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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괄수가제 논란 "설득대상은 생명이다"

정금철 기자 기자  2012.06.22 08: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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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재 정부는 내달 1일 포괄수가제 도입을 가시화했고 의사협회와 일부 의사들, 몇몇 시민단체는 이에 맞서는 입장으로 한 치 양보 없는 설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의 공방은 문자 협박, 조직적 댓글 달기 등 수위를 넘어선 감정대립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에 이르렀다. 

현행 행위별수가제는 질병 치료 때 항목당 치료금액을 산정해 본인부담금 이외의 차액은 보험공단이 지급하는 방식이지만 포괄수가제는 입원기간 제공된 검사, 수술, 투약 등 의료서비스의 종류나 양에 관계없이 해당 질병에 따라 책정된 진료비를 보상한다.

그렇다면 모든 전 국민 차별 없이 균등하게 저렴한 진료비를 청구하는 이 제도에 대한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들은 포괄수가제가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는 동시에 의료 민영화를 위한 사전포석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포괄수가제로 최소 진료를 제공하고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나머지 질병은 민간 영리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국내 한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내과 전문의 A씨는 “포괄수가제는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문제였다”며 “행위별수가제의 장점은 적극적 치료, 단점은 과잉진료 및 비용증가지만 포괄수가제는 비용감소라는 장점 대신 의료의 질 저하라는 단점을 가져 양 제도가 상극의 성격인 것으로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괄수가제는 우리나라처럼 저수가 여건에서는 도입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한국은 민영의료기관 95%며, 수가가 1/3 수준이라서 의료의 질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사의 설명대로라면 예를 들어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맹장수술의 경우 일단 수가가 비싼 CT쵤영 대신 초음파로 진단한 다음 추가검사를 제외한 최소한의 피검사를 한다. 이후 인건비와 재료비를 줄이기 위해 최소의 인원과 재료로 수술을 끝내고 환자가 이상이 없다면 수술 전 동의서에 서명한 대로 최단시간 퇴원을 권유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국민들은 현재 동향을 정부와 의사협회 간의 이권 줄다리기로만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의사협회는 일부 의사들에게조차 외면을 당하는 것이 묵과하기 힘든 현실이기 때문에 사태를 더욱 악화일로로 몰고 있다.

A씨는 “의사협회는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정보제공 의무를 등한시하고 영리만을 추구한다는 인상이 강해 국민은 물론 의사들에게까지 배척당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의사협회는 포괄수가제를 반대하고 있지만 병원협회는 찬성하는 쪽이다. 의사협회가 의사모임이라면 병원협회는 대형병원 소유자모임으로 영리적 성격이 더 강한 만큼 보건복지부의 이번 정책으로 손해 볼 일이 없다는 게 의사협회의 주장이다. 지금까지는 의사의 능력으로 병원 매출이 늘어날 경우 병원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면 앞으로는 비용을 절감하는 의사에게 혜택을 주게 돼 이것이 의료의 질 저하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국내 대형병원의 한 외과의사는 “병원이 비용절감에 사활을 걸면 직원인 의사들은 병원 측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써왔던 고가 재료의 사용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의사는 또 “의사는 자기만족과 성취감으로 버티는 직업인데 일부 환자들은 다들 돈만 밝히는 족속으로 의사를 매도해 억울한 마음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라며 막힌 심경을 토로했다.

의사협회는 정부의 포괄수가제 도입이유를 의료보험 재정 악화 및 보험사들의 로비와 연관 짓고 있다.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시행할 경우 현행 행위별수가제와 비교해 100억원 정도의  절감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고작 이 정도 규모를 줄이기 위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에 따르면 12년 전 의약분업 시행 후 근 10년간 30조원의 의료 재정적자가 발생했고 정부는 정부 몫의 의료보험 재정을 6조원을 내지 않고 있어 연체분만 의료 재정난은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또 실비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늘어 금전적 손실을 입는 보험사들은 포괄수가제 도입 이후 최소금액만 보험가입자에게 지급하면 돼 이득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부연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한 대책으로는 복지예산 확충과 국가 부담 의료비 수준 상향, 복제약가 조정 등 조제비 규제 등을 제시했다.

시민단체들은 의사협회와는 다소 다른 입장이다. 포괄수가제 도입을 의료 민영화의 발판으로 해석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돈 없는 국민은 포괄수가제로 치료를 받고 돈 있는 국민과 포괄수가제로 치료할 수 없는 항목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영리병원을 찾게 된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포괄수가제는 의료비 절감과 행정·관리 효율성이 목적”이라며 “단점인 과소진료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는 상당수 포괄수가제 시행국가에서 보완책이 나왔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일체의 언급 없이 이 제도를 좋은 쪽으로만 호도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포괄수가제에 포함된 7개 항목은 가장 시행이 안전한 것들을 고른 것에 불과하다”며 “암 및 내과질환 등 553개 항목은 오는 2015년 시행될 게 자명해 사전에 차단하는 길이 최선이라 판단했다”고 힘줘 단언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포괄수가제도 의료 민영화와 짝지어 미움을 받는 것 같다”며 “국민 의료는 거시적 차원에서라도 정치적 논리에 휩쓸리는 일 없이 과대진료 부담을 줄이는 측면에서 실시돼야 한다”고 대응했다.

   
 
이렇듯 국민의 건강, 더 나아가 목숨을 놓고 벌이는 각 세력권 간 웅변대결에서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하는가. 기자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이번 사태는 이런 저런 이해관계를 따질 것 없이 원론적인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의 최우선 존재 목적은 자국민 보호다. 생명과 직접 연관체인 의료를 효율과 비용, 규제와 긴축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순간부터 어떤 논리라도 타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