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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한국은행, 주문은 많고 도구는 마땅찮고

지준율 부과 등 수단 유연성 상승 속 타부처와 갈등론만 ↑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6.27 18: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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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국은행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물가 안정’을 지상 과제로 삼던 상황에서 ‘금융 안정’도 주요 목적이 됐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몰리기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어려운 전쟁에 ‘구원투수’로 동원되고 있으면서도 재량과 수단이 그만큼 따르지 않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나라의 금융과 실물(물가) 안정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균형으로 이뤄져야 하므로,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등과의 조율이나 이견은 원래부터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모순이 불거지는 상황에서라면 전체적인 시스템 검토를 할 필요도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화량 관리 강화 주문, 온당한지 논란?

19일 신제윤 기재부 차관은 세미나에 참석한 기회에 금리인하에 대한 반대 의견 등이 포함된 의견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재정정책 외 구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역할 기대만 높고 재량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명동의 한국은행 청사.

그런가 하면, 금융위에서는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한국은행의 협조를 당부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김석동 위원장은 가계부채 문제는 정부 부처와 한국은행의 협력 없이는 반쪽 대책밖에 될 수 없다는 태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신 차관의 주문대로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관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작 한국은행은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인플레이션 타게팅)가 도입된 이후 통화량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다. 또 현재 국제적 경제 사정을 감안하면 더더욱 금리 조정의 카드를 만지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요청과 훈수만 많지 일을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동정론이 부상하고 있다.

금융채 지준 등 수단도 논란 전례

그렇다고 다른 수단을 강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국내 경기 침체 우려와 물가 상승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정책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또 이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작년 연말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이 “기준금리를 변경하지 않는 대신 한은법 시행령 안의 금융채에 대한 지준부과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힌 점은 이런 상황과 해법 추가에 관한 인식을 명확히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금융채 지준 문제에 관해 논란이 불거졌던 작년 사정을 기억하는 이들은 추가적인 방안 마련 역시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연말, 지급준비금 부과 방법을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 은행권이 이해다툼을 벌였고, 금융채가 일단 지준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방향으로 흐른 바 있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은행연합회에서 지준 문제를 놓고 ‘꺾기(구속성 예금)’에 비유하기까지 하는 등 강한 반발을 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실상 한국은행의 입장이 ‘밀렸다’고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강경한 발언을 한 은행연합회의 신동규 전 회장은 최근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전’했고 원래는 재정관료 출신이다. 한 케이스를 놓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재정쪽에서 갖고 있는 시각을 가늠할 하나의 통로는 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참고로 금융채 지준을 공략하는 것이 쉽지 않을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바젤 III다. 바젤 III 규제가 적용되면 잔존만기 5년 아래로 떨어진 후순위채의 경우 해마다 20%씩 자본금 인정액을 차감하기 때문에 후순위채를 미리 발행, 자본적정성을 유지하려는 수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금융채 지준 변동을 시도하면 원성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다.

◆“캐나다는 지준 규제 포기?” vs. 캐나다식 중앙은행 독립 보장론 팽팽

결국 어떤 형태로 가든 국제경제의 사정이 나쁘고 현행 시스템을 균형을 그대로 갖고 가는 한, 한국은행의 입지는 녹록치 않다는 우려다.

이런 와중에 위에서 소개한 은행연합회와 한국은행간 갈등 국면에서 나온 바는 흥미롭게 받아들여진다. 신 전 회장의 ‘꺾기’ 발언 중에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금융채 지준율을 부과하지 않는 나라가 6개국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데 대한 반박도 있다. 즉 신 전 회장은 “미국의 경우 수시입출금식 예금에 대해서만 (지준율을) 부과하고 캐나다는 지급준비금 제도를 아예 폐지했다”고 했다.

하지만 캐나다 중앙은행은 실제로 이 같은 제약 외에도 상당한 재량을 허락받고 있다. 물가와 관련해서 보면, 상당한 책임을 지면서도(물가의 위기 국면시에는 총재 경질 가능), 그 반대급부로 상당한 재량을 보장받고 있다(조현진, 물가안정목표제에 관한 연구, 2000, 이화여자대학교).

그 외에도 캐나다 등 영연방계 국가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와 그에 기반한 정책적 강화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는 금년 말까지 금융감독청(FSA)를 대체해 행위규제 및 소비자보호를 맡을 기구인 금융규제원(FCA: Financial Conduct Authority)과 건전성감독원(PRA: Prudential Regulation Authority)로 분리하는 안을 짠 상황이다.

영국의 제도 개편 의의는 일단 ‘금융위기 극복에서의 중앙은행 기능 부각과 그 권한 명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위에서 말한 PRA와 FCA 분리 문제를 우리가 보기에는 금융감독원 기능의 양분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보다, PRA가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 들어가 있는 ‘거시 정책 기구’에 의해 지시 또는 권고를 받으면서 일을 하게 된다. 영란은행이 이렇게 힘이 강해지는 바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으로서 통화신용정책이나 물가관리에 양다리를 걸치게 되고 결국 하나에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금융연구원, ‘영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혁방향’, 2010년 6월19일). 하지만 이에 따라 향후 세부적인 감독제도 변화를 주시하면 된다는 의견도 강하다.

결국, 매번 돌출적으로 나오는 한국은행 역할(기여) 주문과 현재보다 강한 통화정책 등의 시도 필요성 부각 등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둘러싼 제도적인 논의를 하면서 한꺼번에 다뤄야 할 필요가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