨌든 영화 ‘은교’가 박범신이라는 작가를 미처 모르고 있었던 수많은 독자들에게 그를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지도 조사를 해보면 박범신 작가에겐 섭섭한 말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훨씬 높게 나올 것 같다. 신문사들 덕분이다. 최소한 하루키의 책이 나올 때마다 주요 언론사들의 줄을 잇는 대서특필, 감탄과 칭찬은 기본, 별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마저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빨아주는’ 기사들 덕분이다.

필자는 문학평론가가 아니다. 그러니 하루키의 소설과 박범신의 소설을 비교, 평론할 능력은 도대체 없다. 다만 마케팅은 조금, 아주 조금 안다. 일단 제품력이 별로인데 마케팅으로만 성공, 장수하는 제품은 없다. 최선은 제품력과 마케팅이 같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제품력은 최고인데 마케팅을 못해 빛을 못 보는 제품은 수도 없이 많다. 전자가 대기업이라면 후자는 중소기업에 많다.

소설 ‘상실의 시대’는 1970년대 일본의 고3 학생이 대학 초년생이 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사랑 이야기다. 그만한 나이의 성장통이다. 하근찬 소설 ‘여제자’가 원작인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이나 알퐁스도데의 ‘별’, 황순원의 ‘소나기’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야하다. 그렇다고 마광수의 ‘가자 장미여관으로’ 류는 또 아니다.

다만, 마케팅 관점의 필자의 눈에 띄는 것이라면 주인공 와타나베가 분위기 갖추어 수시로 즐겨 듣는 음악은 죄다 비틀즈나 베토벤 등 서양음악가 일색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외식은 이태리 식당, 술은 맥주나 와인, 위스키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한국 작가의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 ‘배호의 장춘단 공원,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을 운치 있게 들었다. 청계천 고모집의 청국장에 소주 한 잔을 죽이게 먹었다’고 썼다면 이 소설의 번역본이 미국이나 유럽의 독자들에게 먹히겠는가 말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왜, 구태여, 유독 팝송과 클래식, 서양음식과 술만을 좋아하는 것일까?

   

문학평론가가 아니니 하루키의 문학이 어떤 대단한 문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언론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하루키가 궁금해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일부러 ‘사서’ 읽고 난 후에 ‘이거 혹시 지나친 과대평가, 출판사의 마케팅 술에 내가 현혹된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 한 토막도 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박범신의 ‘은교’도 많이들 사서 읽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