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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년만의 가뭄'과 '국가채무 화폐화' 불안한 함수관계

미국·일본 두드러지고 스페인 우회책, 우리는 물가문제 부담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6.28 14: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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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돈을 푸는 경제위기 해법인 ‘양적완화’, 하지만 각국이 선보인 양적완화 카드가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6월12일 한국은행 창립 제62주년 기념사에서 김중수 총재 양적완화 남발 경향에 대해 “선진경제에서 발생한 경제위기 해결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신흥국 성장에 의한 글로벌 경제 성장 유발로 해결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선진국의 양적완화를 둘러싼 전망은 끊이지 않는다. 27일(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연방준비제도가 9월에 3차 양적완화(QE3)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유로존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국채나 여타 다양한 금융자산의 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의 골자로 재정정책을 펴기 어려운 경우 이런 통화완화책은 더 빛을 발한다. 하지만, 사실상 가장 중요한 수단인 국채의 중앙은행 매입은 ‘국가채무의 화폐화’라는 또 다른 부정적 얼굴을 갖고 있다.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 ‘국민 富 턴다’ 비판론에도 마약 같은 효과

국가가 중앙은행을 통해 국민들의 호주머니 자금으로 빚을 현찰로 바꿔 쓴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거부감이 높기 때문에 국가채무 화폐화를 막기 위한 제어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중앙은행에 국채를 넘기는 국가채무의 화폐화는 양적완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언급되는 이슈 중 하나다. 하지만 국가의 짐을 국민에게 분산해 넘긴다는 비판 외에도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 효과 등 여러 부작용이 있다고 해 정면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사진은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전경.

가령, 일본은 정부의 재정자금 도달 창구로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으로의 국채 매각이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은행의 국채보유액이 화폐발행 잔액 이하로 유지되도록 규정에 못 박고 있다. 또 보다 직접적인 규정으로, 재정법에는 일본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경우 일본은행이 직접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공개시장 조작을 통한 매입, 자산매입기금을 통한 매입 등으로 사실상  국채 발행에 대한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일 국제금융센터의 ‘일본은행의 국채보유 증가와 재정우려’ 보고서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일본은행의 장기국채 보유액은 76조3000억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는 화폐발행 잔액(93조1000억엔)의 82%나 되는 큰 규모다.

스페인의 경우는 우회적인 국채의 현금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스페인이 국채 발행에는 성공했지만, (제대로 시장에 흡수된 게 아니라) 이 중 상당 부분을 스페인의 은행들이 사들인 것으로 의심된다는 보도를 내놨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스페인의 경우 당국이 직접적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은행들의 부실(부동산 대출 등으로 인한 경색)을 구제한다는 이유로 간접적으로 지원을 받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국가적으로 재정긴축의 강요를 피하기 위해 (시중)은행들을 통한 국제사회의 우회적 지원 인수→국채 발행시 (시중)은행들을 통한 매수로 느슨한 연대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국채 발행)→중앙은행(국채 매입)보다 간접적이고 우회적이다.

정부가 국채 매각을 통해 조성한 필요한 자금으로 직접 자국의 문제(은행 지원)를 푸는 것은 아니나, 사실상 효과는 같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스페인 등급을 낮춰 현재 스페인의 위기 해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시사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가 근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장단기 국채 교환 프로그램)를 연장했는데 이는 채권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환 처리를 통한 금리 인하 효과 유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가한 대책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에 따라 한층 화력이 센 3차 양적완화(QE)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발권력(돈)으로 직접 재무부 채권을 사들이라는 주문인 셈이다.

기록적 가뭄, 이로 인한 물가불안… 채무 화폐화엔 악재?

이렇게 유력한 방법지 중 하나로, 또 때로는 재정정책을 쓰기 어려울 때 돌파구로 사용될 수 있고 현재도 사용 사례가 없지 않은 상황에서 왜 정면 언급이 회피될까? 이는 물가 불안이라는 부작용 우려 때문이다. 

현재 우리도 정부부채 부담으로 재정정책을 과감하게 쓰기에는 부담이 있다. 한국은행 박양수 조사국 부장외 13명이 22일 발표한 ‘부채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보고서는 “ 중장기적으로 정부부채 비율이 주요 재정위험국 수준으로 상승, 재정건전성 기반이 상당부분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정부부채는 420조7000억원으로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299조2000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더욱이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성 지출 증가와 부실 공기업 등의 잠재 채무와 함께 금융성 채무가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되지 못할 경우 정부 부채비율은 203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6%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경우에 현재 국제경제 위기가 장기화의 수순을 밟는다면 정부의 지출 필요성은 더 커지는 반면 좀처럼 운신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릴 수 있고 방안으로 국가채무의 현금화 추진이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인플레이션 유발 가능성이 걸림돌로 남는다. 우선 우리 경제가 큰 가계부채  부담을 지고 있는 등으로 기준금리 인하 요구가 높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이 크게 줄고, 그만큼 내수를 진작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기준금리 인하 요구의 핵심이다.

28일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에서 보듯 하반기 경기에 대한 악화 전망이 우세하고, 이 여파로 내수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이런 상황 전제를 놓고 보면, 금리 조절을 통한 효과를 다시 무위로 돌릴 위험성이 있는 카드가 국가채무의 화폐화인 셈이다.

디플레이션 위기 국면이라면 채무의 화폐화를 추진해도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일본은행이 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자국 사정 속에서 사실상 이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우리의 경우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경기는 침체되는데 물가는 불안한 상황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묘사에 가깝다.
   
강수량과 농축수산물가 추이. 점원 표시 안은 각 시기별 가뭄기와 물가상승률 추이. 자료는 통계청 및 기상청 참조.

물가는 좀처럼 안정될 것을 장담하기 어려운 가운데(현대경제연구원 28일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3%대 진입 가능성이 높음) △수출과 수입이 동반 축소되는 ‘불황형 흑자’ 속에 △ 내수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가계의 소비 여력은 바닥이 가깝다는 우려감이 있다. 아울러 △기업의 설비투자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위험도와 인플레이션 위험도 분석 비교. 그래프 출처는 한국은행 보고서.

디플레이션 전례 없어 발권력 통한 국채 매입 자중 가능성 커

근래의 시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현실화한 적이 사실상 없었다는 분석 모델이 2009년 3월에 나온 바도 있다. 디플레이션 상황을 기반으로 하거나 이런 조건에서 감수될 수 있는 정책을 쉽게 택하기에는 경제 풍토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다(한국은행 김웅 당시 과장, 우리나라에서의 디플레이션 발생 위험 평가 보고서).

일본은행조차도 2011년 “자산매입이 부채의 화폐화라는 인식은 피해야 한다”며 여론의 주목이나 어젠다 세팅이 될 가능성을 극도로 우려하는 뜻을 내비친 것을 감안하면, 우리와 같은 사정에서는 한층 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마지막 카드로 아껴둘 필요가 높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