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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위 ‘여수엑스포 구하기’ 전두환 카드섹션 생각난다

이수영 기자 기자  2012.06.26 11: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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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달 12일 거국적으로 막을 연 여수세계박람회(이하 여수엑스포)의 폐막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10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려 10조원 이상의 경제효과와 9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야심찬 기대에 온 나라가 들썩였지만 지금 여수엑스포에는 ‘흥행 참패’라는 흉흉한 꼬리표가 붙었다.

지난 19일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여수엑스포에는 개막 이후 38일 동안 예상 과람객의 20%에 불과한 총 194만명이 다녀갔다. 하루 평균 방문자수는 약 5만명에 그쳤다. 각 부처가 총출동해 조기 휴가와 경비 지원을 내걸고 공무원들의 방문을 독려했지만 초라한 성적을 역전시킬 결정타는 못된 모양이다.

공무원만 동원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선 탓일까. 국무총리실과 국토해양부를 주축으로 한 여수엑스포 흥행 지원 사업에 금융위원회가 민간 기업에까지 ‘여수 동원령’을 내려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주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관련 협회 부회장급을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요점은 여수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라는 당부였다고 한다. 협회 소속 민간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임직원들이 특정 기간 동안 여수에서 머물도록 장려하라는 것이다.

금융위의 소집령이 떨어지기 전 알아서 선수를 친 금융사도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14일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공동으로 ‘여수엑스포로 떠나는 건강한 여름휴가 캠페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엑스포 홍보에 적극 나섰다. 거래고객과 소외계층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따로 관람권 2만장을 구매, 업계의 ‘모범사례’가 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일반 업계의 반응은 금융위의 여름휴가 추천 전략이 ‘난센스’라는 반응이다. 콘텐츠 부재와 편의시설 부족 등 행사 자체의 문제는 무시하고 모자란 관객을 공무원과 대기업 동원령으로 채우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얘기다.

한 금융투자회사 관계자는 “아직 직접적인 지시가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개인 휴가까지 정부 기관이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윗선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데 이건 막말로 1980년대 전두환 시절 학생 동원령과 뭐가 다르냐”고 푸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금융위의 ‘무리수’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초 금융위는 관련 협회 산하 민간 금융사에 ‘1인 2.6매’라는 입장권 구매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공문을 발송해 티켓 강매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공문에는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하는 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업계의 동참이 필요’ ‘회원사의 참여 현황을 조사하니 협조바람’ ‘(티켓 구매 관련)각사의 별도 계획이 없을 경우 직원 1인당 2.6매 기준’ 등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당시 금융위 관계자는 “박람회 조직위원회에서 행사를 적극 홍보해 달라는 요청이 와 유관기관들에 안내했을 뿐”이라고 발뺌했지만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적 행사의 ‘존망’ 앞에 비난 여론에도 귀를 막은 것일까. 주기적으로 재현된 금융위의 관치행정이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은 과거의 데자뷰(dejavu·기시감) 때문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학생들이 수업 대신 대통령 부부의 초상을 그리는 카드섹션 행사에 동원되던 그 장면. 촌스러운 관치행정의 대표적인 사례 말이다.

그럼에도 여수엑스포를 구하고자하는 정부의 애처로운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여수 세계박람회(엑스포) 관련 회의에서는 일반국민과 학생, 외국인 등의 엑스포 방문을 유치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의 여름휴가 조기 실시 △상반기 연가(年暇) 보상비를 조기 지급 등이 결정됐다. 여기에 △대기업과 금융기관, 해양수산단체 등에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 요청 △해외공관 통한 국가별 참여 확대 등의 내용도 흥행 지원 방안에 포함돼 사실상 민·관이 총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가볼 만한 행사와 꽉 들어찬 관람객의 상관관계를 그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