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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 사장학] 연구개발은 누가 하나?

[제34강] 쉬운 말의 경영학 ‘연구개발관리 1’

허달 코치 기자  2012.07.03 10: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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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연구개발은 누가 합니까?" SK그룹의 한 CEO 코칭에서 필자가 질문했다.

"우리 회사에는 아시다시피 중앙연구소가 있습니다. 거기서 연구개발이 이루어지지요."

"그렇군요."

나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정답이라든지 그런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정답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SK그룹 회사의 CEO부터라면 이런 대답을 듣고 싶었었다.

"연구개발이란 조직의 어느 레벨에서든 항상 일어나고 있어야겠지요."

적어도 '최종현 사장학'의 정의에 의하면 그러하다. 왜냐하면 연구개발이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고, 기존 상품의 품질‧원가를 혁신하고, 경영관리기법을 발전‧혁신하는 모든 일'을 다 포괄한다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마케팅 조직에 속한 어느 영업사원이 고객사를 방문하고 돌아오다가 우리 상품과 함께 공급하면 고객이 편리하다고 생각할 어떤 서비스에 대해 생각이 미쳤[及]다.

"그러네, 이 서비스를 우리가 기존 상품에 붙여 새로운 상품으로 공급하면 안될까?"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는 영업사원이면서 이미 연구개발자다.

"좋은 생각이야, 상품기획부서와 함께 팀을 만들어 자네 아이디어를 상품화 해보세." 그 상사가 영업사원의 아이디어를 듣고 이렇게 행동계획을 세웠다면 그도 역시 연구개발자다.
 
"우리 공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누구에겐가는 혹시 필요한 물건이 아닐까?" "폐기물을 마구 섞어서 폐기하지 말고, 다소 폐기 경로를 개선하면 어떨까? 누군가가 수거해 가져가 잘 분류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폐기 비용을 다소 줄일 수 있지 않을까?"이런 고민을 하는 생산부원이 있다면 어떤가? 그 역시 연구개발자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중앙연구소에 출근하여 연구실의 창을 밤새워 밝히고, 사업부문에서 요청 받은 과제 연구 또는 자신이 창안하여 연구비를 배정 받은 개발 연구에 몰입한 연구자들을 빼놓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연구개발은 결코 석, 박사 학위 받아 연구소에 입사한 연구원만이 수행하는 기술개발연구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참에 천명해 두자는 것이다.

뒤집어 이야기 한다면,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밤낮으로 실험과 연구에 몰두하는 높은 월급, 박사 학위 뽐내는 구성원도 이윤극대화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고, 새로운 상품, 기존상품의 품질과 원가의 혁신에 관심이 없다면 그는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올바른 연구개발자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
  
필자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인 1966년에도 당시 대한석유공사 울산공장에는 연구소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영어로는 ‘Laboratory’ 이름을 붙였었는데, 글자 그대로 품질관리 ‘Lab’이었다.

합작 파트너였던 Gulf Oil Corporation의 연구조직인 GR&DC(Gulf Research & Development Company)에서 품질관리 훈련을 받고 온 케미스트(Chemist: 화학전공자)들이 운전원들과 함께 교대근무를 하는 체재였으며, 생산되는 정유제품이 생산규격에 맞게 생산되고 있는지를 검사하는 생산지원 기능과, 저장, 출하되는 제품이 또한 판매규격에 맞게 출하되고 있는가를 검사하는 출하지원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른바 ‘Check & Balance’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생산‧출하와는 독립된 공장장 직속 기능 조직이었다.

비록 이름을 연구소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이처럼 ‘Laboratory’가 주어진 규격을 단순히 운용하기만 하는 동안은 아직 연구개발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같은 규격 운용이지만 그 규격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성상이 생산‧출하 기능 또는 판매기능, 나아가서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Significance)를 갖는가를 탐구하며 이를 운용하기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연구개발의 첫 단추가 끼워지게 된다.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 뿐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 산업계의 기술 능력은 거의 불모(不毛)에 가까운 상태였으므로 선진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은 자본도입과 더불어 산업 근대화를 이루기 위하여 절대절명의 과제였었다. 기술도입 특히 공정기술의 도입은 그 자체가 연구개발의 일부인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2006년 6월 SK㈜는 울산 콤플렉스에서 제3방향족 제조시설(NRC.New Reformer Center)을 준공했다. 이 시설은 연산 65만t 규모로, SK㈜의 방향족 생산량은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인 연 280만t으로 늘어났다.
"아니, 자일렌을 용매추출하지 않고 분별 증류로만 생산해낸다면, 그 안의 파라핀 함유량이 자일렌 품질규격을 벗어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시려는 거지요?" 공정설계의 책임을 맡고 있던 베테랑 엔지니어 과장이 내게 물었다.

유공의 신규 방향족제품공장 건설 프로젝트(New Aromatics Complex Project)의 개념설계가 한창 진행되던 때(1981년)에 일어난 일이다.

방향족 제품이란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을 총칭하는 석유화학 제품군(群)의 명칭이다. 원유로부터 분별증류로 생산해낸 나프타를 높은 온도 압력하에서 촉매를 사용하여 반응(Reforming)하게 하면 그 안에 사슬모양으로 존재하던  파라핀 등의 석유성분이 거북이 모양의 육각형 고리를 형성하여 방향족제품을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방향족 제품을 일반적으로는 특수용매를 사용하는 특허공정에 투입하여, 추출법에 의거 파라핀 함량이 거의 무시할 만큼 낮은 높은 순도의 벤젠, 톨루엔, 자일렌을 최종 제품으로 생산하였다.

그런데 프로젝트 개념설계 총책임을 맡았던 필자가 당시 새로이 프랑스로부터 도입하는 고가혹도(High Severity) Reforming 기술을 검토해 보니 반응결과로 생산되는 조(粗) 자일렌 성분에 함유된 파라핀 불순물이 이미 충분히 낮아, 운전비가 많이 드는 용매추출을 생략하고 직접 분별증류에 투입하여도 품질규격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가 생겨났던 것이었다.

"용매추출 시설 용량을 줄이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그러다가 낭패 보는 경우는 누가 책임 집니까?" "우선 프랑스의 특허권자가 분별증류만으로 자일렌 품질규격을 보증(Guarantee)하겠다고 하는지 물어 봅시다."

특허권자 IFP에게 질의해 보니, 충분히 낮을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그런 형태로 공정구성을 짜본 일이 없어 보증 책임은 지기 어렵다는 회답이 되돌아왔다.

"보수적으로, 특허권자의 보증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갑시다. 세계 최초 시도라는 게 성공하면 좋지만, 그 대신 위험도가 그만큼 높은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필자는 생산부서나 영업부서의 우리 직원들이 주장하는 안전제일주의에 영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불순물 함도가 높은 벤젠, 톨루엔 만을 용매추출시설에 투입하고 자일렌은 분별증류로 생산하면, 첫째, 새로 설치해야 하는 용매추출시설의 설비 규모가 절반 이하로 작아질 뿐 아니라, 연간 수십만톤의 자일렌을 용매추출하는 데 드는 막대한 운전비용과 특허료(running royalty)도 절감된다.
 
"만에 하나 신규 시설에서 생산되는 자일렌 제품의 파라핀 함량이 규격보다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을 영업부서에 던져 보았더니, 많은 양을 수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 정규 규격에 합격되지 않으면 팔아낼 수 없으니, 기존 시설에서 생산되는 추출 자일렌과 섞어서 파라핀 함량을 규격 이하로 떨어뜨리거나, 그것도 안 되면 용제 규격으로 다운그레이드 시킬 수 밖에 없다고 도리머리를 흔든다.

그런데 그 부정적 답변에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새로 생산되는 제품을 분리하여 다룰 수만 있다면 만에 하나 실패가 있더라도 용제 용도로 전환하여 이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생산량을 모두 팔아낼 수만 있다면 저(低) 품질의 용제로 팔더라도, 대부분 수출되어야 할 규격제품보다 꼭 낮은 가격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경제적 손실은 없다는 것이 면밀한 검토 결과 확인되었다.

결론만 말하면, 공장 저장 출하시설을 다소 손 보아 용제용 자일렌과 공업원료용 자일렌을 분리 저장‧출하할 수 있도록 ‘Contingency Plan’을 조치해 놓은 뒤, 필자는 이 세계 최초의 시도를 감행하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분별증류로 생산된 자일렌은 오히려 기존 방향족추출시설로부터 생산되는 자일렌 제품보다도 불순물 함유량이 훨씬 낮아서 유공이 세계 최초로 채택한 방향족생산공정의 새로운 공정구성(Process Layout) 시도는 멋지게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공정구성 방법 이 이후 세계적 표준으로 채택되었음을 물론이다.
 
최종현 회장과 함께 사장학의 '연구개발관리'의 개념을 정립할 때, 위와 같은 사례들을 검토하고 이를 의당 연구개발 ‘Activity’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 더불어 공감하였다.

[다음 회에는 ‘연구개발관리 2’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