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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이치(理致)와 눈치

장중구 기자  2012.06.27 1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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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치(理致)에 맞는 말을 한다면 이런 저런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다만 이치에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할 만한 정황이라면 삼가는 게 좋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어째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염려가 된다. 다른 사람을 공격할 때만 유독 이치를 따진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이나 부당한 행위는 모두 관행(慣行)이라는 이름하에 묻어두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한다.

게다가 더욱 염려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실수나 과거의 신분에 빗대어 그 사람의 존재(存在)를 단정 짓고 깔아뭉개려는 행태다. 국민들의 여론을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할 정치인들과 언론이 오히려 여론의 눈치를 봐가면서 숨겨둔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행태를 보인 다는 점이 정말 심각한 일이다.

이를테면, 대통령후보 선출 시기가 다가오자 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 박근혜 전 대표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말이 서서히 들먹여지고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데 무엇이 잘못됐느냐?” 하지만, 그가 누구의 딸이라는 사실은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가 시대와 화합할 수 없고 국민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존재라면, 새누리당이 야당이었을 때도 그랬고 여당이 되어서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리하다 싶을 때마다 당 대표로 내세워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한 일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아직도 일부 외국신문들이 우리나라를 ‘어설픈 민주주의 국가’(NYT, 2012.4.20.)로 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함에 있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인지? 여당의 대표는 되고 대통령은 안 된다는 말인지? 위정자들조차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눈을 민주통합당으로 돌려봐도 비슷한 현상이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마저도 대패한 민주통합당의 대표를 두 차례나 하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막상 18대 대통령선거 후보에 출마 선언에 앞서 그는 “이제는 제발 주홍글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한 인터부에서 말했다 한다.

앞으로 그 점을 두고 당 안팎의 비난이 거세어질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 정치인들의 이중적인 잣대와 눈치 보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민주당으로 건너올 땐 무슨 이유로 손을 덥석 잡아주며 당 대표에 상임고문까지 맡겨놓고서, 한나라당 출신이기 때문에 대통령 출마는 안 된다는 말이 과연 이치에 맞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위의 두 사례뿐이 아니다. 이치적으로나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는 승산이 없을 때 종종 상대방의 존재를 공격하는 행태는 정치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다문화국가로 변신을 하고 있다. 단일민족의 순수성을 자랑했던 대한민국이지만, 다문화국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지금이다. 현실이 이럴진대, 언제까지나 개인의 태생적 존재나 과거의 신분을 가지고 상대를 공격하다 못해 매도하는 저급한 문화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텐가? 정치인들이나 언론이 그 일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나서서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 

장중구 코치 / 공학박사 / (현)상진기술엔지니어링 전무 / (전)삼성전자 생산기술센터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