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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툇마루'의 마음·여유 없는 신한은행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7.03 07: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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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무슨무슨 고가, 누구네 고택 이런 식으로 이름이 난 옛날집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댁 옛날 조상이 참판(오늘날 차관급)이었든 정언(국장급)이었든 손님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방을 제대로 갖춰 놓는 게 통례였습니다.

명심보감 훈자편에 이르기를, 賓客不來  門戶俗(빈객불래 문호속: 손님이 집에 찾아오지 않으면 집이 누추해진다)이라고 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명심보감의 이야기는,  접빈객을 해 버릇하지 않으면 예(禮)를 잊어버리니 천(賤)해진다는 말이지 싶습니다. 청소도 않고 입성(옷)도 더러워지며 게다가 세간집기도 남의 눈을 의식해 닦질 않아 꼬질꼬질해진다는 말이겠지요.

사랑채를 잘 관리해 놓는 집은 그래서 늘 누군가를 의식하며 사는 반듯한 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채에 앉아 문풍지 발라 놓은 곁문들과 툇마루를 보면 이 댁에서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사랑방 손님의 마음에 바로 전달되지 않겠습니까?

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툇마루는 빈이라고 표현할 손님이라기보다는 객에 가까운 사람들, 그야말로 우연히 찾아든 길손까지도 포함되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가 그래도 넓은 의미에서 손님 대접을 해 주는 것이지요(물론, 신분제 사회에서야 남의 집 노비가 심부름을 왔다 해서 대갓집 사방채에 들이진 않고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밥상을 차려줬거나 했겠지만, 이는 별개의 사안이라 말이 길어질 것이고 그런 조선시대에조차도 돌아가는 심부름꾼에게 팁에 해당하는 행하나 길양식을 챙겨 보내는 나름의 예의 표현 기법이 있었답니다).

1974년 6월에 경향신문에 연재된 바둑야화라는 소설을 보면, 그래도 손님에게 공간을 내주는 마지막 한계선이 툇마루인 것으로 나옵니다(집안에 사정이 있어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면, 툇마루라도 내 주면 거기서라도 자겠다는 식으로 나옴).

어쨌든 형편이 되는대로 사랑방이든 툇마루든간에 손님이 걸터앉아 식견을 뽐내거나 그도 아니라면 물도 마시고 밥상도 받거나 땀도 들이게 하는 게 일종의 예의이자 법도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작금에, 남대문로의 신한은행(055550) 본점-신한지주 본사 건물을 드나들다 보면, 불편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문은 아니라 옆문이지만 많은 직원들이 드나드는 문 바로 앞(그러니까 문과 중간문 사이의 모호한 공간에서 택배기사들이 이 신한빌딩에 택배물이 드나드는 것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기는 하지만, 대문과 중간문 사이에 공간에 불과하니(현관에 불과한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음. 이를 테면 문전박대보다 조금 나은 정도) 앉거나 물건을 제대로 쌓을 공간은 당연히 못 되고, 때로 앉거나 굽히듯 해서 일을 처리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명색이 신임 회장-행장 부임 이후 ‘따뜻한 금융’을 한다고 이미지 쇄신을 꾀하고 있는데, 자기 건물에 선물이나 필수적인 물품들을 손발처럼 처리해 주는 손님들을 왜 이렇게 맞이하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보안 문제가 있어서 공간 할애가 어려운 점은 물론 있겠지만, 툇마루 한 켠 정도 만드는 게 정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