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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화차' 흥행과 불법 사금융 단속에 부치는 글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6.24 19: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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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가끔 한반도에 상륙해 크게 인기를 얻는 외국 원작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저런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흥행을 해서는 안 되는 건데(한 10년 전이면 몰라도)" 하는 착잡한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빚에 몰린 나머지,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고 싶어 한 여자. 그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제거하고 그 신분을 차지해 새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데…어느 날, '신용카드 신청서' 한 장 때문에 그 '신분 세탁'의 전모가 드러나 결국 결혼 직전에 사라진다.>

이런 줄거리의 소설 '화차'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각색돼 김민희 주연으로 영화화됐고, 캐스팅된 배우들의 연기가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흥행 면에서도 우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놀라운 점은 이 원작은 1992년 작품이라는 데 있다. '결혼식 목전에 다급하게 사라진 신부, 알고 보니 그 여자는 내가 아는 그 여자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우리 사회에서도 먹혀 들었겠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원작은 쇼와 5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의 주택신용대출 대란 그리고 그 다음에 온 신용카드 대란 그리고 그 이면의 악질적 추심 등을 다룬다. 그런데, 우리도 IMF 구제금융기 그리고 신용카드 대란을 겪어 봤기 때문에 이런 점에 '과거형/과거완료형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생한 현제 시제 공감대'를 갖고 이 작품을 본다는 게 문제다.

소설에서 다루는 극심한 빚 독촉 문제가 바다를 건너와 한국에서 사회문제화 된 것도 그리고 채무자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우리 제도가 정비된 것도 불과 얼마 전이고('경찰 민사 불개입의 대원칙'이 일부 수정됐다고까지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당국이 채권자의 횡포에 대처할 여지가 늘었음), 신용불량자 등에 의한 각종 범죄 소식이 들린 것도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에 있다.

그러니, 20년도 더 된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소설이 살짝만 각색해도 오늘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건 원작 소설이 워낙 잘 쓰여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불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버블 붕괴 이야기가 오래 회자됐지만, 버블 붕괴 이면에서 부각된 각종 음습한 폐단 그리고 그 대비책의 발전 등 이웃나라(이면서 선진국) 문제에 타산지석으로 배우는 노력을 우리 사회 전반이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그래서 훗날에야 일본의 실패 유형은 물론 극복에 드는 노력과 시행착오까지도 그대로 답습한다는) 뜻으로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한국에서도 불법 채권추심이나 파산 등에 대한 연구나 노력을 기울인 이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은 중앙대 로스쿨에서 근무하는 전병서 변호사가 1990년대 후반부터 소비자파산 관련 연구를 한 바 있고, 김관기 변호사가 이 분야의 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과거 분당사태 전 민주노동당에서 일하기도 했던 송태경 비서관(최재천 의원실 근무)은 원래 악질적인 추심자들로부터 채무자를 지키는 데 앞장섰던 현장활동가 출신이다. 문제는 이런 선구적 인물들의 노력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도록 사회적 지원이 미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영화 화차가 개봉했을 때 그리고 히트를 했을 때' 기자가 느낀 감정은 금년 들어 '정부 부처들이 합동으로 각종 불법사금융을 단속한다'는 소식 그리고 그 단속 기간을 연장한다는 뉴스가 나올 때 든 기분과 비슷했던 것이고, 기자 외에도 그런 감상을 느낀 분들도 없지 않았으리라 본다.

"저 때(1990년대 후반) 잘 했으면 우리에게는 저런 스토리가 이미 모두 지나간 일, 극복한 일일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불법 사금융 기간 연장 소식에 즈음해 드는 생각은, 이번만큼은 이 문제를 모두 뿌리뽑아 '화차에 실어 보내 버렸으면' 한다. 언제까지고 이런 슬프고 참혹한 일본산 이야기가 한국에서 뒤늦게 "생생하다"고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지 않을까. 화차 같은 수입품 소설은 좀처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태평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추신: 일본 전설에 따르면, 악인을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 특급 교통기관을 '화차'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