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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근저당 규제, 학설·판례보다 과감한 방식 택한 이유는

금감원, 옛 은감원 시절부터 주목…사업자 연대보증 폐지 '풍선효과' 차단 주력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6.26 11: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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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7월부터 은행권의 포괄근저당이 특정 종류의 여신거래에 따른 채무만을 담보하는 한정근저당으로 모두 전환되면서, 관련 조치의 배경과 파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은행들의 자율적 변경 조치로 보이지만, 사실상 배경에는 금융감독원의 독려가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은행의 근저당제도 개선방안은 7월2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조치는 4월 발표한 은행 근저당제도 개선대책의 후속 방안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강력한 금감원의 의지와 로드맵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윤곽을 드러낸 방안에 따르면 이달 30일 기준으로 포괄근저당이 설정된 대출은 한정근저당으로 일괄 전환된다. 대출, 보증, 신용카드 채무 등 은행과 거래할 때 발생하는 ‘모든 채무’에 대해 담보책임을 지우는 포괄근저당을 특정 거래에 따른 채무만을 담보하는 한정근저당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포괄근저당이 설정된 가계대출은 129만 건, 90조 원에 이른다.

또 은행에서 근저당 계약은 모두 전환하기 때문에 담보를 제공한 사람이나 채무자가 은행에 가서 변경하지 않아도 된다.

한정근저당 가장한 포괄근저당도 규제

또 한정근저당 중에서도 피담보채무의 범위가 포괄적이거나 과도하게 확대된 한정근저당은 피담보채무 범위가 축소된다. 피담보채무가 ‘증서대출’ 등과 같이 여러 종류의 여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기재됐다면 ‘차주가 받은 대출채무’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담보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은행 창구에서 시키는 대로(은행측 주문, 요구에 따라) 써야 했던 피담보채무 지정방식도 새롭게 도입된다. 근저당 설정계약을 체결할 때 은행은 대출의 종류가 구체적으로 분류된 별도의 서면(여신분류표)을 담보 제공자에게 제공하고 담보 제공자는 차주가 받는 대출의 종류를 직접 피담보채무로 표시하는 방식이 도입된다.

은행권은 이런 방식 변화에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 사실상 금감원이 포괄근저당에 대한 민법학 발전 과정에서 은행에 불리한 학설을 업계 표준으로 들이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간 판례의 태도가 일부 명확치 않았던 점을 행정지도 차원에서 밀어붙여 해결하려는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 은감원 시절에 이미 근저당 폭주현상 칼댄 노하우 있어

이번 조치는 금감원이 일반적인 근저당에 대해서도 지나친 은행의 편의와 자의적 운영이 불가능하도록 규제를 가한 점이 있었다는 바와도 겹쳐져 특히 주목되고 있다.

과거 일제시대를 보면, 일반적인 저당은 법에 따라 처리가 됐지만 근저당은 규정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고등법원 1931년 판결에 의해그 유효성이 인정됐고, 광복 후에도 우리 대법원이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 실무가 먼저 발생하고, 그 다음 학설과 판례에 따라 실제 규정이 마련되기 전부터 굳어진 다음에 법규정이 등장한 것이 근저당의 역사이며 저당권의 한 형태이면서 은행 중심의 기형적 제도로 운영될 소지가 다분함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도 은행권은 근저당의 편의성에 주목, 발전을 가하게 되는데, 포괄근저당은 1960년대 이후 신용거래에서 많이 수반해 설정됐다고 한다.

포괄근저당의 애용은 일본의 은행 실무에서 모방해 답습된 것이라고 하는데(나정희, 포괄근저당의 피담보채권의 범위, 전남대학교 법학석사 논문, 2009), 이에 따라 금감원의 전신인 은행감독원에서 특히 제3자 담보 때 포괄근저당을 남용하지 말도록 한 바가 있다(1983년 8월 각 신문 보도).

이런 옛 은감원 입장에 부응해, 1983년 연말 은행연합회에서 저당권을 보통저당권, 특정근저당권, 한정근저당권, 포괄근저당권으로 구분해 운영하도록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실상은 위에서 이번에 금감원이 주목한 것처럼 지나치게 확대된(사실상 포괄근저당인) 한정근저당의 매력에 시중은행들이 집착해 왔기 때문에 은감원 시절부터 은감원이나 은행연합회의 권고를 우회하는 감이 있었고, 그런 해묵은 숙제를 이번에 금감원이 짚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설 중 은행에 불리한 쪽 따라가…판례 모호한 부분도 보강 효과

판례는 또 포괄근저당의 효력을 인정하되 규제를 가해 왔는데, 그런 경우라도 피담보채권의 범위를 제한하는 데 모호함이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 약관규제법이 마련된 이후에도 일명 예문해석 방식으로 규제를 하는 방식을 택하는 판례도 나타나 문제로 지적됐다.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일찍이 판례월보(1992년1월호 등)를 통해 이런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금감원이 원하는 바에 따라 전부 포괄근저당의 한정근저당 전환식으로 문제를 풀게 되면 학계에서 논의되어 온 한정적 유효설에 비해서도 상당히 진보적으로 문제를 전환하게 된다. 순수한 포괄근저당은 무효라 하더라도 은행 등에서 사용되는 부가적 포괄근저당은 유효라는 게 한정적 유효설의 뼈대다. 채권의 발생 가능성이 신용수수의 기본계약의 모습으로 사실적인 객관성을 갖추면 되고 ‘기타 일체의 채권’도 은행과 거래선과의 사이에 생기는 채권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으로써 포괄근저당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맞추는 학설로 평가된다. 우리 민법학을 이끌어 온 인물로 평가되는 곽윤직 교수(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 이러한 해석은 마치 어떤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와 같은 느낌’을 주는 불만이 있으나 거래의 안정을 위해 부득이한 해석이라고 한다는 설명이다(김재형, ‘근저당권에 관한 연구, 서울대 법학박사 논문, 1996년, 117면 등 여러 곳의 설명을 종합).

이런 학설에 판례 역시 상당히 가까웠던 것인데 이보다 한 단계 과격한 전환 논리를 택한 셈이다. 이처럼 강경한 조치를 택한 금감원 의중은 어디에 있을까?

연대보증 폐지 풍선효과 차단 기대감

업계에서는 이러한 포괄근저당의 규제 방향을 지난 5월에 도입된 사업자 연대보증 문제의 개혁과 연장선상에서 찾기도 한다.

금융위원회쪽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 제도를 마련했는데 이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의지가 십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5월2일부터 사업자 연대보증 폐지 수순을 밟기 시작했고, 특히 첫날부터 바로 감시 대상이 된 것이 바로 신규로 이뤄지는 개인사업자의 대출부터였다.

즉 이제는 주된 대표자 한 사람만 주채무자가 되는 것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따라서 지금까지처럼 대출을 위해 주 채무자 외에 공동 대표나 동업자 등을 연대 보증인으로 세울 필요가 없다.

법인의 경우도 대표이사나 최대주주 가운데 실제 경영자 한 사람이 연대보증을 서는 것으로 족하다.

문제는 이런 연대보증이 폐지되면서 중소기업 자금조달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은행에서 대출 규모를 줄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며, 연대보증이 빠지는 대신 물적인 담보를 바꾸는(증액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하는 상황 또한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 주요한 통로가 바로 포괄근저당과 같이 물건의 사실상 가치 전부를 은행에서 집중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따라서 금감원발 포괄근저당 대책은 단지 은행을 괴롭히기 위한 조치라기 보다는, 금융의 사업자편의성 제고를 위한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번 연대보증의 관련 개편 추진 방침에 이어 포괄근저당에 대한 규제까지 이번에 단행됨으로써 일반 금융소비자의 편익은 물론, 특히 사업자의 보증 관련 압박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